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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2
    모퉁이다방 2020. 2. 5. 22:20

     

     

     

      주례를 대신한 아버님의 말씀이 시작되고서야 알았다. 그날이 2020년 2월 2일이었다는 걸. 2를 살짝 돌리면 하트가 되는 예쁜 날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은경이는 2월 2일에 결혼을 했다. 8월의 결혼식에 예의 그 발랄함으로 폴랑폴랑 뛰어와 언니 혼자 오기 그래서 남자친구와 같이 왔어요, 라고 해서 나를 놀래켰는데 그 뒤 6개월이 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 은경이 아버님은 단상에 올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사위,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남편으로 살지 말고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살라는 것이었다. 그 이름들은 부모님들이 몇 달 며칠을 고심해서 지은 소중한 이름들이라고. 그러니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라고 했다. 은경이가 참 멋진 아버지를 두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신랑 아버지의 축사가 아니라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틀림없구나도 생각했다. 내가 아는 은경이는 아버지의 당부처럼 자신의 이름 그대로 살아 갈 수 있을 사람이다.

     

      1월에는 남편과 크게 싸웠다. 결론이 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 일이 언급될 때마다 서로 기분이 상했다. 어제는 이러기로 했는데, 오늘 다시 얘기하면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결국 막내의 집들이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싸웠다. 나는 집에 돌아와 책방 문을 잠그고 이불을 펴고 누웠다. 밖에서 문고리를 돌리고 노크를 하는 소리가 났지만 열어주지 않고 울다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새 들어와 장난처럼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문을 꽝하고 닫고 안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그러고 학원으로 출근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꼼짝도 않고 누워 잤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우리의 싸움을 지켜본 친구가 했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동생이 전해준 친구의 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다음날까지. 그러자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네, 정말 우리는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었던 거네. 나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에 서운했고, 남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저 말만 계속 하는거지 생각했다. 남편은 자신의 말에 동의해주지 않아 무척 속이 상했단다. 단지 그래, 그건 니 말이 맞아, 라는 말을 듣고 싶었단다. 우리는 그렇게 삼사일을 싸우다 내 말만 계속 해서는 결국 똑같은 사람만 되고 싸움이 끝이 나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싸움을 계기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템포 멈춰보기로 했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서로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입장을 좀더 이해해보기로, 그렇게 노력해보기로 했다. 우리도 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투는 문제로 다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였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같은 문제로 다시 싸우지 않는 것.

     

      그 일은 설 연휴에 언제 고성집에 내려가는냐로 시작이 된 건데, 결론은 잘 다녀왔다는 것. 버스를 타고 통영에 가서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뜨근한 돼지국밥을 먹고, 대통령이 나올 동네라는 말이 돌 정도로 풍수지리가 좋다는 마을을 걸었다. 조용한 동네였다.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산이 있었다. 나즈막한 산길을 오르는데 이런 곳에 별장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안산에 안산땅 오천평이 있다고 급고백을 해서 우리를 설레게 했다. 남편은 속으로 안산땅이 있다면 이곳에 별장은 짓고도 남겠다고 생각했단다. 우리가 왜 지금껏 말을 하지 않았냐고 소리 높이자 안 산 땅 오천평이란다. 안 산 땅. 아...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피랑도 올랐다. 서피랑은 꼭대기에 오르면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 바람이 얼얼할 정도로 시원하다. 통영 시내도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렇게 만오백보 넘게 걸은 뒤에 예약해 놓은 다찌집에 가서 해산물을 먹고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건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잘 삐져서 좀 힘들거다고 사위에게 말했고, 맞은 편에 앉은 사위와 동생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차를 타고 고성에 와 축구 볼 사람은 보고 졸린 사람은 일찍 잠들었다. 통영의 조용한 마을을 걸을 때 이제 맺기 시작한 콩알만한 꽃봉오리들을 보았는데, 엄마는 지금이 가장 이쁠 때라고 했다. 남편은 4월이나 5월 즈음 그 봉오리들이 활짝 피었을 때 다시 가자고 군포에 와서 말했다. 천천히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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