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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은과 방백
    무대를보다 2016. 7. 19. 22:55



       지난 금요일에는 비가 왔고, 우리는 그 비를 뚫고 홍대의 공연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 공연을 삼만원에 응모했고, 이만원에 낙찰받았다. 만원이나 굳었다. 그런데 최고은과 방백, 이 사람들이 두 시간이 넘게 공연해줬다. 나와 친구는 이 돈을 내고 이렇게 길고 열성적인 공연을 본 것에 미안했고, 감사했다.


       백현진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고 준비가 되자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흠뻑 그 노래에 빠져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연체동물처럼 몸을 이렇게 저렇게 흐느적거렸다. 그 움직임은 노래의 리듬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영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신기했다. 저렇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언젠가 시옷의 모임에서 한 뮤지션을 두고 꼭 약 한 것 같지 않냐, 라고 표현하는 걸 들었었는데 그게 백현진이었나 싶었다. 그렇게 한 곡, 한 곡 지나자 그의 그 특이한 움직임이 익숙해지고, 찌릿해지고, 좋아지고,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심지어 그의 움직임에 울어 버릴 뻔 했다.

       나는 올 초 어떤 사람에게 잠깐 빠져 있었는데, 정말 병신같은 짓을 했더랬다. 그 기억들을 잊으려고 열심히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였고, 열심히 음악을 들었댔다. 그때 제일 위안이 되었던 노래였다. 방백은. 특히 '다짐'. 이를테면, 이런 가사. "반복되는 허망한 이 패턴이 이 나이에 정말 병신 같아서 한동안은 면벽하는 심정으로 자중을 하자 다짐을 하네 도대체 언제쯤 좀 더 맑은 정신과 좀 더 깔끔한 기분으로 살까 술 담배도 끊고 연애도 끊어 보고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해 본다."

        아, 이 노래의 전주가 시작될 때의 심정이란. 다 잊었던 그 겨울의 심정과 다짐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 지면서. 그래 그때 참 병신 같았지, 하고. 공연 전의 나는 방백의 몇몇 곡을 좋아했는데, 공연 후의 나는 방백의 모든 곡이 좋아졌다. 다음에 공연을 하면 또 가고 싶어졌다. 백현진은 세상이 이 모양이니, 열심히 살지 말자고 했다.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돈 많이 모을 수 없어요. 그때 그때 즐기면서 살아요, 라고. 가사가 아주 잘 들렸다. 그래서 더 좋았다.

       백현진에 빠져서 감흥이 살짝 묻히긴 했지만, 최고은의 라이브 공연도 무척 좋았다. 그녀는 한 소리도 허투루 내지 않았다. 예쁘게 보이려 하지 않고, 한 소리 한 소리 집중해서 입술을 아주 작게 오므리기도 하고, 아주 크게 벌리기도 하면서 노래했다. 그래서 예뻤다. 원래 최고은은 예쁘지만, 더 이뻐 보였다. 그녀의 길다란 몸이 아름다운 소리통이었다.

        내겐 최고은이 예전에 가내수공업으로 완성했던 앨범이 있다. 천을 직접 자르고 미싱질도 했다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우연히 그녀의 노래를 들었고, 좋았고, 그래서 앨범을 샀다. 좋은 노래니까, 좋은 것은 나눠야 하니까, 함께 듣고 싶은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예상대로 좋아했고, 좋은 것은 나눠야 하니까, 당시 같이 일하던 좋아했던 선배 언니에게 선물을 했다. 최고은이 'Eric's Song'을 (앵콜 전) 마지막 곡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우리가 생각났다.

       좋았다, 좋았다. 이 비를 뚫고 오길 잘했다, 집에 바로 가지 않길 잘했다, 공연 포기하고 술 마시러 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집이 멀어 일찍 출발했어야 했는데, 이 기분으론 그냥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비오는 풍경을 곁에 두고 삼겹살에 맥주를 마셨다. 치즈볶음밥도 볶아 먹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고 지하철을 탔다. 그야말로 완벽한 불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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