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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주학교
    모퉁이다방 2016. 11. 27. 23:06


       11월 마지막 토요일, 우리는 강남역에 있는 한 쿠킹스튜디오에 모였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눈이 마구 쏟아지던 날이었다. 첫 눈. 스튜디오의 창 밖으로 첫 눈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알아보는 맥주학교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론 수업을 하고, 시음 맥주와 음식을 먹고, 수료식을 했다. 수료증에는 각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불리고, 앞으로 나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수료증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했고, 어떤 사람은 포옹을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지난 6주동안 어떠했는지 소감을 이야기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맥주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가고 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맥주친구를 알게 되어서, 알지 못했던 맥주의 세계를 알게 되어서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정말 내게는 새로운 맥주친구들이 생겼다. 어떤 맥주친구는 어떤 시간이 기다려지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며, 매일 토요일을 설레여하며 기다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1학년 수업은 끝나지만, 계속 이렇게 모여서 좋은 맥주를 마시며 좋은 시간을 가지자고 말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좋아하는 걸 좀더 깊게 알고 싶어서 고민 끝에 신청한 수업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새로운 맥주를 만나고,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져 갔다. 맥주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냥 짠-하고 금방 탄생한 맥주는 없었다. 각자의 맛이 있었고,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한 병의 맥주가, 한 캔의 맥주가, 한 잔의 맥주가 어떻게 내 앞에 놓이게 되었는지 조금씩 공부하고 마시는 재미가 커다랬다. 맛있다, 맛없다로만 맥주 맛을 표현하던 내가, 부족하지만 그 맛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서로가 느낀 맛을 이야기하고, 듣고, 다시 마셔보면 느낄 수 없던 맛들이 느껴졌다.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 모두들 그동안 맥주를 다양하게 많이 마셔본 사람들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밀맥주가 느끼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밀맥주를 즐기게 됐다. IPA는 더 사랑하게 됐다. 마지막 수업의 뒤풀이에서 현희씨가 제안했다. 한 사람씩 맥주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었는지 얘기해봐요. 현희씨는 공부하러 갔던 아일랜드에서 매일매일 맛본 맥주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근님은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포클랜드에서 맛 본 맥주와 여유로웠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연씨는 자신의 병을 가져와 맥주를 채워가는 유럽의 어느 마을을 이야기했다. 제이제이는 내가 첫번째 수업 뒤풀이에서 병이 귀여워서 고가에도 불구하고 구입했던 맥주를 내 스타일이 아니라며 다 마시라고 주어서 저 누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해줬다.





















       우리가 만든 맥주는 맛이 없었지만, 취기가 오르니 그 맛도 그럴 듯 했다. 누군가 이제 우리 맥주는 만들지 말고, 사서 마십시다, 라고 말해서 다같이 웃었다. 그러니까 가을동안 맥주 덕분에, 함께 한 사람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맥주를 찾기위해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마셔보겠다!





    우리는 마음껏 맥주를 즐길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꼬치꼬치 따져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맥주에는 길고 긴, 복잡한,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알아보자는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면,
    단순히 고르고 맛만 보던 순간을 뿌듯하고 다채로운 시간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그게 어떤 맥주라도,
    특정한 맛이나 느낌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후와 농업의 얽히고 설킨 관계에 푹 빠질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사회와 종교도, 경제와 지리도, 과학과 사상까지도,
    잔잔한 소용돌이에서 집어삼킨 듯한 파도까지,
    인간의 역사가 만든 수많은 굴곡이 맥주 한 모금에 배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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