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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모퉁이다방 2017. 11. 13. 22:04









       지난 주말에는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친구는 스테이크도 구워주고, 스크램블도 만들어 주고, 양파도 구워 주었다. 스무살 때 돈이 없었던 우리는 친구에게 찾아가 술을 사달라고 했었다. 자주 그랬다. 친구는 언제나 군말없이 사주었기 때문에 언제나 돈이 넉넉하게 있는 줄 알았다. 사실은 그게 얼마 남지 않은 용돈이었고, 다시 부모님께 전화를 해 조금 더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랬던 키가 크고 삐쩍 마르기만 했던 친구는 이제 구연동화를 하며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가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샐러드를 만들어주고, 내가 오니까 청소를 실렁실렁 했다고 남편에게 칭찬 받고,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이게 그때 대만에서 니가 사준 다기라며 그 다기로 내가 가지고 간 보이차를 따뜻하게 내려주었다. 우리는 아가가 낮잠을 자는 동안 친구의 자랑이기도 한 커다랗고 길다란 나무 식탁에 마주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눴다. 한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꼭 보는 사이였는데, 이번에는 몇 달만에 보는 거였다. 친구에게 동네 친구들이 제법 생겼다.

       아가는, 지난 번에 내가 물티슈 뚜껑을 닫아준다고 손을 뻗었다가 핸드폰을 넘어 뜨렸는데, 한창 집중해서 뽀로로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그때 무섭게 나를 째려봐서 나도, 동생도, 친구들도 모두 생각했더랬다. 나를 (너를) 싫어하나봐. 그렇지만 이번엔 좋아하는 풍선을 많이 사가서 그런지, 많이 웃어 주고, 뽀뽀도 네번이나 해줬다. 아가들은 정말 쑥쑥 크더라. 이제 아가는 좋아하는 것들을 앞의 한 글자씩 말하곤 한다. 빼빼로 달라고 할 때, 빼에-. 포도 달라고 할 땐, 포오-. 아빠, 엄마랑 애착인형은 마지막 글자까지 말할 수 있다. 에에블-린.

       거실에서 친구와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새벽이었다. 늘 원룸에 있다 혼자 넓은 거실에 누워 있으니 적요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잠들기 전의 새벽을 좋아했는데, 지금의 나는 깨어난 후의 새벽이 좋다. 금방 아침이 와버려서 더 애틋하다. 그 새벽들을 모아서 주머니에 품고 다니다 가끔 꺼내 보고 싶다. 쓸쓸한데 따뜻한 구석이 있다. 친구네 집에 근사해보이는 소금과 후추가 있었는데, 가락시장 역 수입식품 파는 상점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사왔다. 친구가 버터도 한가득 챙겨주고, 모짜렐라 치즈도 주고, 말린 감도 싸줬다. 그리고 다시 1시간 40분 버스와 전철을 타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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