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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어카레
    모퉁이다방 2017. 11. 25. 00:40




       이번 주는 길고, 힘들었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무엇 하나 녹록치 않구나 생각했다. 관계란 뭘까. 이번 주의 결론은, 언제든 깨어지기 쉬운 것. 누군가의 노력이 있다면, 다시 이어붙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전만큼 튼튼해질 순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 지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그 사람, 그렇게 힘들었을텐데,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네, 하고.


       요즘 저녁을 가볍게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맥주는 (무척 아쉽지만) 마시지 않은 지 몇 주 되었다. 신기하게 마시지 않게 되자,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언젠가 한 잔을 아주 찐-하고 맛나게 마실 그 날을 기다리며. 겨울이니, 병맥주를 사야지. 깊은 맛이 나는 진한 걸로. 유리컵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뒀다 꺼내야지. 삿포로 맥주박물관에서 사온 병따개로 병을 따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잘 따라야지. 적당하게 거품을 만들어서, 안주 없이 천천히 음미해가며 마셔야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잘 마신 뒤, 역시 좋았어, 하고 뿌듯해 해야지. 이번 주 저녁 메뉴에 현미율무시리얼도 있었고, 우울해서 큰 맘 먹고 산 호주산 소고기 안심도 있었다. 그리고 이마트에서 파는 자숙문어도 있었다. 문어는 소금을 넣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건강하게 먹는다고 쌈다시마를 곁들여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한번에 다 먹질 못해 냉장고에 남겨뒀는데, 다음날 카레를 만들 때 문어 생각이 났다. 한번 넣어볼까. 그렇게 시작된 냉장고 잔반 처리 카레. 결과는, 무려 인생카레. 3일동안 동생이랑 정말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잘 먹었다.


       그래서 힘든 평일을 잊고,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 루시드 폴이 우정출연한 알쓸신잡을 다 보고, 재빨리 마감 전 이마트에 갔다. 자숙문어는 마감 직전이라 세일할 줄 알았는데, 정가 그대로 팔더라. 브로콜리도 사고, 방울토마토도 샀다. 카레는 백세카레. 저번 인생카레를 만들 때는 '약간 매운맛'을 샀는데, 좀 매운 감이 있어서 이번에는 '순한 맛'을 샀다. 마트 가기 전에 동생이랑 인생카레 맛을 떠올리며 회사 그만두고 카레집을 하자고 계획해봤다. 문어카레에 맥주도 팔자. 카레는 양을 한정해서 팔고, 맛있는 문구들이 그득한 책도 같이 팔자. 커피는 안 될 것 같아. 카레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 카레냄새가 책에 배지 않을까. 이딴 고민은 다 필요없었다. 마트가서 일부 재료만 샀는데, 팔기엔 엄청 비싼 재료들임을 깨달았다. 아, 이래서 맛있었던 거구나. 비싼 것들이 듬뿍 들어가서. 회사를 계속, 흑흑-


        만드는 방법은 일반 카레 만드는 것과 똑같다. 아, 친구가 좋은 버터를 많이 줘서 올리브유와 버터를 함께 넣고 볶은 건 평소랑 달랐다. 재료를 볶고, 물을 넣고, 카레가루를 푼다. 문어는 아무래도 오래 끓이면 질겨 질 것 같아 카레가루를 풀고 넣었다. 자글자글 카레의 형태가 될 때까지 끓여주면 완성. 그리고 모두 아시겠지만, 어제(만든)의 카레가 제일 맛나다. 카레는 시간이 더해지면 더 깊어지나보다. 재료는 양파, 브로콜리, 완두콩, 방울토마토, 자숙문어. 문어는 잘게 썰어서. 마지막에 우유 조금. 요거트를 넣어도 된다. 내일 만들어 먹으려고 브로콜리를 식초물에 담가뒀다. 아, 기대되는 주말 카레 되시겠다. 카레에게 다음 주를 버틸 용기를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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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역시 카레입니다. 거기에 보태고 싶은 것은 카레우동!

       원래 카레우동은 메이지시대 도쿄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하지만, 오사카와 교토의 카레우동도 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토부청 앞 '야마비코'의 '스지 카레우동'은 최고의 보양식이다.

       "여름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발이 움직인다니까."

       "그 집 맛은 중독성이 있어." 교토의 친구들이 말한다. 흐르는 땀도 끈적거리는 여름 교토의 한낮에 '스지 카레우동'의 격렬한 한 방은 통쾌하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 쫄깃한 우동이 튀어 오른다. 삶은 물은 버리고 다시 삶기를 여섯 번, 부드럽고 푹 고은 소의 힘줄이 녹아내린다. 파워풀한 매운맛, 뜨거움이 혀 위에서 기쁨의 춤을 춘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먹고 나면 샤워를 한 것 같다. 참고로 '야마비코'에는 여름 한정 '냉 스지 카레소면'도 있다. 그리고 카레우동 팬이라면 난젠지 근처 '히노데 우동'의 '달콤 카레우동'도 강력 추천하고 싶다. 푹푹 찌는 무더운 교토를 걸을 용기가 솟는다.

    - 181-182쪽,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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