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를보다'에 해당되는 글 66건

  1. 연휴동안 2 2016.10.05
  2. 오구실 2016.02.03
  3. 오렌지 데이즈 6 2014.10.19
  4. 최후로부터 두번째 사랑 4 2014.06.07
  5. 아내의 자격 7 2014.04.12
  6. 세계테마기행, 설국 6 2014.03.15
  7. 고잉 마이 홈 2 2013.11.24
  8. 연우의 여름 14 2013.10.28
  9. 마호로역전번외지 2 2013.09.28
  10.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4 2013.08.30

연휴동안

from 티비를보다 2016. 10. 5. 23:57



할머니의 먼 집

립반윙클의 신부

다가오는 것들

바다의 뚜껑

물숨


   연휴 동안의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연휴 내내 씻기도 싫고, 나가기도 귀찮아서 이틀 내내 집에만 있었다. 집에서 보쌈도 시켜먹고, 통닭도 시켜먹었다. 아, 맥주 사러 마트에 한 번 나갔다. 그래서 살도 쪘다. 집에 있으면서, 책도 읽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고, 내내 티비만 봤다. 아, 한심하다. 티비를 끄고 책을 읽자, 티비를 끄고 밖으로 나가자, 생각만 수십 번 하고. 마침 비가 내려주었던 순간도 있어서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마지막 날에는 너무 심한 것 같아, 상암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영화 한 편을 보고,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왔다. 저 리스트 중 <다가오는 것들>만 성공했다!


  그래도 연휴 동안 건진 게 하나 있다. 드라마 <공항가는 길>. 이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됐다. 연휴 때까지 4회가 방영되었는데, 그 전에 잠깐씩 스쳐 지나가며 보긴 했었다. 그렇게 잠깐씩 보면서도 마음에 남는 대사들이 있어서, 이번에 3, 4회를 재방송해주길래 유심히 봤더니 꽤 괜찮은 거다. 불륜드라마이고, 상황들이 꽤 억지스럽고, 대사들이 문어체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음악이 좋고, 문어체스러운 대사도 꽤 근사하고, 김하늘과 이상윤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봄날은 간다>, <사랑해 말순씨> 작가의 드라마 입봉작이었다. 드라마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나는, 참지 못하고 1, 2회를 돈 주고 결제를 해서 찬찬히 보았다. 그리고 재방해주는 시간을 체크해두고 3, 4회도 다시 보았다. 그러니 그 전에 보이지 않던 이야기들이 보였다. 아, 좋으다 생각했다. 


   오늘은, 김하늘과 이상윤이 삼무사이가 되었다. 바라는 것, 만지는 것, 헤어지는 것이 없는 사이. 김하늘이 말했다. 우리 애매한 사이가 되요. 사랑한다, 좋아한다, 감정이 확실해져도 말하지 말아요. 그래야 오래갈 수 있어요. 이상윤이 말했다. 이상하게 설득이 되네요. 예고편을 보니 이 삼무는 바로 깨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래는 연휴 동안 내가 건진 대사들. 마음들이다. 잊지 않으려고 메모해뒀다.


- 혹시 제가 보입니까?


- 제가 보여요?

지금 만날 수 있어요?

만나고 싶어요.


- 매뉴얼대로 움직이다 보면 매뉴얼대로 느끼게 돼.


- 한번이라도 누굴갈 좋아해봤음 다행이죠.


- 그러게. 힘들지가 않네요.


   그리고, '비 그친 뒤 파란 자동차 위의 빗물들'이라고도 메모해뒀다. 설마 출발이 무척 좋았던 <달콤한 인생>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수목은 공항에 가는 걸로- 아, 연휴에 가을맥주도 마셨다. 말할 것도 없이 맛났다. :)




,

오구실

from 티비를보다 2016. 2. 3. 23:11

 

 

 

   지난 12월의 메시지.

- 언니 72초티비 오구실 알아?

- 엉 보는데 언니 생각나.

- 귀엽고 몽글몽글한 드라마임.

 

    M 덕분에 알게 된 드라마. 12월에 한번 보고, 1월에도 또 한 번 봤다. 2월이 되었으니 한 번 더 봐야지. 몽글몽글한 드라마를 보고 내 생각을 해 준 사람도 고맙고, 오구실도 고맙네. 오구실도 나처럼 연애고자네. 그렇지만 몽글몽글한 연애고자인 것이다. 연어덮밥과 우동을 나눠 먹는 야근, 술이 잘도 들어가서 조심해야 되는 날 잠깐 밖에 나와 바람 쐬는데 따라나오는 두근거림, 무심하게 내일의 약속을 잡는 쫀득쫀득함, 해장국을 먹고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는 휴일 아침. 아, 오구실. 어떻게 그걸 까먹었어. 보고 있으면 마구마구 설레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2월에는 연애고자짓을 하지 않겠다!

 

 

 

,

오렌지 데이즈

from 티비를보다 2014. 10. 19. 20:38

 

 

 

    연인이 된 카이와 사에. 사에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몇년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둘은 만나게 되고, 모난 성격의 사에를 카이는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사에는 그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서 너무 고맙지만 자신의 현실 때문에 행여 그에게 누를 끼칠까봐 더 모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카이에겐 똑 부러진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만 각자 키워간다.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 바라는 미래가 달라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카이. 두 사람은 그 마음을 대놓고 들켜버리고, 어느새 연인이 된다.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가게 된 두 사람.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카이를 사에는 멀리서 지켜본다. 레코드 가게를 나서며 사에가 카이에게 묻는다. 그 곡 어떤 느낌이야? 카이는 당황한다. 어떤 느낌이지? 어떤 느낌. 밴드 곡이었는데, 카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한다. 애절한 느낌이 드는 곡이야. 사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카이인지 사에인지 누군가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아래로 하고 코까지 일직선으로 떨어뜨린다. 그건 일본어로 소-. 그래, 라는 뜻의 수화다. 그날부터 카이는 그 곡의 느낌을 그림을 그린다. 사에를 위해. 나중에 완성된 그 그림에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고, 그 병에 빨간 장미꽃이 꽂혀 있다. 그 병 안에 남자와 여자와 등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쿠루리의 곡이다. 드라마를 보고 이 곡을 계속 듣고, 가사도 찾아봤다. 그러다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그 그림이 완전히 이해가 됐다. 아, 하고 혼자서 지하철 안에서 웃었다. 마음이 이상해졌다. 막 설레였다.

 

    이 드라마를 왜 이제 보게 된걸까. 예전에 한번 보려고 했었는데, 사에가 너무 모난 성격이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1회만 보고 그만두었던 것 같다. 끝까지 보니 그건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될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던 착한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와야 하냐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던 현실적인 아이였다. 어떤 순간은 좋아한다고 말하고, 금방 마음을 돌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건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 카이는 그 마음을 다 알았다. 좋아한다고 말할 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도 그녀를 다 이해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사에가 부러웠다.

 

    카이. 그러니까 사토시는 이 드라마에서 어찌나 빛나던지. 진짜 최고. 사토시는 진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에에게 지었던 그 표정들. 안타깝고 서운하고 서글퍼하던 그 표정들. 너는 이제 나랑 헤어지고 서른 두살이 되었을 때, 20대에 이런 저런 여자들을 만났고 그 중에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라고 회상하게 될 거라며 이별을 통보하는 사에에게, 그럴리는 없다고,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없다고, 스물 두살의 그 이야기만 무한반복할 뿐일 거라고, 말하며 지었던 그 진짜 스물 두 살의 표정. 그 표정들 때문에 지난 일주일 간 마구 설레였다. 사에, 카이.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사에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화를 조금씩 배워오던 오렌지 데이즈의 친구들도. 이제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화는 외국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 그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 처럼. 사에를 만나기 위해 배우는 또 하나의 언어. 손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 드라마에서 수화를 쓸 때 무척 좋았다. 덕분에 사토시의 목소리도 더 좋게 느껴졌다.

 

 

 

,

 

 

 

    나, 이 언니에게 완전히 반했다. 이름은 치아키. 나이는 46살. 독신이다. 직업은 드라마 프로듀서. 이야기는 치아키가 카마쿠라라는 도쿄 근교 도시의 오래된 주택을 구입해 살면서 시작된다. 이 언니는 이쁘고, 당당하고, 예의도 바르다. 할 말은 확실하게 하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래서 이 언니의 집에는 상담손님이 제 집인양 끊임없이 방문해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하고, 맥주를 그냥 막 꺼내 마시고, 주인없는 집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완벽해보이지만 이 언니에게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거의 먹여 살린 연하의 남자가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고하기도 했고, 카마쿠라에서 다 같이 살자는 술자리 친구들의 말을 믿고 바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결국 치아키만 카마쿠라에 집을 얻었다. 이 언니가 정말 멋진 건,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불치병에 걸렸었고 재발하면 살지 못한다는 고백을 해도 아직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 하면서 힘을 준다. 옆집의 히키코모리 여자아이가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에도, 치아키는 웃으면서 고마워, 라고 말한다. 사귀는 사람의 형이랑 술에 잔뜩 취해 키스를 했다고 생각했을 때나, 결국 하게 되었을 때도 정색하는 남자를 보고 자신에게서 그런 순수함은 언제 빠져나가버린 걸까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46살이 된 여자와 50살의 남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이 때문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이야기가 끊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구 갈궜다. 겉으로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스페셜 드라마를 보니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여동지와 얘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하고, 남자는 남동지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뻥 뚫린 곳에서 한참을 떠들더니 남자가 말했다. 속이 시원해졌다고.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줬다. 출근길의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퇴근길의 개찰구에서 여자가 카드를 찾지 못해 가방을 뒤적거리는 걸 매번 보면서, 전철역에서 걸어나와 기차길을 함께 건너고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느 날은 동네 술집에 들러 걸쭉하게 술을 마시면서, 매일매일 말꼬리를 잡으며 옥신각신 다투면서, 술에 잔뜩 취해 평소보다 열배는 더 분위기 업 되어 큰소리로 웃고 서로의 몸을 찰싹거리면서. 여자의 생일 날 남자는 46개의 초를 준비한다. 여자는 큰 거 4개, 작은 거 6개나, 이쁜 숫자초를 준비하지 이게 뭐냐고 투덜거린다. 남자는 그건 초의 갯수만큼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라며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51살 생일을 51개의 초로 축하한다. 흠. 46개나 51개나 초에 불을 붙이면 케잌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한 회 한 회 지날수록 이야기며 인물들이며 좋아져서 나름, 아주 천천히 아껴봤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사랑스러운데, 치아키의 친구들도 그렇다. 치아키와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신다. 셋 다 독신. 술을 마시며 결혼해서 누군가 옆에 있는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제 아이는 가질 수 없을 삶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23살 여자아이의 케잌을 보고 딱 절반이구나 하고 자신들의 나이를 곱씹기도 하고, 선택받지 못한 채 몇 바퀴를 계속 돌다가 결국 버림을 받는 회전초밥집의 3종모듬초밥접시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치아키가 그런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앞으로 사랑이 다가오면 그게 우리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랑이라고 생각하자고. 외로움을 감추지 위해 사랑을 하진 말자고. 사랑이 없어도 멋진 인생은 분명히 있다고. 46살 독신. 인생에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롭지 않은 어른따윈 없다고.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자고. 이 언니, 정말 멋지다.

 

 

 

,

아내의 자격

from 티비를보다 2014. 4. 12. 17:15

 

 

 

   이십 대에 꿈꾼 사랑이 있었다.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래서 내 생활이 망가지는 것도 개념치 않는 그런 사랑이었을 거다. 삼십 대에 꿈꾸는 사랑도 있다. 이십대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게 무모하게 아프고 싶지는 않다. <아내의 자격>을 보고 사십 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십 대 때는 어리석게도 삼십 대의 사랑은 없을 것만 같았다. 삼십 대가 되니 사십 대의 사랑 같은 건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사십 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십 대에도, 오십 대에도, 육십 대에도 사랑은 계속될 거라는 사실. 그게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새롭게 만나게 될 사람일 수도 있고, 짝사랑일 수도 있고.

 

   김희애가 이성재와 동거를 시작하게 됐을 때, 함께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말한다. 조곤조곤 따박따박, 극 중 김희애의 성격대로 그렇게 말한다. 각자 방을 하나씩 두고 생활하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날을 정해 그 날만 합방해요. 그게 말이 되냐는 이성재의 말에 김희애가 그런다. 솔직히 매일매일 한 방에서 부인이랑 자는 거 좋았어요? 나는 아니었어요. 책 읽다, 하고 싶은 것 하다 그렇게 각자 자고, 일주일에 한번씩 한 방에서 자요. 김희애의 그 대사에서 사십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 사랑은 계속되겠지.

 

   <밀회>를 봤다. 꽤 괜찮았다. 그러다 김희애의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아내의 자격>에서 감독과 작가와의 만남이 참 좋아서 이번에 제의가 왔을 때 무조건 오케이를 했단다. 그래서 다시 찾아봤다. 예전에 이 드라마의 캠핑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김희애의 캐릭터가 너무 답답해보여 더 보질 않았었다. 다시 보니 그 캠핑 장면이 이 드라마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보니 김희애의 그 답답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됐다. 주말에 보기 시작했는데 1회부터 시작해서 연속으로 쭉 봤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한 회씩 아껴 봤다. 순식간에 16부작을 모두 다 봐버렸다.

 

    마음에 많이 남았던 장면들은 책이었다. <밀회>에서도 유아인에게 김희애가 책을 보낸다. 하고 싶은 메세지와 닮은 문장에 밑줄을 그어서. 그게 참 좋았다. <아내의 자격>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이혼을 결심한 김희애가 잠자리에 든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 나지막하게 책을 읽던 김희애가 갑자기 흐느낀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슬픈 장면이잖어. 그 문장은 김희애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대변하는 문장들이었다. 나중에 아들은 그 문장을 혼자 읽는다. 그리고 그때의 엄마의 흐느낌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더 굳건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보였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의 문장이었다.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조용히 걷기만 하다가 말씀하셨다. 종종 낙심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네 일에 충실했지. 나는 너를 깊이 믿는다. 그러니 용기를 내렴. 너라면 국경을 너끈히 넘고 결국엔 저 넓은 세상에 닿을 수 있을거야."

 

   또 하나는 이성재가 전 부인 이태란에게 보여준 밑줄이다. 둘은 함께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CC. 세상은 변했고, 여자도 변했다. 이태란은 대치동에서 잘나가는 학원 원장이다. 이성재는 너무 속도를 내는 이태란을 항상 염려했었다. 이태란은 부를 얻었고, 더 큰 부를 쫓았다. 이성재는 그게 불만이었다. 이성재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희애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더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랑은 예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다. 학원 비리로 감옥에 수감하게 된 이태란을 찾아가 어떤 문장을 보여준다. 그건 두 사람이 학생운동을 할 때 열심히 읽고 밑줄을 그었던 문장이다. "속도가 한계를 넘어서면 누군가가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의 시간 손실을 강요하게 된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의 문장이다. 이태란은 이제 자신에게 필요없는 문장이라고 한다. 자신은 이미 속도의 쾌감을 맛 보아서 멈출 수가 없다고.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위로가 필요한 김희애가 이성재에게 전화를 해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한 장면, 김희애가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아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 자신 때문에 어른스러워버린 아들이 미안하고 안타까워 꼭 안아주는 장면 등등.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김희애는 너무 예쁘고, 이성재처럼 너무 멋지다. 김희애의 시댁은 왜 결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저질이고, 두집 살림을 하는 남자는 참으로 당당하다. (사실 얄밉지만, 몰락하는 모든 사람은 불쌍하다. 그렇게 저질이었던 시댁도 몰락해 엉엉 우는 장면을 보니 좀 측은하더라.)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이 드라마에 딱 들어맞는다. 모든게 너무 드라마적이지만 그래도 사십대의 사랑이 있다는 걸 믿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는 걸.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였다. 간만에 한국드라마로 행복했다. 이성재가 이태란에게 보여줬던 그 문장의 책 제목으로 이 드라마를 요약할 수 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일본행의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소설가 나카자와 케이 씨와의 만남이다. 그녀와는 2000년 5월(아오모리)과 2002년 11월(원주) '한일문학작가회의'에서 두 번 만났는데, 원주에서 만났을 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눈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말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일본 동북부의 아키다나 야마가타로 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정말 눈 때문에 갈 거라면 말이다.

- 윤대녕, <눈의 여행자> 작가의 말 중에서

 

 

    다시보기 리스트를 뒤적거리다 EBS 세계테마기행 일본 설국 편을 봤다. 윤대녕의 책에서 본 것처럼 홋카이도만큼 혹은 더 많은 눈이 내리는 지역이었다. 혼슈 지방의 나가노, 니가타, 기후, 아오모리. 처음에는 겨울을 보내며 눈 구경이나 실컷하자는 마음이었는데, 다큐를 보면서 여행을 소개하는 단국대 이권희 교수의 행동이 재미났다. 무척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인 것 같았다. 북알프스 눈밭에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설피 한 짝을 잃어버리고는 내일 찾으러 와야겠다고 허허 웃고, 마츠오야 온천마을에서 열린 신랑 던지기 대회에서 육중한 몸을 날려 새신랑 친구들을 녹다운시키고, 만선한 방어잡이 배에서 커다란 생선을 집어 올리려다 넘어질 뻔 하고. 혼자서 보다가 소리내서 웃었다. 학교 강의도 재미나게 하실 듯.

 

   일본 설국 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탓에 탄생한 난쟁이 모자 같이 뾰족한 지붕이 나오고, 그 오래된 가옥에서 먹는 담백한 생선 화로구이도 나온다. 노리노 마을에서는 겨울 바람과 햇빛에 삶은 무를 말렸다 얼렸다 반복해서 저장 식품으로 만들어 일년 내내 먹는다고 한다. 그 무를 만드는 아주머니께서 제작진과 헤어지면서 한 인사는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요'였다. 동글동글한 미소를 지으시는 아주머니였다. 니가타에서 이권희 교수는 온천수에 띄운 뜨끈뜨끈한 사케도 마시고, 5잔에 500엔 하는 사케 자판기에서 소금과 함께 사케를 마셨다. 술에는 단맛과 매운맛은 있는데, 짠맛만 없어서 소금과 함께 마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린 눈으로 눈산을 만들어 술을 저온저장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방어잡이배에서 내려서는 갓 잡은 생선을 숯불에 구워 한마리 통째로 간장을 솔솔 뿌려 육고기 먹듯 뜯어 먹기도 했으며, 오래된 난로가 있는 옛날 기차에서 구운 오징어를 찢어 먹기도 했다. 파우더 눈이 내리는 산의 정상에서는 너무 추워 나무 위에 눈이 그대로 얼어버린 얼음나무도 구경했다. 이권희 교수는 이런 추위는 생전 처음이라고,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나무는 봄이 되면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의 나무가 된단다. 전기 없이 호롱불로만 밤을 밝히는 깊은 산 속의 고요한 료칸에서 노천온천을 하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가마우지 새로 은어잡이를 하는 우쇼를 만났고, 근사한 풍경을 바라보며 노천족욕을 하며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의 실제인물이기도 했다. 이권희 교수는 그 분들 집에서 멧돼지 고기로 만든 요리를 얻어 먹었다.

 

    이렇게 겨울이 간다. 제주에는 벌써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는데. 또 다른 어딘가에선 봄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만큼 빨리 늙어가는 기분이다. 언젠가 정말 추운 곳에서 여행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운 지방에는 2월에도 한겨울처럼 눈이 펑펑 오는구나.

 

 

    나는 우선 니가카로 갔다. 거기서 하루 묵은 다음 기차를 타고 겨울 해안선을 따라 아키타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보름 동안 나는 눈이 퍼붓는 곳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한 다음 나머지 보름 동안은 오직 쓰기에 매달려 초고를 완성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2월의 일이었다.

- 윤대녕, <눈의 여행자> 작가의 말 중에서

 

 

,

고잉 마이 홈

from 티비를보다 2013. 11. 24. 15:41

 

 

 

   어젯밤, 드디어 마쳤다. 고잉 마이 홈. 처음 방영을 시작했을 때 시도했었는데 매번 2시간 가까이 되는 1화를 넘기지를 못했다. 가을. 뭔가 마음에 진하게 남을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가볍지 않고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 우리 집에 여덟 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가슴 정도까지 오는 복층 공간이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올라갈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씩 쌀쌀해지자 밤이 되면 올라갔다. 따뜻한 이불을 깔아놓고 그리고 덮고서는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1화부터 천천히 봤다. 늘 한 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어떤 날은 반쯤 보다 잠들었고, 어떤 날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켜자마자 잠들었다. 같은 회를 여러 날에 걸쳐 봤다. 그렇게 조금씩 보니, 그 시간들이 기다려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집에 가서 얼른 씻고 올라가서 드라마를 보며 잠들자 생각했다. 초겨울이 왔다, 드디어 마쳤다. 이야기가 끝났다.

 

   어제는 전날의 숙취로 낮에 세시 넘어서까지 계속 잠을 잤다. 그러고 나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에 혼자 말똥말똥했다. 비장한 각오로 노트북을 켰다. 마지막 회다. 이 드라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이야기가 시작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동안 서먹하고 어색하고 짐을 떠밀기만 했던 가족들이 서로의 기억들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걱정하고, 이해하게 되어가는 이야기, 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은 어느 밤, 아버지의 죽은 얼굴을 마주하고 혼자 흐느끼며 운다. 서럽게 운다. 엉엉 소리내며 운다. 자기 곁으로 오는 아내에게 말한다.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았을 걸. 아내가 손수건을 건네며 미소 지으며 말한다. 더 할 얘기 없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남자가 말한다. 후회인가. 아내가 말한다.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말이잖아. 남자가 말한다. 그럼 후회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아내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렇네. 나쁘지 않을 지도.

 

   다다이마.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이 말은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인사말. 장례식에 다녀온 미야자키 아오이가 아무도 없는 집에 대고 '다다이마'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장례식을 함께 다녀온 아버지가 가만히 딸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지금 한 말을 다시 해보라고 한다. 다다이마, 이 말 다시 해 봐. 딸이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한테 한 말 아니야. 엄마한테 한 거야. 엄마는 죽었다. 아빠가 말한다. 그래도 좋아. 다녀왔다는 말 좋네. 그리고 함께 웃는다.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정원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나무 의자.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의 손자가 만들어온 녹기 전의 눈사람.

   쿠나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보라색 꽃으로 만든 한 다발의 꽃.

   나무와 단풍과 집과 산의 풍경들이 지나가고 드라마가 끝난다. 끝났다. 

 

   영화 <라스트 나잇>에서도 그 장면이 좋았다. 다툰 두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화해를 하며 남편이 아내에게 만들어 주던 오믈렛. 계란을 풀고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 접시에 담아 내밀던 그 새벽의 온도. 이 드라마에서도 함께 먹는 음식의 모습이 자주, 그리고 정성스럽게 비춰진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베란다의 문을 고치다 베란다에 갇혀 버린 남편.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다. 잠옷 차림의 남편은 밖에서 베란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똑똑똑. 안에서 딸과 함께 잠을 자던 아내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파와 브로콜리를 볶고 우유를 넣은 따뜻한 스프를 만들어 준다. 두 사람은 그 음식을 만드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다. 당신 전봇대 역할을 했단 말이야? 사람이 아니잖아, 하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스프 그릇을 내밀고, 남편이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참고 참아 마지막 회까지 보길 잘했다.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짙은 드라마였다. 다다이마, 라고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가족에 대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생각했다. 그리고 1화를 다시 틀어놓고 잠들었다.

 

 

 

,

연우의 여름

from 티비를보다 2013. 10. 28. 10:26

 

 

  

    은행 갈 일이 있어 월요일 연차를 냈다. 동생에게 미리 말해두지 않아 알람을 끄면서 계속 자는 나에게 동생이 지금 6시 40분이야! 일어나! 한다. 연차야, 말하고 잤다. 일어나니 7시 40분이다. 어제 동생이 사온 새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고구마 하나와 닭가슴살 하나로 아침을 때웠다. 은행에 다녀왔다가 마트에 가서 미니 믹서기를 사기로 했다. 김민준이 <나 혼자 산다>에서 작은 믹서기로 쥬스를 만들어 먹었는데, 사이즈가 아담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검색해보니 가격도 저렴하다. 어제 보고 자려다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못봤던 드라마로 월요일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연우의 여름>.

 

    교통사고 때문에 엄마의 일을 대신하게 된 연우. 연우는 인디밴드 보컬이다. 청소일을 엄마가 나을 동안 대신 맡게 되었다. 그 회사에서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된다. 동창은 사내 아나운서. 친구는 연우에게 자기 대신 소개팅에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연우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거절을 못하고 소개팅에 나간다. 연우가 아닌 지완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 약속장소 앞에 연우는 지완의 옷과 구두와 귀걸이를 하고 어색하게 서 있다. 윤환은 정장을 입고 백팩을 메고 쭈빗하게 서 있다 연우, 아니 지완에게 온다. 윤환은 예약을 하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대기 시간이 길다. 윤환은 지완에게 예약을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완은 괜찮다며, 배가 고픈 것보다 발이 아프다고 말한다. 고기집 밖에 대기해 있는데, 지완이 조금 덥네요, 하면서 겉옷을 벗는다. 목 위로 흐르는 땀을 본 지완이 우리 가요, 한다. 두 사람은 결국 한강 둔치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윤환은 종이를 꺼내 지완의 발 옆에 둔다. 지완은 높은 하얀색 구두에서 발을 빼내 종이 위에 맨발을 올린다. 그리고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따라가느라 좀 힘들거든요. 그냥 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쉬어요, 우리.

 

   너무 드라마 같은데, 상황도 그렇고, 대사들도 그렇고. 그런데 좋다. 공감이 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두근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마지막에 지완은, 아니 연우는. 이제 연우다. 연우는 자신의 멜로디에 솔직하고 귀여운 가사를 완성한다. 제목은, 제 이름은요. 노래 중간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화면에는 계속 연우가 노래하고 있지만, 알 수 있었다. 윤환이 왔다는 걸. 카밀 핸드크림. 우쿨렐레. 수첩. 크레딧을 보니 정바비 음악이었다.

 

    이제 나가서 은행에 갔다가, 영화 한 편을 보고, 책을 좀 읽어야지. 새로 읽기 시작한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그 무렵, 나는 남을 대할 때, 모든 것을 숨기거나 모든 것을 털어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밀린 구몬 일어도 하고, 마트에 들러 콘센트와 믹서기를 사고, 동생의 수선 맡긴 옷도 찾고. 핸드크림과 헤어팩도 사야겠다. 창덕궁 후원에 가고 싶었는데, 월요일은 쉬는 날이네. 어제 <결혼의 여신>이 끝났다. 억지 설정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우연, 주인공의 답답한 성격 때문에 욕하면서도 계속 봤는데, 뭔가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이 드라마를 계속 본 건 첫회에 나왔던 제주도 풍경 때문이었다. 마지막 회에 예상대로 제주도가 나왔다. 억새풀이 만연한 제주. 시간이 많이 흘러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

마호로역전번외지

from 티비를보다 2013. 9. 28. 08:53

 

 

    

    오래된 지인이 소개해주는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는 결국에는 좋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니, 그 사람이 좋다고 한 것이 내게도 좋은 건 당연한 일. 그런데 반신반의할 때가 있다. 처음이 힘든 종류의 것들. Y언니가 추천해 준 이 드라마도 그랬다. 처음에 재미가 없고, 30분 여 남짓의 1회를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Y언니가 미리 해준 충고. 1회 보고, 2회 정도만 보고 나면 그 뒤로는 재밌게 술술 넘어갈 거라고. 그렇게 인내의 1회와 2회를 지나니 정말 언니의 말처럼 재미있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마지막회까지 금방 봤다.

 

    마호로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다다와 교텐이 있다. 두 사람은, 아니 실질적으로 에이타인 다다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의뢰가 들어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심부름을 수행해 내려고 한다. 마츠다 류헤이인 그의 파트너 교텐.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교텐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나사가 다섯 개 쯤 풀린 듯한 교텐. 그의 특유의 웃음이 있다. 장난스러운 듯하면서 어이없는데 재밌다는 듯 뱉어내는 웃음. 그것도 중독이다. 다다의 일에 심드렁한 듯 보여도 항상 함께하는 교텐. 무심한 듯 하지만 속이 깊고 따뜻한 남자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사건을 맡으며 일어나는 소소하고 조금은 따듯한 이야기들이다. 생각보다 어둡진 않다. 보면서 마츠다 류헤이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고, 에이타는 정말 연기를 잘하구나 생각했다. <최고의 이혼>이랑 같은 분기 드라마인데, 그 찌질남을 떠올릴 수 없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낸다. <최고의 이혼>의 여배우가 마지막 두 회에 걸쳐 나와서 신기했다. 귀여운 드라마였다. 영화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

 

 

 

 

,

 

 

 

 

 

    생협에서 맥주가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네 두레생협에 갔는데, 거기가 아닌가봐. 맥주가 없어서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고 나왔다. 플레인 요구르트도 맛나 보이고, 아버지 두부도 맛나 보이고, 여러가지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빈 손으로 나왔다. 파리빠게뜨에 들러 호밀식빵을 사고, 정육점에 들러 왕란 한 판을 샀다. 시금치도 사고 싶었는데, 짐이 너무 많아 멀리 가질 못하겠어서 실패. 아무래도 생협에서 팔던 치즈는 사 올걸 그랬나보다. 만원이 넘어서 바로 진열대에 놓아버렸는데, 정말 건강해 보이는 동그랗고 커다란 치즈 덩어리였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이 드라마를 봤다. 제목이 아주 길다.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이게 다 제목이라니. 흐-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입 안에 침은 고이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주인공. 주인공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마침 회사에서 엉뚱한 부서로 발령이 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의 가게를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용기를 내어본다. 리모델링을 하고, 자신 있는 메뉴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메뉴는 건강한 샌드위치와 정성스런 스프. 오늘의 샌드위치 두 가지가 있고, 빵은 세 가지 중에 고를 수 있다. 스프는 하나. 오늘의 스프. 조금 엉거주춤해보이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편안한, 키가 큰 여자아이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가게는 개업하자마자 잘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들러 빵과 스프를 먹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오이시이. 주인공과 키가 큰 여자아이는 그 날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 어떤 날은 앞집에 들러 커피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금 더 걸어가 맛있는 안주에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수박>의 대사처럼. 나 이렇게도 괜찮을까요? 그러면 그러니 좋아, 라는 식이다.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내 온 사람처럼 그렇게 한 테이블에 앉아 한 사람은 맥주를, 한 사람은 청주를 마신다. 각자의 취향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1시간씩 총 4화인데, 마지막 회에서는 왠지 눈물이 고였다. 사람들이 맛있는 표정을 보일 때, 늘 혼자 술을 마시던 주인공의 식탁에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별 것 아닌 말에 뒤로 넘어갈 듯 커다랗게 웃으며 고기와 술을 마실 때. 그래, 이렇게 사는 게 맞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속도대로. 누구도 틀린 사람은 없지. 느리다고 뭐라 하면 안 되는 거지. 이런 생각들.

 

    샌드위치들이 다 맛있어 보였지만, 제일 간단해 보이기도 했고,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요즘 몽글몽글한 스크램블이 참 좋다. 내가 하면 다 말라 버리지만. 드라마 속 샌드위치는 이렇다. 센 불에 데친 시금치를 볶는다. 소금도 넣고 후추도 넣고, 적당하게 간 하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다. 몽글몽글, 촉촉하게. 빵 위에 스크램블을 얹고, 시금치 볶은 걸 얹고, 그 위의 치즈, 그 위에 빵. 시금치는 없으니 그냥 몽글몽글 촉촉한 스크램블 만들어서 먹어보려고. 왠지 아침이랑 어울리는 샌드위치 같다. 맛있어야 하는데. 빨리 자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