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결혼기념일 4 2021.09.28
  2. 성격 2021.09.07
  3. 어제 4 2021.09.02
  4. 오, 그래놀라 2021.08.27
  5. 팔월 2 2021.08.17
  6. 어떻게 지내세요 2 2021.08.12
  7. 나의 얘기를 쓰겠소 2 2021.08.05
  8. 군만두 2021.08.02
  9. 메모 2021.07.27
  10. 무지개 2021.07.20

결혼기념일

from 모퉁이다방 2021. 9. 28. 00:17

 

 

  남편이 말했다. "우린 지금 살얼음판이야." 육아를 시작하고부터 우리에게 여러 인내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남편이 참는 경우, 내가 참는 경우, 둘다 어찌어찌 참고 넘어가는 경우, 둘다 정말 못참겠는 경우.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충만한 순간이 더 많다. 어쩌다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조차 생각나지 않는 살얼음판의 순간이 오면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이러려고, 로 시작하는 생각들. 남편도 그럴 것이다. 그 밤이 지나고 나면 (어떨 때는 밤이 지나기도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예민했었다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말 육아는 녹록치 않다. 마음과 몸이 동시에 지치니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말 한마디로 살얼음판을 오르내린다. 얼마 전 영화 <보살핌의 정석>을 봤는데 이런 대사가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가 묻는다. "부모가 되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아빠가 대답한다. "귀에 박히게 들었던 아이 얘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진짜더군요." 정말이다. 진짜 그렇더라. 그동안 우리는 정말 해맑은 신혼이었다.

 

  인내의 순간 중에 서로를 걱정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남편이 참는 경우, 내가 참는 경우, 둘다 어찌어찌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팔월에 두번째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에는 부러 날짜를 맞춰 여행을 갔지만 올해는 둘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결혼기념일 당일 아이를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달력을 보고 알았다. 헐,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었어, 라고 카톡을 보냈고 남편도 헐, 이라고 답장이 왔다. 그러고나서였나보다. 좋아하는 동네꽃집은 수요일마다 미니꽃다발을 오천원에 파는데 수량이 정해져 있다. 예약도 받는다. 이번주 꽃다발이 무엇인지, 예약은 얼마만큼 되었는지 게시물과 댓글을 보고 있는데 이상한 질문을 한 댓글이 보였다. <꽃다발 예약할 수 있을까요? 사장님이 알아서 예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격도 말 안하고 알아서 해달라니 이상한 사람이네, 그러고 넘어가려는데 아이디를 이상하게 읽어보고 싶어지는 거다. 전...용... 퇴근 즈음 아이와 유모차 산책을 하고 있었고 남편이 멀리서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왔다. 나는 어머머 왠 꽃다발이냐며 남편의 서프라이즈를 끝까지 지켜줬다. 

 

  어느 주말이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있었고 나는 안방에서 티비를 켜고 <놀면 뭐하니>를 보고 있었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커피숍에 갈게, 나를 찾지마, 하고 안방에 들어간다. 물론 당연히 혼자만의 시간이 될 리 없지만 코로나 시대 한적한 숲세권 동네에 사는 내겐 이것이 최선인 것이다. 그 날 <놀면 뭐하니>는 느닷없이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는 몰래카메라였는데 정준하 편이 너무 웃겨 정말 간만에 큰소리로 숨 넘어가게 웃었다. 눈물이 찔금 날 정도로 웃고 있으니 남편이 거실에서 달려오더니 아이가 자니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쉿쉿을 반복했다. 나는 그러고 싶은데 티비가 너무 웃겨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도대체 뭐길래 그러냐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 1분도 안돼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숨 넘어갈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이가 깨면 뭐 또 재우면 되지. 둘이 나란히 방바닥에 앉아 티비를 코앞에 두고 같은 마음이 되어 한참을 함께 웃은 순간. 육아로 너무 힘이 들 때면 그때를 생각한다. 남편도 많이 힘들겠지. 그래, 같이 힘을 내보자 하고. 꼬맹이는 추석 연휴가 지나자 혼자서 뒤집기 시작했다. 어제오늘 뒤집기 지옥이었다. 오늘 나는 저녁밥을 먹고 어김없이 커피숍에 들어갔고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다 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 손으로 모빌 인형을 툭툭 치게 하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까르르까르르- 그 웃음에 나도 남편도 함께 웃었다. 그래, 너도 세상 적응이 쉽지 않겠지. 우리 같이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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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from 모퉁이다방 2021. 9. 7. 01:17

 



  계절에도 성격이 있을까. 계절 앞에 '초'라는 글자를 붙이면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 중 제일은 초여름. '초'라는 글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뜻이다. 어떤 기간의 처음이나 초기. 그러니까 여름의 처음이나 초기를 생각하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린다.

포르투갈에 가기로 한 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때문이었다. 동생과 영화를 본 뒤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보니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여행 프로그램 리스본 편을 죄다 찾아봤다. 노란 전차가 좁은 골목길을 덜컹거리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근사했다. 오래되었고 낭만적이었다. 그 다음해, 휴가날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 포르투갈에 가자. 우리는 초여름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예산을 무리해 준비를 했고 어이없게도 동생이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우연한 사고로 발가락 뼈에 금이 잔뜩 갔다. 동생은 울며 깁스를 했고 나는 내 생애 최초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게됐다. 유럽도 처음이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혼자 숙소를 찾아가고 혼자 식당에 갔다. 혼자 길을 걷고 혼자 맥주를 마셨다. 2인용 침대에서 혼자 잠들었다. 좋은 풍경을 보는 것도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혼자였다. 여행할 당시에는 참 많이 외롭고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수없이 생각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여럿 속에서 혼자였던 당시를 떠올려보니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여행 후 나는 내가 조금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지금 이곳에서, 이전보다 좀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계절에도 성격이 있다. 각자가 기억하는 각자의 계절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초여름은 곧 다가올 열기로 무모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로 가득한 계절이다. 어떤 도전을 할 수 있고 어떤 실패도 할 수 있는 계절. 저녁에 부는 선선한 바람으로 그 실패를 위로받을 수 있는 계절. 또다른 용기를 북돋우는 계절. 무엇보다 시원한 맥주가 정말 맛있는 계절이다.

 

 

   6월과 7월이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서 조금 수월해질 것만 같은 8월에는 뭔가 나를 위해 힘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매일 조금씩. 나는 의지박약이니까 강제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한달 내 짧은 글을 매일매일 쓰면 그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해주는 곳에 7만원을 쓰기로 했다. 나는 의지박약이니까 강제성이 있어도 강제성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면 되므로 결국 실패를 했다. 몇 편 쓰다 더이상 쓰지 못했다. 아침 8시에 그 날의 키워드가 전달이 되는데 매일 그 키워드에 맞는 글을 생각하고 쓰는 게 쉽지 않았다는 핑계. 그럼 시작하지를 말지. 그래도 몇 편 쓰면서 옛추억들을 곱씹어봤다. 지나고 난 뒤라 그렇겠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훗날 그렇겠지. 한 권의 책은 물 건너갔고 하나뿐인 블로그에 지금의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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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from 모퉁이다방 2021. 9. 2. 12:51

 

 

  어제는 동생이 회사창립기념일이라 오전 근무만 한다고 오후에 놀러왔다. 서울 동쪽에서 경기도 아래쪽으로 오는 거니 거리가 꽤 되는데도 와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요즘엔 누가 와주면 그렇게 고맙다. 이번주에 지안이가 지금까지 나름 규칙적이었던 흐름을 깨고 자주 울고 계속 안고 걸어달라고 해 힘들었는데 잠시라도 놀아주고 나와 말상대 해 줄 사람이 와준 것이다. 남편은 부랴부랴 육아책을 찾아봤는데 지금이 새로운 도약의 시기란다. 약 2주동안 지금까지와 달리 신생아 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가 변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행이긴 한데 또 힘들기도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2주니까. 새벽에 어김없이 한번씩 깨서 다시 잠들지 않고 울어댄다. 남편은 다시 아이를 데리고 거실 소파로 나가 안고 재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자는데 남편의 수면의 질이 말이 아니다.

 

  친구는 지난 주말에 와 지안이를 안아줬다. 졸려하자 안고 자장가를 불러줬는데 친구의 아들이 어, 그건 내 자장간데, 라고 했다. 찬이야 좋다, '내' 자장가라는 말. 들어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자장가와 달리 경쾌한 리듬의 곡이었다. 친구는 사진관에서 50일인가 100일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어줬는데 거기에 있던 노래라고 했다. 음원으로 발매는 안 된 것 같다고. 한 블로그에 영상이 있었다. 가사가 참 좋았다. 친구들아 친구들아 우리 아가 코코자게 너희들도 이제 그만 코코자장하거라. 곰돌이 친구들도 토끼 친구들도 코끼리 기린 개구리 사자도. 밤하늘의 별들과 얘기도 하고 저 하늘의 구름 타고 훨훨 날아도 보렴. 아가아가 우리 아가. 예쁜 아가 우리 금동. 이제 그만 코코자장 코코자장하거라. 얼른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왔음 좋겠다. 친구랑 예전처럼 둘이서만 만나 허물없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끝도 없이 얘기할 수 있었으면. 친구가 만삭일 때 하루 날 잡아서 호텔에서 자고 오자고 했는데 그걸 못해 못내 아쉽다. 뒤돌아 보니 다시 못 올 시간이네. 

 

  동생은 전화영어 때문에 남편이 오자마자 집에 갔다. 오늘이 금요일이면 좋았을텐데 이틀이나 회사를 더 나가야 해, 라며. 동생은 지안이를 안아준다고 오자마자 내 잠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잠시 입은 그 옷을 빨래통에 넣어뒀더라. 동생은 기억 안 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동생이 와서 자기가 하루 입은 옷을 내가 빨래통에 바로 넣길래 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같이 살 때는 입던 옷 또 입고 또 입고 했는데 한번 입은 옷을 빨래통에 바로 가져다 놓는 내 모습이 좀 멀게 느껴졌나보다. 어제는 동생이 그러길래 내가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따로 산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예전에 이사하기 전 동생이 혼자 살 모습을 상상하며 펑펑 울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이 마음이 허해지더라. 형부가 역까지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꼰대말 안했냐고, 잘 도착했냐는 내 메시지에 지하철이 시끄러워 부러 신용산역에서 내려 걸으면서 전화영어를 했다는 씩씩한 답이 왔다. 동생은 아마 집에 가 씻고 친구와 통화를 하고 유투브를 보다 일찍 잠들었을 거다. 나는 남편과 저녁밥을 먹고 잠시 침대에 누워 짧은 잠을 자고 지안이를 씻기고 재우고 거실에서 혼자 티비를 조금 보다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남편과 달리 잠이 쉽게 오지 않아 좀 뒤척이다 잤다. 마음이 허하지 않게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아무래도 헤드랜턴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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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래놀라

from 모퉁이다방 2021. 8. 27. 09:54

 

 

  친구는 문래동에서 노들역 가까이로 이사를 했다. 아무리 못 봐도 서로의 생일 즈음에는 꼭 얼굴을 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거였다. 처음 가는 길이라 네비게이션을 켜고 갔다. 도착지에 가까워졌는데 한강이 보였다. 와, 좋은 곳으로 이사했네. 친구네 집은 길다란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긴 복도가 이어졌고 양 옆으로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 두 면이 통창인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통창 때문에 거실이 더 넓고 시원해보였다. 친구는 만삭인 내 배를 만지더니 친구야, 이렇게나 배가 나왔네 했다. 친구는 함께 먹으려고 흑돼지소라찜을 주문해뒀다고 했다. 오빠는 언젠가 생각한, 이렇게 먹으면 맛있겠다 조합의 음식을 에피타이저로 만들어왔다. 이제는 의젓한 유치원생 이나는 자다가 일어나 대면대면하더니 대형 추파춥스를 선물하니 씨익 웃어보였다. 친구는 옷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거기서 깔끔하게 싸놓은 짐이 여러 개 있었다. 이나는 이제 유치원생인데 이런 것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니. 친구는 혹시 금령이가 임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남겨두었단다. 확신이 있었으면 더 많이 남겨뒀을텐데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충분히 많았다. 젖병소독기에 유모차에 장난감과 책들, 아기띠와 조금 커서 입으면 너무 예쁠 옷들 등등. 그날 오빠와 친구는 내가 생각보다 못 먹는다고 안타까워했는데 나는 둘의 마음 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찼다. 그 뒤로 친구는 계속 뭔가를 보내왔다. 최근에 완전 빠졌다는 식빵도 세트로 보내주고, 출산 전에 매운 거 한번 더 먹으라며 흑돼지소라찜도 주문해주고, 출산선물이라며 체온계도 보내줬다. 출산한 뒤에는 집에서 애랑 온종일 씨름하고 있으면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면서 산뜻한 색깔의 홈웨어를 보내줬다. 최근에는 혼자 있을 때 끼니 거르지 말라며 그래놀라도 보내줬다. 오, 그래놀라 팝은 친구가 보내줘서 처음 먹어봤는데 맛보고 엄청 놀랬다. 맛있어서. 와, 이렇게 맛있는 시리얼이 있었다니. 원래 시리얼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계속 먹게 된다. 문래동 친구네 집에는 처음보는 주전부리들이 많았다. 친구는 매번 이것도 가져가라 저것도 가져가라며 바리바리 싸줬었다. 집에 와 먹어보면 다 맛있었고. 오늘도 아침은 시리얼이었다. 점점 밥 차리는 게 귀찮아지고 있다. 한 끼 정도는 정말 간단하게 먹으려고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시리얼과 삶은 달걀 두 개, 그리고 디카페인 믹스 커피 (단 게 맨날 땡겨요. ㅠ 모유수유하면 살 빠진다고 누가 그랬나요). 오늘도 아침을 먹으면서 감탄했다. 정말 맛있는 시리얼이라고. 불현듯 친구의 마음이 떠올랐다. 금요일이고 내일은 주말이니 기분 좋은 아침이다. 어제는 책 한 권을 끝냈고 새 책도 시작했다. 시리얼 기운을 받아 오늘 하루도 잘 지내봐야지.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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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from 모퉁이다방 2021. 8. 17. 01:05

 

  팔월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아가는 오늘로 태어난지 칠십구일째가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백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고 있다. 아마도 보이는 게 선명해지면서부터 인 것 같은데, 잘 웃는다. 오늘은 엄마아빠동생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화면에 엄마-동생-아빠 순으로 나타나자 웃기 시작하더라. 팬클럽 1호 엄마는 그 모습에 엄청난 함박웃음을 띄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면 칭얼댄다. 일어서서 돌아다니기 시작해야 조용해진다. 새로운 걸 눈으로 계속 보고 싶어하는 듯 아직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바삐 움직여댄다. 산책이 아가의 시각자극에 좋다더니 이제 정말 산책을 시작해야 될 때가 왔나보다. 유모차를 꺼내뒀다. 

 

  남편과는 대부분 사이가 좋지만 (우린 육아동지) 가끔 다툴 때도 있다 (역시 육아동지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당시에는 마음 속에 이런 생각 뿐이다. 자기만 힘든 줄 아나.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고. 온갖 힘듦을 모조리 총집합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분이 풀리진 않지만 어찌어찌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하면 옆사람의 마음을 조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 어제의 그 부분은 진짜 힘들 수 있겠다. 나도 많이 힘들지만 그때의 내 표출방식은 잘못된 거였어. 반성도 하게 된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건넨다. 나의 미안한 마음을. 그러면 남편도 건넨다.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그리고 남편이 힘들다고 한 상황이 오면 이전와는 다르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사실 남편은 정말 잘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며 내가 칭찬을 너무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 마음 속에는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데 그걸 잘 꺼내질 않았더라. 그런데 한두번 섭섭한 순간이 오면 그건 엄청나게 빨리, 그리고 강하게 표출하는 거다. 반성한다. 

 

  요즘 아가는 단둘이 있는 낮에 잘 자고 혼자서도 잘 누워 있고 그런다. (물론 승질 낼 때도 있지만) 그래서 아가가 자는 시간에 설거지도 하고 밥도 먹고 책도 읽는다. (한숨 푹 자고도 싶은데 이걸 하다보면 하루가 끝나있다) 토요일에는 수유를 하면서 최백호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좋은 말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 말은 오래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뒀다. "마흔 중반이 넘어서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었습니다. 그건 30대에 만들 수 없는 노래죠.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정말 간만에 페이퍼 잡지를 읽었다. 여름호 주제가 '여름과 맥주'. 다름아닌 맥주여서 샀는데 맥주가 아닌 홍진경 인터뷰 기사가 좋았다. 홍진경은 남동생이 인정하는 다독가이고 싸이월드에 일기를 썼던 것을 보면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인터뷰어가 묻는다. "그래도 진경 님을 사람들이 단순히 웃긴 사람으로만 생각한다면 좀 섭섭할 것 같은데요..." 홍진경이 답한다. "아니에요. 전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보고 사람들이 웃거나 기뻐하면 희열을 느끼는 전 천생 예능인이에요. 내가 실제로 우스운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죠 뭐." 실제로 내가 우스운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죠 뭐. 이 문장도 저장해둔다.

 

  오늘은 오전시간에 에어컨을 끄고 집 안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다. 창문에 걸어놓은 풍경소리가 날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가는 처음 듣는 풍경소리에 흠칫 놀라더라. 나를 닮아 겁이 많은 모양이다. 아, 이 시간에 혼자 깨어있으니 너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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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세요

from 모퉁이다방 2021. 8. 12. 16:53

 

 

  산후도우미 관리사 업체는 조리원에서 추천받았다. 조리원 원장님은 자기가 추천해주고 나빴던 사람은 없었다며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 오면 자기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조리원 퇴소가 목요일이라 금요일은 어찌어찌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일정이 깔끔하겠다 싶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니 목요일에도 남편이랑 둘이서 멘붕이겠다 싶어 금요일 출근으로 변경을 했다.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안 그랬음 전쟁같은 금토일을 보냈을 거다. 관리사님이 출근 전에 문자로 연락을 해와 연락처를 추가하고 카톡 사진을 염탐했다.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인상이 좋아보이셨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걱정하는 만큼 관리사님도 걱정스럽겠지. 어떤 산모와 아이를 만날지. 너무 까탈스럽지는 않을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좋은 관리사님이었다. 불편한 것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주면 좋겠다고 먼저 얘기해주셨고 살림살이도 별로 물어보지 않으시고 알아서 잘 찾으셨다. 친근하고 깔끔하셨고 어떤 할 선은 끝까지 지키셨다.

 

  관리사님이 계셨던 3주동안 나의 일상은 대체적으로 이랬다. 전날 지안이와 혼을 빼는 밤을 보낸 후 아침이 찾아온다. 정말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어떤 밤을 보내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침에 아이는 평화롭다. 관리사님은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하셨다. 8시 50분. 정확히 50분에 현관문을 노크하셨다. 늦는 게 싫어 매일 일찍 도착해 차 안에 있다 올라오신다고 했다. 너무 일찍 오는 것도 불편할 수 있겠다 싶어 밑에서 시간을 보내신다고. 관리사님이 오시면 안방의 아기침대를 거실로 뺀다. 옷을 갈아입고 내 아침밥을 준비하신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 보기좋게 담아주신다. 내가 밥을 먹으면 밤새 이렇게 얼굴이 또 달라졌냐며 지안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과일까지 챙겨주시고 지안이가 조용해지면 집안일을 시작하신다. 청소기를 밀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나는 방에 들어와 쉬거나 아침잠을 잤다. 그때는 수유때문에 밤에 몇 번을 일어나야 해서 낮에 수시로 잠이 왔다. 길게 자면 점심 때까지 푹 잤다. 어느 날은 일어나보니 지안이도 관리사님도 안 계셨는데 욕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목욕하고 몸에 태열이 안 올랐나 봐주셨고 코 때문에 답답해할 때는 면봉으로 솔솔솔 파내주셨다. 점심은 함께 먹었다. 내가 자는 사이 반찬을 하나 두개씩 만들어두셨는데 제일 맛있었던 건 감자전. 너무 맛있다고 하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도 두세번 더 해주셨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육아 이야기, 관리사님 자식들 이야기, 지안이 이야기, 코로나 이야기, 사는 이야기. 나는 차를 마시고 관리사님께는 커피를 만들어 드리고 지안이를 좀 보다 방에 들어왔다. 책을 조금 읽다 잤다. 관리사님은 또 설거지하고 저녁반찬 만들어두고 빨래 개고 지안이 달래고. 지안이가 수유하다 자버리면 함께 깨워주셨고, 수유가 끝나면 트림을 시켜주셨다. 자고 있다가도 관리사님 퇴근 한 시간 전이 되면 몸이 귀신같이 알고 일어났는데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안이는 침대에 누워 자고 모든 집안일은 끝내있고 주방도 깨끗해져 있는 고요한 시간. 관리사님은 항상 주방 식탁에 앉아 계셨다. 숲이 보이는 창을 마주하고. 

 

   관리사님은 항상 "할 수 있어요", "별 거 아니예요", "잘 크고 있는 거예요" 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게 육아를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힘이 되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처음에는 같은 공간에 오랜시간 함께 있는 게 불편했는데 익숙해지니 별의별 말을 다하게 됐다. 어제 남편과 싸운 이야기까지. 지금에와 생각해보면 그 대화들이 산후우울에서 멀리 도망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육아에 서툰 내게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아기는 편안했던 뱃속을 떠나 너무나 낯선 세계로 나온 거라고. 얼마나 혼란스럽겠냐고. 지금 이 낯설고 넓은 세계에 적응하느라 그러는 거라고. 엄마는 어떤 상황이 와도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아, 내 아이가 지금 세상에 적응하고 있구나, 그래서 그러는 거구나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고 다독여주라고. 그 말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지안이가 적응하고 있구나, 엄마가 지켜봐줄게, 괜찮아괜찮아 하며 다독이게 된다.   

 

  지난주에 관리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세요? 지안이는 잘 크지요?" 파키라 잎이 무성해 줄기를 하나 잘라드렸는데 거기서 뿌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나는 함께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애가 침대에서 안 자요, 안겨만 있어요, 밤에 잘 안 자요, 지 아빠 배 위에서만 자요, 이렇게 저렇게 조잘대고 그런데 이제 괜찮아졌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관리사님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최대한 맑은 사진들로 골라 보냈다. 메시지가 왔다. 너무 예쁘게 크고 있어 좋네요. 얼굴이 참 밝아요. 나는 시간 되실 때 놀러오시라고 했고 관리사님은 그럴게요, 라고 답을 보내왔다. 

 

  마지막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관리사님은 8시 50분에 출근하셨고, 내 아침밥을 차려주셨고, 집안일을 하셨다. 점심을 함께 먹었고 커피를 만들어 드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방에 들어가 쉬었고 한 시간 전 쯤에 일어났다. 그 날 관리사님은 이것저것 자신이 지안이를 돌보며 파악한 성향 같은 것들을 말해주셨다. 어떻게 해야 좋아하고, 이런 성향이 있는 것 같고 등등. 관리사님은 덤덤하게 "지안이 잘 키우세요. 지안이는 잘 보채지 않는 귀여운 아이였어요." 라고 말했는데 나는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울어버리면 당황해하실 것 같아 꾹 참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또 물었다. "제가 내일부터 혼자 잘 할 수 있을까요?" 관리사님은 자신이 처음 왔을 때도 내가 그렇게 물었는데 지금은 자신감이 꽤 생기지 않았냐면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누군가 집에 와 3주동안 낮시간을 함께 보낸 건 생애 처음이었다. 걱정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푹 쉴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지안이가 잘 때 집안이 조용해지면 그 때 그 고요했던 오후 시간이 생각이 난다. 그야말로 고-요-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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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오늘 남편이 재택을 하며 지안이를 같이 봐줘서 낮시간이 여유로웠다. 오늘은 낮잠도 잤고 친구가 지안이 잘 때마다 한 편씩 읽으라고 했던 소설집의 소설 한 편도 읽었다. 오늘 읽은 소설이 좋았다. 가끔 주인공 생각이 날 것 같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야구를 보며 닭을 먹자며 세탁소도 다녀오고 닭도 찾아오고 간만에 살짝 산책을 하고 오라고 했다. 이어폰을 챙겼다.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SG워너비가 부른 노래의 도입부가 무척 좋았는데 혼자 있을 때 이어폰으로 들고 싶었더랬다.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라고 나즈막하게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떡볶이와 순대, 오뎅을 파는 반찬집 앞 포장마차에 옥수수 삼천원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아, 맞다. 이번 여름엔 옥수수를 못 먹었네. 반찬가게에 가 카드결제가 되는지 물어보고 하나 달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거 드릴까요? 노란 거 드릴까요? (당연히) 알록달록한 거요- 옥수수를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한 뒤 딱딱해진 채로 먹는 걸 좋아한다.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둬야지. 아직 파란 저녁하늘이 근사했다. 집에서 창문 너머 올려다보는 하늘도 좋았는데 밖에서 더운 기운을 느끼며 보는 하늘은 더 근사했다. 건너편 인도에 유모차를 잠시 세우고 하늘사진을 찍는 한 엄마가 보였다. 가는 길에 개미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밟지 않게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국밥보다 옛날돈까스가 더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에 임시 휴업이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다. 그 옆에 임대를 한다는 안내문도 있었다. 이 집 돈까스는 맛있는데다 저렴했는데 이제 못 먹는구나 아쉬웠다. 모퉁이를 도니 8월에 브런치 겸 파스타집이 새로 생긴다는 플랜카드가 붙여져 있었고. 세탁소에 들러 낮에 가지고 간 드라이클리닝할 옷과 이불값을 치뤘다. 카드결제는 가게로 직접 와야 한다기에.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는데 아마도 사장님의 아드님인 것 같다. 젊은이가 혼자 에어컨도 켜지 않은 가게에서 빨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계좌이체를 하면 10프로 할인이 된단다. 다음엔 계좌이체를 해야지. 바베큐통닭집에 갔더니 손님들이 꽤 많았고 배달과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닭들도 많았다. 간장 반 새콤달콤 반 전화로 시키셨죠? 기본이나 매운양념만 먹었는데 간장과 새콤달콤 맛은 처음이다. 다 먹어보니 제일 맛있는 건 매운양념!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들렀다. 남편은 매번 하루치 먹을 소주만 사오는데 맥주를 쟁여두고 마시는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언젠가의 남편을 위해 참이슬 페트 두 개를 사고 언젠가 모유수유를 끝낼 나를 위해 새로나온 처음 보는 맥주를 한 캔 샀다. 술고래라는 맥주가 새로 나왔구나. 라이트 에일이라네. 바닥을 보니 제조일이 2021년 6월이다. 언제쯤 마실 수 있을까. 앞으로 맥주 고플 때마다 한 캔씩 사둬야겠다. 공동출입구 앞에 최신형 이동기구를 탄 어린이가 서 있다. 뒤에 서 있다 출입문이 열리자 뒤따라 들어갔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탄 어린이가 7층 버튼을 누르고 열림 버튼을 누르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고마워라. 어린이는 7층에서 내리고 나는 16층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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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

from 모퉁이다방 2021. 8. 2. 22:57

 

 

   군만두를 자주 해먹기 시작한 건 새로 산 프라이팬 세트 덕분이다. 남편은 인터넷광고에 적대적이고 홈쇼핑에 관대하다. 내가 파주로 출근을 하던 시절,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와 자신의 출근시간까지 어중간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남편은 반신욕을 하거나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곤 했다. 합정역에 도착하면 혹여나 자고 있을까 싶어 전화를 했는데 남편은 여러 번 홈쇼핑 얘기를 했다. 지금 나오고 있는데, 살까살까? 그렇게 산 물건이 소갈비탕, 프라이팬 세트 등등. 주부들이 주고객층인 아침 홈쇼핑 덕분이다.

 

   새로 산 프라이팬 세트는 작은 프라이팬 하나, 큰 프라이팬 하나, 윅 하나, 중식도로 구성되었다. 작은 프라이팬은 윅 정도로 깊이가 깊다. 뚜껑도 있고. 어느 날 뭘 먹을까 고민하다 작은 프라이팬을 보니 만두 굽기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불을 약하게 켠다. 팬이 달구어지면 만두를 팬 가득 나란히 배열하고 뚜껑을 닦는다. 한 면이 노릇노릇하게 익기 시작하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만두를 뒤집는다. 거기에 물을 소주잔 한 잔 정도 붓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지지직 소리가 나고 팬에 김이 가득해진다. 물이 거의 없어지고 다른 면도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면 꺼낼 타이밍.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군만두 완성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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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from 모퉁이다방 2021. 7. 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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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from 모퉁이다방 2021. 7. 20. 10:31

 

  창밖이 뿌예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두 차례. 어제 오후의 일이다. 막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환해졌다. 지금 나가서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내려 공기는 서늘하거나 시원할테고 풀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을 거고 하늘도 깨끗할테고 초여름같은 선선한 바람이 살짝 불 수도 있을텐데. 책을 가지고 나가 걷다가 커피집이나 빵집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테고 일찍 문을 연 술집이나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나 맥주 한 캔을 야외 테라스에서 의자 물기만 살짝 털어내고 마실 수 있을텐데. 돌아오는 길에 궁금했던 동네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한 권 살 수 있을테고 좋아하는 꽃집에 들러 작은 꽃 한다발을 사가지고 올 수도 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역류방지쿠션에 올려놓은 지안이가 창밖을 지그시 올려다보고 있다. 지안이는 매일매일 창밖을 보거나 무얼 보는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데, 어제는 그 시선을 따라가게 되더라. 지안아, 뭐 보고 있어? 뭐가 있어? 하는데 하늘에 길다란 무지개가 떠 있었다. 와 지안아, 무지개다. 지안이 덕분에 엄마가 놓치지 않고 무지개를 보네. 무지개를 가늘었지만 높고 길었다. 둘이서 비 개인 하늘을 한참을 올려다봤다. 어제는 아이의 50일이었다. 무지개 사진을 찍어 가족단톡방에 보냈더니 극성팬 1호인 엄마는 무지개도 지안이 50일을 축하해주네,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는 늦여름이 되면 둘이서 유모차를 타고서 산책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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