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출근을 하고 함께 밥을 먹는데, 내게 '혼자 여행을 가게 된 게 운명인 것 같아요' 라고 말해준 동료가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여행의 감흥이 아직 엄청날 때였으니까 (오랫동안 염원하던 그곳을 혼자서 무사히 다녀오다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동료가 하품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론 그녀는 당시 만삭이었고, 자주 피곤해했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을 때에도 늘 피곤해했다는) 조회시간에도 팀장님 앞에서 하품을 하곤 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여행담을 마무리했다. 그 뒤 내가 여행을 간 줄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들이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그 하품을 떠올렸다. 그래, 처음엔 흥미롭다가 길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 그렇다고 믿고 싶다!) 지루해질 수도 있겠지. 그만 듣고 싶은데 그만 듣고 싶다고 얘기 못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나의 찬란했던 여행담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누군가 물어보면 되도록이면 짧게 말했다. 좋았어. 외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좋았던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 또 가고 싶다. 이 정도로 끝냈다. 그렇지만, 내 기억이 점점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끝까지 들어줄 수 있고, (자기도 모르게)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중간에 하품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래서 이곳에 최대한 세세하게 풀어냈다. 물론 여행기가 길어질수록 나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뒷날의 이야기는 충분히 자세히 쓰지 못했지만.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하품을 하지 않고, 지루하다 생각하지도 않고, 끝까지 잘 읽어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다.

 

   포르투 공항에서 마지막 엽서를 썼다. 엽서와 우표가 한 장씩 남기도 했지만, 첫 엽서를 쓸 때 그러기로 다짐했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7월의 내가 한국에 있을 7월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생각,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자는 말 등을 적었다. 그리고 공항의 우체통에 넣었다. 수속을 하고 들어와선 동생들이 부탁했던 에그타르트와 커피가루를 사고, 남은 동전으로 비카,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켰다. 높은 테이블에 커피를 올리고, 높은 의자에 올라가 설탕을 탈탈 털어넣고 휘휘 저어 천천히 마셨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커피. 쓰지 않고 달달했다.

 

    여기 쓴 여행기는 실제 그대로가 아니다. 나는 이처럼 씩씩하고 단단하게 여행하지 못했다. (내 기준에선 그렇다) 이건 시간이 지나 내 기억 속에서 과장되고 축소된, 꽤 미화된 여행기다. 나는 많은 순간 외로웠고, 그래서 마지막 날은 이제 하룻밤만 자면 돌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기쁘게 돌아다녔다.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필요해 한국의 인터넷 카페에 동행을 구하는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퇴짜를 맞기도 했다. 영어가 짧으니 식당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리웠던 모국어가 여기저기서 우르르 들려왔을 때, 살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주 푹 잤다. 푹 자고 일어나니 인천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게 꿈만 같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게 다시 없을 소중한 기억들이 되었다. 흠. 여행기를 마치며 든 생각.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가, 한 차례의 여행이,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놓기도 한다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물론 언젠가 강렬하게 나를 바꿔 줄 한 권, 한 편, 하나, 한 차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 한 권과 어떤 한 편과 어떤 하나와 어떤 한 차례가 모이고 모여, 쌓이고 쌓여 나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꿈꾸던 곳에서의 일주일이 나를 단번에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좀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줬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거. 다음 여행까지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당연하게도 7월의 포르투에서 이금령이 쓴 엽서는 잘 도착했다. 7월의 서울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금령에게.

 

 

 

  1. BlogIcon lainy 2015.12.06 15:2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예전에 유럽을 40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매일 수첩에 여행기를 적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수 년 뒤에 다시 그 수첩을 읽었는데
    제가 어렴풋하게 기억하던 여행의 매일매일과 수첩에 적힌 것은 차이가 좀 있더군요..

    그리고 다른 분들이 여행 어땠냐고 물어볼때 전 그냥 말없이 사진을 보여줘요
    그리고 그들이 관심있어하는 사진을 찍으면 간단히 설명해줍니다.

    저에겐 아름답고 괜찮은 여행도
    남들에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하더군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5.12.07 13:20 신고 BlogIcon GoldSoul

      저는 그 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하품은 이해하지 못해요. 흐흐-
      여행 뿐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더 소중하고, 애틋하고,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걸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헤헤-
      고마운 댓글들, 감사했어요. 활기찬 월요일 보내고 계시길요!

  2. 2015.12.07 17: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JH Baek 2015.12.07 17: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전 혼자서 여행을 참 많이 했는데요, 남들의 기억에는 제가 씩씩한 여자이고 실제로 저도 그런 척 말하지만, 실제로는 생각해보면 찌질하게 다니기도 많이 하고 지루하게 있던 시간도 많았던 거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여행과, 실제의 여행과, 제가 해놓은 기록 속의 여행과 제가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여행은 다 다르면서, 결국은 같은 거 아닐까요. 때로는 찌질했고 때로는 겁쟁이스러웠어도 때로는 쿨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고 어떤 찰나는 정말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고... 근데 어찌 되었든 금령씨가 쓴 여행기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반짝반짝하기만 했어요. 재밋었고, 마치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고 또 그 자리에 가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 좋은 글 늘 고마워요.

  4. 오혜진 2015.12.11 16: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금령씨 말처럼 이런 여행들이 하나 하나 모여 나를 만들고, 또 그 언젠가의 날에 나의 인생을 바꾸어줄 그 날들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여행지에서 길을 못찾아 헤매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황당한 순간들을 겪는 것들도 모두 나이지만 왠지 그런 내모습들도 모두 소중해지고 그런 경험들이 참 고맙고 그래요.
    다음 여행지는 어디여요?

    나는 교토-도쿄 잘 다녀왔어요.
    꽤 길다 싶었지만, 길지 않은 날들이었어요.
    그래도 열흘이 넘는 기간을 타지에서,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돌아온 나에게 박수를 보냈어요.
    비록 이웃나라 일본이지만 ㅋㅋㅋ

    가을의 교토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해서 관광지 입장은 엄두도 못냈고 ㅎㅎ
    그래도 단풍의 명소 1, 2위를 다투는 두 곳은 다녀왔답니다.
    이틀은 외곽으로 나갔어요. 남들은 하루안에 다 소화하는 코스를 나는 온전히 하루 하루씩 투자하여 천천히 걷고 지역주민들만 갈 것 같은 식당에서 밥먹고 차마시고. 그러다 또 걷고.

    내가 여행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면
    주변 사람들은, 걷고, 먹고, 마시기만 했네? 이런 반응 ㅎㅎㅎ
    정말 많이 걸었던 여행이었어요.
    엄마가 저에게 30년만에 처음으로 "야위었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하하.
    살을 좀 빼니까 걷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여행의 후유증으로 요즘 나는 매일 걸어요.

    교토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오하라'였어요.
    나중에 교토 여행을 하게 되면 꼭 가봐요. 금령씨한테 추천.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젠인도 좋지만
    입장료가 비싼 호센인,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안가는 잣코인을 추천해요 :)
    매일 숙소에 들어가는 길에 물과 야채와 과일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길도 좋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 동네 사는 사람처럼 모닝토스트를 먹으러 나가는 일도 좋았어요.
    어떤날은 일상을 사는 것처럼, 어떤날은 여행을 온 것처럼, 그렇게 11일을 보냈어요.

    여태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면서 오사카는 한번도 안가봤지만, 다음에 또 간사이지방을 가게 된다면 나는 또 교토를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만큼 더 좋아졌어요 교토가.

    그렇지만 다음 여행은 다른 곳으로 갈래요. 하하
    눈이 엄청 많이 내리는 홋카이도나, 이번에 포기한 대만.
    많이 돌아다닐래요.

    유럽은, 내년 5월쯤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테러보다 유럽에서 내가 잘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이 걱정이 더 큰데, 부모님은 아직도 내 눈치를 보시며 내년에 말고, 더 나중에 가면 어떻겠냐고 자꾸 그러셔서 고민중이어요. 내년 하반기에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동생은 언제가요? 다녀왔어요?

    금령씨 포르투갈 여행기 읽으면서 나도 포르투갈로의 여행을 꿈꿔요.
    읽고 또 읽으면서. 포르투갈도 참 좋은데, 그냥 스페인-포르투갈 갈까?
    뭐 이렇게 하루에도 열번씩 루트를 수정하고.

    일본은 늦가을이었어요.
    한국은 첫눈이 빨리왔고 날이 추웠다는데, 그 기간동안 일본에 있었던 나는 제대로 늦가을을 즐겼어요.
    그래서 나는 아직 올해의 첫눈을 못봤어요.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 :)

    첫눈을 맞이한 날, 엽서로 소식 전할게요.
    그 전에 종종 이곳에서 만나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5.12.17 23:18 신고 BlogIcon GoldSoul

      우와, 혜진씨는 계절을 거슬러 갔다 왔네요. 교토의 가을, 좋았겠다. 알려준 곳들 적어둘게요. 언젠가 교토에 가게 되면 꼭 가보겠어요. :)

      나는 요즘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정말 이렇게 바쁜 저녁들을 보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요. 주말에만 가던 학원을 평일에도 가서 보강을 하고, 쉬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모임에도 나가보고. 나는 늘 조금만 지겨워지면 포기해버리고, 단념해버리는 사람이었는데, 왠일로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놓치지 않고 살고 있어요. 이런 내가 조금 근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헤헤-

      이번주에는 꼭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볼 거예요. 혜진씨도 볼 거죠? 지난 여행 때 못 가봤던 가마쿠라 구경 찬찬히 해야겠어요. 보고 얘기나눠요- 추워요. 추워. 단-디 입고 다녀요. 감기 조심하구요! 우리, 그 전보다 좀더 자주 보아요. :)

      아, 동생도 내년 5월이에요. 그런데 비행기 결제는 했지만, 잘 모르겠대요. 동생도 처음엔 너무 가고 싶었는데, 점점 심드렁해지는 것 같아요. 테러 걱정도 옅어지고 있고. 원래 나도 같이 가려고 표를 결제하려고 했는데, 회사일이 5월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못 했어요. 흠. 어찌되었던 혜진씨도, 우리도, 두 계절 즈음 뒤에는 어디든 좋은 곳을 여행할 수 있음 좋겠어요. 그리고 아직 12월이니 찬찬히 생각해봐요. :)

  5. BlogIcon 정은하(루씨) 2015.12.18 12: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금령씨~~おひさしぶりですㅋ
    난 한개도 안지루하게 느낄테니 여행스토리 들려줘용~~초집중가능합니다ㅋ 여행,음식얘기는 大好き!벌써 12월이 지나가고있네요
    우리의 첫만남이 일주년되네요 ㅍㅎㅎ
    빠르죠....ㅠ. 블로그를통해 서로의 시간을 그나마 느낄수 있어 다행이였어요
    내년에는 진짜 꼭 보아요!! 따순 커피한잔하며 수다떨어보자고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5.12.19 00:10 신고 BlogIcon GoldSoul

      언니,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있죠?
      헤헤- 고마워요! 다음번엔 더 신나는 이야기들로-
      진짜. 우리 1월 첫주에 결의에 가득차서 종로의 허름한 학원에서 만났으니 곧 1주년이에요. 포르투갈어도 열심히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요즘 일본어 학원 나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평일에 집에 오면 기운이 없어서 복습을 못하는 게 탈이지만. 간바리마스요. :)
      진짜 내년엔 꼭 만나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 나눠요- 좋아요!
      아, 나 이번에 새 드라마 시작했어요. <과자의 집>이라고. 잔잔해서 언니가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오다기리도 나오고 좋은 것 같아요. 이제1화 봤어요. 흐흐- 좋은 드라마 보면 추천해줘요. 언니.
      그럼, 또 봐요. 너무 추워요. 감기 조심! 따뜻하게 입고 댕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