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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끌림
    서재를쌓다 2015. 7. 19. 21:37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산문집을 다시 읽었다. 마음에 박히는 구절들이 많았다. 그런 페이지에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이병률은 바람둥이가 분명할 거란 생각을 했다. 바람둥이, 만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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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로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렀다 떠날 때 포도주 한 병이나 비누, 손수건 한 장이나 자신이 읽던 책들을 선물로 두고 떠난다고 했다. 모르는 이로부터 받았던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음 사람에게 표시하고 말이다. 그 사람이 떠나고 집 청소를 하러 집에 들어간 주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선물 포장을 보고 뿌듯해진다고 했다.

    멋지고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말했더니 주인이 자랑스럽게 웃었다. 나는 집으로 올라가 선물 포장을 뜯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선물은 묘한 두근거림을 선물했다. 수채화로 곤돌라 그림이 그려진 손바닥 크기의 '포스트 잇'이었다.

    나는 커다란 베니스의 지도를 선물 받은 것처럼이나 감사했다. 이 감사가 내가 그곳을 떠나올 때도 이어질 것이고 그 다음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곳을 떠나오면서 다음 사람이 나처럼 굶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파스타 한 묶음을 올려놓고 왔다. 그리고 잊지 않고 메모지 위에다 '다음 사람을 위하여'라고 적었다.

    계속해서 감사는 박자를 맞춰 감사를 부를 것이다.

    - 이야기 스물, '다음 사람을 위하여' 중에서

     

    오후 다섯 시에 마시는 보드카, 창밖의 초승달을 닮은 크루아상, 저녁식사를 끝냈다는 의미의 더블 에스프레소 한 잔. 이 모든 것이 순하게 엉킨 어느 저녁, 나는 당신을 떠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자작나무 길을 지나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린다.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으므로, 지금보다 더 간절했던 적이 없었으므로 그래서, 그래서 떠나려고 합니다."

    남겨진 사람 마음이 더 아플 거라는 예측이며 추측일 뿐, 떠나는 사람의 마음도 아플 수 있다는 걸 난생처음 알게 되면서 빽, 울컥해진다.

    - 이야기 스물다섯, '사랑의 역사' 중에서

     

    혼자 이국의 바닷가에서 울적해하기보다는 웃을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하자고 씁쓸히 마음을 먹는 일도, 떠나는 일은 점퍼의 지퍼 같은 것이어서 지퍼를 채우기만 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아해. 그리고 눈이 내리고 내리고 쌓이고 또 쌓이는 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당신하고 같이 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술이나 사러 나갈까 하며 벗어놓은 양말을 신는 걸 좋아해.

    - 이야기 마흔하나, '좋아해' 중에서

     

    그때 불쑥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인도 가서 따로 다니면 어떨까?"

    겨우 용기를 내서 꺼낸 그 말에 친구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우린 세상에서 제일로 친한 친구 아니니?'라고 묻고도 싶었고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린 같은 비행기 안에 있지 않니?'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잘못 들은 것도 같아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 정말 그랬음 좋겠어?"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둘이 다니면 많이 못 볼 것 같아."

    맞는 말이긴 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어떻게 준비한 여행이고, 어떻게 빼낸 두 달인데. 하지만 그 말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거렸던 친구는 화장실에 가서 갑작스런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 울다 나왔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헤어졌다. 두 달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 공항,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 이야기 쉰다섯, '중심으로' 중에서

     

    그러니 떠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기갈 들린 사람처럼 천박해 보여도 좋다. 떠나서만큼은 닥치는 일들을 받아내기 위해 조금 무모해져도 좋다. 세상은 눈을 맞추기만 해도 눈 속으로 번져들  설렘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 이야기 쉰, '환상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중에서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 이야기 쉰넷,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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