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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이 오면 그녀는
    서재를쌓다 2015. 9. 2. 22:15

     

     

     

     

       마지막에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친구들이 커다란 소라게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후타는 생각한다. "이런 광경도 얼마 안 남았구나. 4월이 오면 아마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4월이 오면 그녀는."

     

        일요일에는 '이대'로 영화를 보러 갔다. 다큐 영화제 마지막 날이었는데, SNS에서 <티타임>에 관한 글을 보고 보고 싶어져서 보러 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매달 한 번씩 티 모임을 갖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하지만, 할머니들은 처음부터 할머니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줍은 아가씨였다가,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었다가, 결혼을 한 유부녀가 되고,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고, 손자손녀를 본 할머니가 되었다.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는데, 감독이 말했다. 대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생애 첫 영화였다. 할머니를 초대했는데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 날, 친구들과의 티 모임이 있기 때문에. 감독은 그때부터 이 모임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모임이길래, 사랑하는 손녀의 첫 작품도 못 보러 오는가.

     

       할머니들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만났다. 오후 네 시. 커다란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차를 마시고, 샌드위치나 케이크를 먹고, 때때로 술을 마셨다. 돈을 모아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서로의 낯뜨거운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좋았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래, 그때 너 그랬지. 너 그때 참 좋았지, 하고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다. 쉴 틈없이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는 고등학교 졸업 60년 후의 모임에서 시작한다. 5년 동안 찍었는데, 그 사이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어떤 할머니가 말한다. 이제 더 죽으면 안 돼. 금방 티가 난다구. 영화의 마지막, 사별한 남편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늘어놓던 곱디 고운 할머니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는 자신이 떠나고 한 테이블에 모일 친구들을 생각해 편지를 남긴다. 슬퍼하지 마. 우울해 하지도 마. 평소하던 것 처럼 웃어. 내 얘기하면서 마구 웃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니네들 인생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 웃어. 이런 식의 편지였다. 맞아 맞아. 나는 (눈물이 많은 여자니, 이 영화를 보면서 수도 없이) 울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사라져도, 내 친구들이 사라져도, 서로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지.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이 몇 갠데. 영화를 보고 나니 소중한 사람들이랑 '함께' 무언가를 많이많이 하고 싶어졌다.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닐 수 있도록.

     

       그러니 후타도 4월이 되면 그녀가 떠나버리고, 그러면 쓸쓸해지고, 바닷가에서 만주 먹을래? 라는 말 따위 할 수도 없고, 자기를 잊어버릴까 걱정도 되겠지만, 그렇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해도 괜찮은 거다. 지금 이렇게 바닷가에서 또 하나의 사라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고 있으니. 괜찮은 거다, 후타!

     

        그녀들의 여섯번째 이야기. 나오자마자 주문해서 정말 아껴서 읽었다. 그런데 벌써 다 읽었다. 흑흑. 오래간만에 1권부터 다시 봐야겠다. 그나저나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J씨도 이 책을 주문했겠지? 무척 아끼는 만화라고, 나도 좋아할 것 같으니 빌려주겠다고 했던 J씨는 잘 있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만큼 맥주를 좋아하던 J씨.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계절을 충분히 느끼고 있을지. 낮에 비가 온 것 같았는데, 창이 따로 없는 사무실에서 커다란 빗소리만 들었다. 지금, 다시 비가 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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