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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가를 만나는 시간
    모퉁이다방 2016. 9. 26. 23:09




       어떤 날에는 내 삶이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또 어떤 날에는 내 삶이 이모양이꼴로 여겨진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책도 읽고, 극장에도 간다. 요즘은 한동안 또 이모양이꼴 모드가 되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건축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그를 만나고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왔는데, 만나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이라는 건축가는 민머리에 저음의 목소리가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어떤 단어들을 굉장히 부드럽게 발음했는데, 그 톤이 참 좋았다. '건축가는 무슨 생각으로 집을 지을까?'라고 쓰인 화면을 띄어 놓고, 실은 이 중간에 '서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된다고 했다. '건축가 서현은 무슨 생각으로 집을 지을까?' 그리고 자신이 설계한 세 채의 집을 소개해줬다. 세 채의 집을 소개해주는 척 했지만, 사실은 세 명의 건물주를 소개해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 날, 세 명의 건물주를 소개받았다. 서현은 설계를 의뢰를 한 사람의 특징을 충분하게 파악한 뒤, 그에 맞는 건물을 설계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건물의 건물주는 요구사항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모르고선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건축가는 그를 데리고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에 가서 6시부터 11시까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단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사람을 알 수 있었고, 그이에 어울리는 설계를 할 수 있었단다. 그이의 집에는 동그란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365일 모두 달라서 어떤 날은 정말 동그랗고, 어떤 날은 비스듬하고, 어떤 날은 하트를 만든다. 그는 감격하며 그 집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그와의 궁합, 가치 있는 것. 건물주와 이야기해보면 그는 이것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관념이 다른 사람의 건물은 절대 설계할 수 없다고 했다.


      눈을 뜨고 보면 건축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단 하나의 빛도 허투로 만든 게 없다고. 우연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치밀하게 계산된 빛이라고. 강연을 들으러 온 어떤 분이 질문하셨다. 어떤 건축소재를 가장 아끼냐고. 건축가는 말했다. 어떤 건축소재에도 거부감이 없다고. 그렇지만 유리라는 소재를 무척 아끼고, 잘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유리는 빛과 만나면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고, 비물질적인 느낌을 선사하는데, 그것에 매료되어 있다고 했다. 유리를 잘 활용하고 싶어서 지금도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하셨다. 건축의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건축가는 그런 거 없는데, 하면 소탈하게 웃더니, 무작정 걷는 걸 좋아해요, 라고 말했다. 잠실에서 살고 있는대 학교인 한양대까지 무작정 걸은 적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걷기는 굉장히 좋은 생각의 도구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너무 좋아해요.


       이 말을 건축가를 만난 그 시간에 메모해뒀는데, 분명 그가 한 말일 텐데, 무슨 말의 끝에 나온 말인지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 뭐였을까. (집을 짓는 일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 사람이 그 집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유리를) 너무너무 좋아해요. 뭐든 간에 나는 저 '너무너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해서 저 말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나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주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어 보자고 다짐하면서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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