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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편지들
    서재를쌓다 2013. 9. 14. 22:05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나카무라 요시후미.진 도모노리 지음, 황선종 옮김/더숲

     

     

        새로나온 책 목록을 보다가 발견한 책. <집을, 짓다>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다. <집을, 짓다>의 부제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 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이번 책의 부제는 '세계적 건축가와 작은 시골 빵집주인이 나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건축 이야기'.  홋카이도에 '맛카리무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거기에 '블랑제리 진'이라는 작은 빵집이 있다. 꾸밈 없는 건강한 빵을 장작에서 구워내어 파는 빵집이다. 블랑제리 진에서 장작에서 빵을 구워내는 진 도모노리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게 손편지를 보낸다. '이런 저희 가족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빵집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마무리되는 의뢰서였다. 편지를 받고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감동한다. 손편지를 받아본 적도 오래되었고, 더군다나 설계 의뢰 문의였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오랜만에 직접 손으로 쓴 의뢰 편지를 받아서 그런지 가슴속에 등불이 켜진 듯이 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보았습니다.' 라는 문장이 있는 답장을 보낸다. 그의 편지는 '맛카리무라에서 뵙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로 끝난다. 이 책은 세계적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와 시골 빵집주인 진 도모노리가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부제처럼 따뜻하다.

     

       진 도모노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활달한 아들이 있다. 그들의 빵집이자 그들의 집은, 조립식 패널을 이용해서 지은 집 겸 매장과 장작가마가 설치된 작은 벽돌집과 양철 지붕을 얹은 오래된 창고, 세 건물이다. 진 도모노리가 직접 설치한 장작이 오래되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새로 설치해야 할 지경이 되자 진 도모노리는 평소에 좋아하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에게 의뢰를 한다. 진 도모노리는 빵집 주인이지만, 건축책도 자주 보고 관심도 많고, 직접 집을 고치기도 하는 단순한 의뢰자는 아니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그와 편지를 주고 받고, 직접 그의 빵집을 방문하면서 그가 단순한 의뢰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다. 건축에 관심도 많고, 재능도 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진 도모노리가 제안해 다시 설계를 하고, 그는 무릎을 친다. '그 한마디로 진 도모노리 씨는 의뢰인이면서 동시에 공동 설계자로서 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2010년 8월의 편지다.

     

        겨울을 좋아하고, 추운 계절과 추운 날씨와 추위로 인해 발생되는 따듯함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나는, 이 편지들에서, 그리고 책에 삽입된 사진들에서 느낄 수 있는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맛카리무라의 겨울 풍경들을 보면서 마음이 설렜다. 맛카리무라에는 사람 키를 넘을 정도의 눈이 쌓인단다. 그야말로 폭설. 진 도모노리에게 익숙한 이 풍경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놀랜다. 사람 키를 넘는 눈이라니, 하면서. 이들은 건물을 조금씩 고쳐나간다. 어쩔 수 없이 새로 증축해야 되는 건물에는 이전 건물의 부속품을 떼어내 새 건물의 일부가 되게 해 옛 기억을 계속 이어나간다. 바뀐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예전의 장작가마 벽돌집이 아주 근사한 유럽풍의 손님방 겸 서재로 바뀐 것. 눈이 많이 내린 저녁에 밖에서 이 작은 집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아주 따뜻하다. 창문 너머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보이고 아주 따뜻한 주황색 불빛이 창 너머로 따뜻하게 스며 나오고 있다.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정말 따뜻한 사진이다. 그 사진은 188페이지에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 186페이지에는 책이 가득하고 따뜻한 소파 겸 침대가 있는 방의 풍경사진이 있는데, 그 밖으로 새하얀 겨울의 홋카이도 풍경이 보인다. 이 사진도 무척 따뜻하게 느껴진다. 밤에 이 집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좀더 있는데 사진들이 다 좋다. 사진들에 모두 따뜻한 주황색 불빛들이 있다.

     

      건포도.크랜베리.살구.오렌지.아몬드 등 말린 과일을 듬뿍 넣은 빵, 맛카리무라에서 여름에 채취한 참피나무의 벌꿀을 사용한 벌꿀 빵, 계절 한정의 호밀빵, 1.2킬로그램으로 크게 사각으로 구운 루스티크, 깜빠뉴, 무화과호두 빵, 초콜릿칩을 넣은 부드러운 버터 빵, 에멘탈 치즈를 듬뿍 갈아넣어 만든 치즈 빵, 가마의 뜨거운 열로 바삭하게 굽는 크로아상, 파리에서 빵을 배웠던 가게의 특제품이기도 한 알자스의 전통과자 구겔후프, 파스타에 자주 사용하는 세몰리나 가루를 사용한 빵, 계절에 따라 안에 넣는 크림이 바뀌는 빵. 블랑제리 진에서 파는 빵들이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설계 비용의 반을 빵으로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진 도모노리는 한 달에 두번씩 택배 상자 가득 향기로운 냄새를 담긴 빵이 보낸다. 진 도모노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선생님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빵으로 지불하게요. 이번 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블랑제리 진이 나카무리 요시후미 선생님의 사무실이 없어질 때까지 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와, 따뜻한 책이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곳에는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다운 삶이 있다고 느꼈죠. 욕심을 부려 무리하지 않고 기죽지도 않고, 자신들이 믿는 일과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나가며 만족하는 생활이 있었고, 그 풍요로움과 존귀함을 강하게 느꼈어요."

    - 나카무라 요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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