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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8년 봄호 - Foot,이 아니라 풋,서재를쌓다 2008. 4. 27. 17:07
풋 2008년 봄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문학동네
Foot,이 아니라 풋,이다. 풋사과할 때 풋. 풋사랑할 때 풋. 풋풋하다할 때 풋. 빠알갛게 여물기 전 단단한 연두빛의 아삭한 접두사. 더 열심히 물을 빨고, 햇살을 쬐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영글 글자. 풋,하고 웃는 수줍은 소리. 그 풋,이다.
그러니 내가 이 따스한 봄에 연두빛 청소년 잡지 풋,을 만난건 당연한 일이다. <풋,>을 산 건 김연수 작가의 새 연재물 때문이다. 늘 그렇듯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스했다. '원더보이'라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소설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를 잃고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첫번째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소년은 창 밖의 내리는 눈을 마주한다.
눈을 묘사한 마지막 장을 읽고서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이 나왔다. 또 이렇게 따스한 이야기구나.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감수성을 지녔을까. 중심을 잃지 않으며 그가 내어놓는 따스한 감수성 어린 묘사의 나열. 시를 썼던 이라 그런걸까. 그런 거라면 나도 시를 쓰고 싶다. 어떤 부분은 예전에 읽었던 조너선 사프란 모어 소설과 닮은 구석이 있다. '아빠죽지마'가 49번 반복되는 문단이 있다. 소년은 진정으로 아빠가 죽지마기를 49번 바라는 것이다. 먹먹해진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스노우볼을 한 손에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 내려놓곤 그걸 가만히 바라보는 느낌이다. '원더보이'는.
<풋,>의 여러 글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고동색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초록색 교복을 입은 커트머리 여중시절이면 더 좋겠고. 그 때로 돌아가 북적대는 교실 안, 작은 나무 책상 위에서나 내 방 침대 위에서 좋아하는 테잎을 틀어놓고 이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잡지를 읽고 싶어졌다. 앞자리에 1을 단 나이인 채로 잡지 속에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듣고, 만화책을 열심히 모으고, 18세 금지 영화도 몰래 찾아가 보고, 튕튕거리며 기타도 배워보고 싶어졌다. 내가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글을 끄적거려보고 싶어졌다.
그러니 이건 스물아홉이 열아홉의 나에게 하는 풋,스런 이야기다. 스물아홉이 열아홉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건 니가 아니라고 읊조려 보라고. 가장 행복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보라고. 힘들 땐 책과 음악, 영화를 끝없이 찾아보라고. 세계 지도를 붙여두고 그 곳을 디딜 상상을 해 보라고. 친구와 나란히 서 자판기 커피를 빼어 먹으며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라고.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해두라고. 그 시간의 설렘을 만끽하라고. 스물아홉이 열아홉에게 말한다. 이 책을 읽을 바로 지금 싱그러운 너희들의 시간이 부럽다고. 너희의 앞자리 1의 나이가 그립다고. 그렇기에 가질 수 있는 연두빛 단단한 너희들 꿈이 부럽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글을 써대는 그 자체로 질투가 난다고. 서툴지만 상콤하다고. 너희들 글이 싱그럽고 솔직하다고.
좋은 글이 많다. 여름호도 가을호도 기다려야지. 윤대녕 작가의 글엔 가슴이 뛰었다. 만해마을을 소개하는 글에도. 아, 그 곳에 가보고 싶어라. 이 잡지에서 제일 좋았던 건 센스있는 두 줄짜리 작가 소개글들이었다. 어떤 소개글은 너무 좋아 다섯번씩 읽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