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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 나는 바보작가 공선옥이 좋다서재를쌓다 2008. 5. 2. 20:13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지난 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졌다. 마음 속 묵직한 무언가 휙 빠져나간듯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다. 당장 우산을 챙겨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다이어리에 공선옥 책들의 청구기호를 적어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빌릴 생각이었는데 손은 자꾸만 자운영 꽃밭쪽으로 갔다. 두 책을 펼쳐놓고 뒤적거리다 자운영 꽃밭을 들고 나왔다. 잘한 짓이었다. 물론 마흔에 길을 나선 작가의 이야기도 그랬겠지만 자운영 꽃밭 속 작가의 이야기는 따스하고 따스해서 쓸쓸한 내 마음을 요리조리 잘도 어루만져주었다. 나는 정말 이 책을 금세 읽어버릴 것이 두려워 아껴가며 읽었다. 자주 책장을 덮고 두꺼운 표지 양장을 쓰다듬었고,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자주 소리내어 읽었다. 나는 이렇게 읽는 것이 제대로 공선옥을 읽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겨우 하나의 소설집과 하나의 산문집을 읽은 주제에 말이다.
내가 읽은 공선옥의 두번째 책. 물론 공선옥의 두번째 책이 아니라, 나의 두번째 책이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고, <명랑한 밤길>을 읽고 그랬던 것처럼 아, 공선옥,이라고 다시 한번 나즈막히 외쳤다. 아, 공선옥. 나는 이제 그녀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그녀의 팬,이라고 하고 싶지만 왠지 닭살스럽다. 팬,이라는 건 왠지 뮤지션이나 영화배우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같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열렬한 독자다. 아, 얼마나 멋진가. 공선옥의 열혈독자.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에는 작가 공선옥보다 인간 공선옥의 이야기가 그득하게 담겨져 있다. 시골에 살면서 도시를 갈망했던 어린 시절, 도시에 살면서 시골을 그리워했던 어느 시절, 드디어 시골에 살게 된 지금. 노란 마당에 노란 장판에 노란 볕을 좋아하는 공선옥. 늘 떠나기를 갈망하고 떠나면 남아있는 가족 걱정에 금방 돌아오기 일쑤인 엄마 공선옥. 자운영 꽃밭에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 공선옥. 비를 사랑하는 공선옥. 비오는 밤 묘지에서 가고 없는 그리운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비처럼 눈물을 흘리고 마는 공선옥. 티코를 타고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공선옥. 버스 안내원이었던 85년의 광주에서 분신하는 남자를 보고 그대로 버스를 박차고 달려나갔던 공선옥. 세 아이의 엄마인 공선옥. 무례한 독자의 방문에 자신이 잘못한 거라는 바보 작가 공선옥. 아, 나는 이런 인간 공선옥의 이야기를 한 꼭지씩 읽어나가며 그야말로 열혈독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도 공선옥 작가처럼 내가 꿈꾸는 노란 삶이 있다. 언젠가 그녀처럼 이루어낼 꿈일 수도 있고, 그녀처럼 이루어내지 못할 꿈이 될 수도 있겠다. 작가가 일구는 자운영 꽃밭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노랗게 아름다운 것인지 보았다. 그녀의 글은 마음을 울린다. 가슴을 적신다. 너무나 좋다. 한 구절 한 구절 따뜻해지지 않는 순간이 없다. 그런 꿈을 꾸어본다. 언젠가 모내기 전, 만발한 자운영 꽃밭에서 밤 마실의 그것처럼 신김치 한 접시와 된장과 오이 안주를 앞에 두고 그녀와 막걸리 한 잔 나누는 꿈. 그 때가 낮이면 보라빛 자운영 꽃에 취할테고, 밤이면 노오란 달이 환할테지. 나는 한 잔 막걸리에 취해 내가 얼마나 그녀의 열혈독자인지 1시간이 넘도록 떠들어댈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녀는 슬그머니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내게 더 내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자운영 꽃에 취해, 달빛에 취해, 그녀에게 취해 오늘이 내게 얼마나 행복한 날인지 2시간이 넘도록 지껄어댈지도 모른다. 바보작가와 열혈독자가 떠난 보라빛 자운영 꽃밭은 곧 갈아엎혀 초록빛 논밭이 될테지만.
그 정도로 좋다. 이 책이. 바보 작가 공선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