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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월 구일
    모퉁이다방 2017. 10. 9. 22:18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동생과 함께 가방을 챙겨 나왔다. 둘이서 나란히 놓여 있는 따릉이를 대여해 불광천을 달렸다. 나는 상암에서 멈췄고, 동생은 한강까지 간다고 했다. 8시에 시작하는 <남한산성>을 봤다. 내일 나는 8시에 합정역에 도착해서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고 있을 거다. <남한산성>은 괜찮았다. 이병헌은 첫 등장부터 마지막 울음씬까지 내 마음을 계속 움직였는데, 눈빛과 목소리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악마를 보았다>의 마지막 새벽 울음씬이 생각이 났다.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내게 좋은 배우인 건 확실하다. 영화 속에서 그 해 겨울을 표현한 것처럼, '깊다'.


       점심에는 보경이가 샤브샤브를 먹자고 해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만났다. 보경이와 샤브샤브를 먹을 때는 언제나 디엠씨의 소담촌에 간다. 어느 날 우연히 먹으러 갔는데, 음식도 나쁘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 뒤로 계속 가게 됐다.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보경이가 왔다. 보경이는 어떤 의미에서의 첫 월급을 받았는데, 내게 꼭 샤브샤브를 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냥 함께 먹는 샤브샤브가 아니라 월급턱 샤브샤브였다. 마음이 고마워 알뜰히 먹었다. 내 추천이긴 했지만 보경이도 <행복목욕탕>을 보았는데, 사실 이 말을 함께 하기 위해 보라고 했는데, 고기를 국물에 넣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샤-부샤-부'라고 말하는 걸 깜빡했다.


       보경이가 간만에 한강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 아저씨는 멀리는 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엄청나게 멀미나게 운전을 해댔다. 처음에 이것저것 묻는 말에 답했지만, 난폭운전이 시작되고 나서 말을 아꼈다. 우리는 새로 생긴 편의점에서 맥주 3캔과 아귀포를 샀다. 그리고 햇볕이 닿지 않는 강가 대교 밑에 앉았다. 가만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이따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구름을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내가 나쁜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고, 보경이는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스무살로 돌아가면 그때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될까 라고 물었다. 나는 보경이에게 니가 변한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그렇지만 관계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라고 말했고, 보경이는 그 사람과 커피 한잔 정도는 하라고 말했다. 맥주는 내가 2캔을 마셨다.


       돌아갈 때는 망원역까지 걸어갔는데, 중간에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깔끔한 커피집이 있어 들어가 원두 두 봉지를 샀다. 둘이서 같이 마시라고 선물했는데, 보경이는 마침 원두가 똑 떨어졌다고 잘 마신다고, 고맙다고 말해줬다. 원두를 하나 사면 커피를 한 잔씩 준다고 해서 차가운 커피로 하나씩 받고 역까지 갔다. 망원역에서 급히 화장실을 찾았는데, 나오니 빵집에 좋아하는 빵이 있어서 두개 사서 나눴다. 보경이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려 공항철도를 타고 집에 갔고, 나는 응암역에서 내렸다. 오늘은 갑자기 거미의 '그대 돌아오면'이 계속 입 안에서 맴돌아서 여러번 들었다. 집 앞 횡단보도에서 보경이가 말해준 단단한 사람이라는 묵직함에 대해 생각했다. 아, 말도 안되었던 긴긴 연휴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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