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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리스본, 마지막 밤
    여행을가다 2015. 8. 23. 12:28

     

     

     

     

     

     

     

     

     

     

     

     

     

     

     

     

     

     

     

     

     

     

     

     

     

     

     

     

     

     

     

     

     

     

     

     

     

     

     

     

     

     

     

     

     

       리스본의 소매치기 언니들을 만난 뒤, 간이 콩알만 해진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운을 내보자고 결정했다. 여행 전, 점심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블로거들의 이런저런 추천 맛집을 찾아보고 수첩에 적어두고 구글지도에도 저장해뒀는데, 이 곳은 그 중 하나였다. 뭐라고 써뒀냐면,

     

    Cervejaria da Trindade 세르베자리아 다 트린다트

    레스토랑 겸 맥주홀 -> 흑맥주 (엄지 척!) 1.80

    사그레스 맥주회사에서 옛 수도원을 개조해서 운영

    Rua Nova Trindade 20C

    매일 10시-1시 30분

    새우, 삶은 조개요리 15-

    포스 궁전 옆에서 전차형 엘리베이터 글로리아선 이용

    하차 후 도보 5분

     

       흠. 이 때 리스보아 카드는 만료되었으니, 내일 오전까지 쓸 비아젱 카드를 사서 소액 충전했어야 했는데, 리스본은 작은 도시야.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오후내내 걸어다녔다. 덕분에 일사병 걸리는 줄 알았다. 결국엔 밤에 파두 가게를 가려고 샀는데, 여차여차해서 그 곳도 못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뒤에. 그러니까, 저 곳을 찾아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골목길을 몇 번 헤매다 찾았다. 와! 메뉴판을 보고 새우 요리와 흑맥주를 시키고 바 자리에 앉으려는데, 뭔가 그럴 듯하게 생긴 해물샐러드가 보였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메뉴판을 보여 주면서 해물 샐러드인데 세 종류가 모두 포함된 메뉴가 있다며, 작은 종지 그릇을 보여줬다. 하나는 문어, 하나는 병아리콩, 하나는 생선의 알인 듯 했다. 포르투갈에서 문어를 꼭 맛봐야 한다고 했고, 나는 생선알을 아주아주 좋아하니 금상첨화 메뉴. 새우를 취소시키고 샐러드로 달라고 했다. 커다란 잔에 흑맥주가 가득 따라졌다. 먹음직스런 안주가 세 종류나 나오고, 약하긴 하지만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기까지 하니 지금 이 곳이 내겐 천국. 매니저로 보이는 아저씨는 무척이나 친철해서 내게 몇번이나 맛있냐고 물어봐줬다.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 어디로 갈까 가이드북을 꺼내 보고 있었다. 아직 이른 오후였다. 방금 막 출근한 아저씨가 내가 혼자 가이드북을 보고 있자 매니저 아저씨에게 커다란 지도를 가져다 주라고 했다. 매니저 아저씨는 내게 두꺼운 지도를 가져다주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오르리가다! 내 계획은 이랬다. 가이드북 73페이지에 소개된 카르무 수도원의 소개가 흑맥주를 진하게 마신 내 눈에 들어왔다. '카르무 수도원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명소이다. 대지진으로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으나 뼈대만 보더라도 당시 웅장함과 세련됨을 상상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그래, 이 곳에 가자. 가서 지금은 없어진 부분을 상상하며 거닐자. 그런데 지도를 보니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원하는데. 그래서 매니저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여기 가고 싶어요. 걸어서 갈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오케이, 라고 했다. 멀지 않다고, 니가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직접 나와서 어떻게 가는지 알려줬다. 이상했다. 지도 상의 거리와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거리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나는 리스본에서 계속 지도 거리를 착각했으니 아저씨 말이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가 알려 준대로 걸었다.

     

        다시, 기분 최고. 하지만 기분 최고이면 꼭 문제가 뒤따르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리스본에는 카르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이 두 군데 있다. 아저씨는 가까운 곳의 카르무를 알려줬고, 내가 가려던 곳은 멀리 있는 카르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다가 그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이어폰을 끼었다. 가보자, 땡볕에 한번 걸어보자. 그렇게 한참을 걸은 뒤에 근처까지 왔는데, 잠시 가이드북을 꺼내 보니 거기에 적혀 있었다. Close 일요일. 헉! 뷁@#!@$%#$%*^%$$#@!! 아, 아까 비아젱 카드를 샀었어야 했는데. 그럼 트램을 타고 돌아가는 건데. 중간에 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워서 동네 구경을 조금 하고 걸었다. '리스본은 덥다', '오늘 정말 많이 걷는구나', '나는 익어가고 있어', 라는 생각을 하며 줄곧 걸었다. 다른 생각 따위는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 앞으로 브라질스러운 남자여자 아이들이 떼지어 나타났다. 뭔가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앞지르기도 그렇고 해서 뒤따르며 걸었다. 드디어 나타난 카이스 두 소드레 역. 이 곳에 도착한 거면 조금만 더 걸으면 코메르시우 광장이라는 거고, 그 말은 숙소가 가까이 있다는 거다.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사려고 가판 앞에 줄을 섰는데, 생맥주 파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뜨거운 강가에 앉아 맥주 한 컵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행위 예술을 하는 아저씨 구경도 했다. 아저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모자에 동전을 넣었더니 아저씨가 사진도 같이 찍어줬다. 오브리가다.

     

       숙소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궁리했다. 어떻게 해야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잘 보낼까. 일단 죽이는 일몰을 봐야지. 조그마한 가게에서 파두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근처 지하철 역에 가서 비바 카드를 사고 최소한의 금액을 충전하자. 트램을 타고 성 조르제 성으로 가자. 거기서 보는 일몰은 황홀할 지경이라니까.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자. 가족 단위의 자그만 레스토랑을 알아봤다. 평이 장난 아니다. 저렴하고, 가족들이 직접 하는 파두 공연도 좋고, 음식도 맛있단다. 좋아. 출발.

     

        하지만, 결론은 비바 카드 사고 충전까지만. 12번 트램을 30분 넘게 기다렸다. 잠깐 멍 때리고 있는데 트램이 왔고 정류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 앞을 유유히 떠났다. 그렇다면 또 30분 넘게 트램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몰라. 그냥 포기하자. 해가 진 어두운 알파마 지구를 혼자 빠져나오는 것도 걱정이 됐었다. 다시 숙소 로비로 들어가 인터넷 검색을 해서 누군가 추천해 놓은 맛집을 찾았다. 그 전에 다시 코르메시우 광장에 가서 테주 강 일몰을 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이에 해가 스물스물 지기 시작했다. 강가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금새 쌀쌀해졌다. 강가에 앉아 해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이것도 좋으네. 한 여자아이는 물이 차 오르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테주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서.

     

        여기선 해가 10시 즈음에 지니까,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벌써 8시가 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검색해온 맛집을 찾아 나섰다.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가면 근사한 노을을 앞에 두고 저녁을 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지. 하하. 그러니 단번에 가게를 찾지도 못했다. 헤매고, 헤매고, 헤맸다. 쉽게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진도 캡쳐해 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명했던 머릿속 리스본 지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설마 이 쪽은 아니겠지, 싶으면 정말 그 쪽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이 쪽? 하면 아니아니, 아니였다. 맙소사! 오늘 밤도 저녁을 먹지 못하는 것인가. 오기가 났다. 어떻게든 찾아내리라. 다시 설마 이 쪽은 아니겠지, 싶은 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은 저렴한 식당이 보였다. 여길 들어갈까. 오늘 밤도 굶을 순 없으니. 흠. 저 위로 뭔가 느낌이 와. 한번만 올라가 봤다가 저기에도 없으면 내려와서 여기서 먹자. 그렇게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간판. 맙소사! 내가 찾던 그곳이었다. 너무너무 기뻤으나 함께 그 기쁨을 누릴 사람이 없었으므로, 골목길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웨이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냉큼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화이트 와인 한 잔과 브라질식 대구요리를 시켰다.

     

       해는 이미 져서 깜깜하고 바람이 미친듯이 불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역시 기분이 최고면, 문제가. 대구요리가 나왔다. 계란과 대구, 올리브를 볶은 요리였는데, 읔. 어쩌지. 너무 짰다. 포르투갈 요리가 짜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금을 그대로 씹는 느낌이었다. 아.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안다. 이럴 경우란 분위기는 좋은데, 음식이 맛없는 경우. 술 마시고 취하면 된다. 부산에서 Y언니랑도 그랬었더랬다. 그래서 맥주를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짠 맛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반 이상이나 음식을 남겼다. 여기가 맛집이 맞는 걸까.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모두 이 가게 바로 위에 있는 집으로 갔다. 윗집은 북적북적했다. 그래도 내겐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갔으므로. 괜찮았다.

     

        내가 맥주 잔을 비워갈 즈음, 계단을 오르던 한 외국인이 맥주도 파냐고 물어보더니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혼자 맥주를 마셨다. 나도 맥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포기. 담요를 덮고 있었지만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춥다. 낮의 더위가 무색할 만큼. 포르투갈에는 팁문화가 없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계산을 하고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계속 친절했던 아저씨가 마지막에 조금 험상궃은 얼굴로 '사요나라'라고 말했다. 그 표정이 영 마음에 걸려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인터넷 검색을 한 뒤 물어봤다. 혹시 노천에서 먹었어? 어. 포르투갈이 팁 문화가 거의 없는 편이긴 한데, 노천에서 먹었을 경우에는 팁을 줘야 한대. 아;;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였다. 바람이 쌩쌩 부는 리스본의 밤을 가로지르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조용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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