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진짜 이야기 2 2007.10.30
  2. 열세번째 이야기 -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어요? 4 2007.10.26
   대저택에서 태어난 한 쌍둥이 자매가 있다. 이들의 엄마와 그녀의 오빠는 어려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장난들을 하며 낄낄거리며 즐거워 했다. 이를테면 오빠가 그녀의 팔목에 녹이 슨 철사로 스윽 그으면 그녀는 솟아나는 피를 보며 헤죽거리는 거다. 이 집안의 이상한 정신병의 기운은 되물림되고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오빠와 그녀에게로 그리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난 쌍둥이 자매에게도.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도 확실하지 않다. 옆집에 살던 그녀와 로맨스를 즐긴 남자와 결혼은 하긴 했지만 다들 아이들의 아빠가 엄마의 오빠, 삼촌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쌍둥이 자매는 태어났고, 버려진 듯 먼지로 휩쌓인 대저택에서 아이들의 엄마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고 이들의 아버지일 지 모를 삼촌과 나이들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가정부와 무심한 정원사가 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삼촌은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지 오래이고 이 집의 문제점을 직시한 동네의 한 의사가 이 집에 가정교사를 불러 들인다. 그녀는 단정하고 깔끔했으며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 그녀가 온 뒤로 집안은 점차 깨끗해졌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쌍둥이 중 한 아이는 대체적으로 온순했지만, 한 아이는 다룰 수 없을 정도로 포악했다. 가정교사는 한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아이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아보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떼어놓고 이 정상적이지 않은 두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해 나가면 꽤 그럴듯한 하나의 연구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도, 친구도 없이 늘 둘 뿐이였던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상태를 가진 두 아이를 떼어놓기로 결심했다. 두 아이를 위해서는 아니였다. 연구를 위해서. 의사를 설득시켜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학계에서 엄청난 실력자로 등극할 수 있을것이라는 바램때문에. 두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몰래 두 아이를 떼어놓고, 울며 불며 자학하며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감시했다. 날마다 연구결과랍시고 기록하면서. 늘 한 몸인 것처럼 함께였던 두 아이는 무서웠고, 서러웠고, 두려웠고, 슬펐다. 한 아이가 어느정도 상황을 체념해 나갈 사이, 한 아이는 더욱더 포악해졌다.
   그러다 어느날 가정교사는 유령을 본다. 분명 의사 집에 있어야 할 아이를 저택 앞에서 본 것이다. 그것도 두 아이는 함께 다정하게 놀고 있었다. 놀라 의사 집에 쫓아가서 의사에게 아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고 따졌으나 의사의 집에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아이가 오후 내내 집에 자신과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가정교사는 맥이 풀리고 이를 본 의사는 부축을 하다가 다짜고짜 키스를 한다. 그동안 연구랍시고 둘이 만나다가 눈이 맞았던 것이다. 이를 본 의사 부인은 가정교사를 내쫓고, 그날 오후 대저택의 정원사는 쌍둥이 중 한 아이를 집에 데려간다. 가정교사는 그 날 이후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연구도 끝났고 어리고 여리고 성숙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의 골만 남겼다.
   어릴 때의 상처들이 성인이 되어서 얼마나 커다란 심리적으로 장애가 되는지 심리학 관련 서적에서 접했다. 나는 이 쌍둥이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으면서, 이기적인 어른들의 말도 안되는 연구따위로 가장 나쁜 이별의 케이스를 맛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든 말도 없이 영영 떠날 수 있는 경험, 그리고 이 커다란 세상에 단 한 사람, 나 혼자뿐이라는 철저한 외로움 끝의 두려움.

   얼마 전에 읽은 <열세번째 이야기>의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을 때 가정교사와 의사의 말도 안되는 욕심으로 시작된 연구로 인해 하루 아침에 생이별을 한 아이들이 안타깝고, 그 후에도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이별에 아이들이 어리석은 어른들 욕심에 일어난 이 말도 안되는 이별로 얼마나 큰 심적 고통과 마주하게 될지 마치 소설이 현실 속 이야기인 것처럼 내 마음이 아팠다. 괜히 어른이 내가 미안했고.

   그리고 오늘 본 기사. 물론 이 이야기와 백퍼센트 똑같은 건 아니지만 닮은 구석이 많아서. 이들은 자신이 쌍둥이인 것도 몰랐고, 함께 지내다 헤어진 것도 아니지만, 결국 욕심 많은 사람들이 시작한 어리석은 연구때문에 자매는 헤어졌다. 허영심에 가득 찬 의사는 너희들은 버려진 거고 어차피 각각 입양되어 갈 것이였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어른이면 어른다워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면 사람다워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상대방에 겪게되는 아픔따위는 상관없이 위대한 연구결과로 상 받고 인정받으면 되는건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

   그냥 기사 보고 책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봤다. 뭐랄까. 뉴스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영화같은 현실이라는 표현보다는 현실같은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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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비채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이래요.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는 주인공이 있어요. 마가렛 리. 마가렛은 책방을 도우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미 죽은 인물들의 전기를 써요. 어느날 비다 윈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부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편지를 받아요. 마가렛은 살아있는 작가의 전기를 써보지도, 쓰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비다 윈터라는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이 작가의 사생활에 관련해서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어 거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그런 마가렛이 그녀의 전기를 쓰기로 한 건 순전히 쌍둥이 이야기 때문이예요. 마가렛에게는 허리즈음에서 잃어버린 쌍둥이 자매가 있었거든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가렛에게는 영원히 존재하는. 흐릿한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창가로 나타나는 나랑 꼭 닮은 사람. 비다 윈터는 그렇게 마가렛의 흥미를 끌었고, 이제부터 비타 윈터의 이야기가 시작되요. 쌍둥이를 지독하게 사랑한 사람. 버림 받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요. '열 세번째 이야기'는 비타 윈터가 어떤 책에 싣지 않은 이야기예요. 끊임없이 책으로 읽는 이들에게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이야기하지 않은 열 세번째 이야기. 이 책의 정식 제목은 <변형과 절망의 이야기>였지만 처음에 <열세번째 이야기>로 출간되었고 이내 모두 회수되었어요. 그 중 회수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을 마가렛의 아버지가 구입했었구요. 실제 그 책에는 열두번째 이야기까지만 들어있고 열세번째 이야기는 없었어요. 모두가 열세번째 이야기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열세번째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들어있어요.
 
    모두들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만 과연 정말로 진실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실은 어쩌면 생각보다 시시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베일에 쌓여져 있는 진실은 정말 그럴 듯해 보이죠. 어떤 로맨틱한 추측도 가능하고, 어떤 추악한 상상도 가능하잖아요. 정작 진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나면 사람들은 진실이 그렇게 시시할 수는 없다고 실망할 지도 몰라요. 진실은 별 게 없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꽤 멋지잖아요. 근사하고.

   이 책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작가 소개에 보면 다이안 세퍼필드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은 책을 탐독해왔다고 해요. 그런 작가의 느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책의 이야기에 빠져 지냈던 어린 시절의 느낌, 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책 속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사랑하는 느낌이요. 그런데 이건 또 저의 상상일 지도 몰라요. 진실은 알 수 없잖아요. 책 속에서 작가는 이런 구절로 경고를 해요.

(p.70)

   그리고 500페이지가 넘는 이 긴 책을 시작하는 시점에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이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매체들을 보기에 앞서 우리들이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며, 특히 이 책을 볼 때 꼭 지켜달라는 부탁같은 것인거 같은 구절이예요. 

   (p.77)

    책은 두껍지만 술술 넘어가요. 그리고 반전이 있어요. 그러니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도, 질문을 해서도, 마지막 장을 훔쳐보아서도 안돼요. 얼마나 남았는지 분량을 체크할 수 있는 끝이 보이는 이야기니까 한자 한자 천천히 읽어나가면 되요. 이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이야기를 위한 진실인지, 진실을 위한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어쩌면 굉장히 시시하고 뻔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건 이것인 거 같애요. 이야기를 즐겨라. 이야기를 읽는 순간을 즐겨라. 진실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뭐가 진실인지 거짓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지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보다 그 겉에 묻어 있는 희망을 주는, 달달한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요. 중요한 건 그녀의 열세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열세번째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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