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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크씨
    모퉁이다방 2017. 1. 10. 23:01




       두 명이 나갔고, 두 명이 들어왔다. 이번주로 야근이 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야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야근이 확정되는 오후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대로 괜찮을까. 그러다 퇴근할 무렵이 되면, 또 생각한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겠지. 아직까지는. 월급을 받고, 좋아하는 책을 사 읽고, 좋아하는 영화를 사 보고, 좋아하는 맥주를 사 마시는 일. 어제까지는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일기>를 읽었다. 올해 베를린에 갈 수 있을까. 2주 휴가 동안 베를린에 가 있는 상상을 한다. <베를린 일기>에 포르투갈의 포르투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민석 작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 읽을 책을 골라야 했는데, 소설이었으면 했다. 맞다, 지난 달에 황정은의 신간을 사 놓았다. 출근길에 두 장 정도 읽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황정은을 좋아하지만, 황정은의 모든 소설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퇴근길에 김연수 작가와 김애란 작가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는 기사를 봤다. 젠장. 퇴근길에는 이 구절을 읽었다. 황정은 새 소설집의 첫 소설 중,


       내가 해 지기 직전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거든. 문이 잠겨 있더라. 나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 손발도 더럽고 배도 고프고 날도 추워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열쇠가 없는 거야. 야 그럴 땐 정말 죽겠지 않겠냐. 이 문만 통과하면 내 것이 다 있는데, 내가 아는 것들, 따뜻하고 거칠거칠하거나 부드럽거나 각이 지거나 닿은 것들, 내 머리 냄새가 밴 베개 같은 것들이 전부 있는데, 엄지보다도 짧은 열쇠가 하나가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란 말이야. (....)

    - p. 24


       응암역에 도착했고, 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아, 좋다'라고 말했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다. 따뜻한 오뎅과 오뎅국물에 오래 담겨진 계란이 먹고 싶고, 걸쭉한 흑맥주도 먹고 싶어졌다. 결국 마트에 들렀다. 오뎅은 포기하고, 만원에 가까운 흑맥주 한 병을 골랐다. 이 녀석이 오늘 나의 저녁. 집에 와 병따개로 뚜껑을 땄다. 얼마전 마트 행사에서 얻은 튤립 모양의 근사한 맥주잔을 꺼냈다. 병을 기울이니 걸쭉하고 끈끈한 흑맥주가 잔으로 흘러 들어갔다. 초콜렛 맛이 나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한 모금 마시니 그 맛이 났다. 괜찮네, 내일은 야근도 안 할테니, 아침에 이지 잉글리쉬 방송은 꼭 듣자, 다짐하게 되는 9.8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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