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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세번째 이야기 -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어요?
    서재를쌓다 2007. 10. 26. 01:31

    열세 번째 이야기
    -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비채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이래요.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는 주인공이 있어요. 마가렛 리. 마가렛은 책방을 도우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미 죽은 인물들의 전기를 써요. 어느날 비다 윈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부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편지를 받아요. 마가렛은 살아있는 작가의 전기를 써보지도, 쓰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비다 윈터라는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이 작가의 사생활에 관련해서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어 거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그런 마가렛이 그녀의 전기를 쓰기로 한 건 순전히 쌍둥이 이야기 때문이예요. 마가렛에게는 허리즈음에서 잃어버린 쌍둥이 자매가 있었거든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가렛에게는 영원히 존재하는. 흐릿한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창가로 나타나는 나랑 꼭 닮은 사람. 비다 윈터는 그렇게 마가렛의 흥미를 끌었고, 이제부터 비타 윈터의 이야기가 시작되요. 쌍둥이를 지독하게 사랑한 사람. 버림 받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요. '열 세번째 이야기'는 비타 윈터가 어떤 책에 싣지 않은 이야기예요. 끊임없이 책으로 읽는 이들에게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이야기하지 않은 열 세번째 이야기. 이 책의 정식 제목은 <변형과 절망의 이야기>였지만 처음에 <열세번째 이야기>로 출간되었고 이내 모두 회수되었어요. 그 중 회수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을 마가렛의 아버지가 구입했었구요. 실제 그 책에는 열두번째 이야기까지만 들어있고 열세번째 이야기는 없었어요. 모두가 열세번째 이야기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열세번째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들어있어요.
     
        모두들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만 과연 정말로 진실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실은 어쩌면 생각보다 시시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베일에 쌓여져 있는 진실은 정말 그럴 듯해 보이죠. 어떤 로맨틱한 추측도 가능하고, 어떤 추악한 상상도 가능하잖아요. 정작 진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나면 사람들은 진실이 그렇게 시시할 수는 없다고 실망할 지도 몰라요. 진실은 별 게 없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꽤 멋지잖아요. 근사하고.

       이 책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작가 소개에 보면 다이안 세퍼필드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은 책을 탐독해왔다고 해요. 그런 작가의 느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책의 이야기에 빠져 지냈던 어린 시절의 느낌, 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책 속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사랑하는 느낌이요. 그런데 이건 또 저의 상상일 지도 몰라요. 진실은 알 수 없잖아요. 책 속에서 작가는 이런 구절로 경고를 해요.

    (p.70)

       그리고 500페이지가 넘는 이 긴 책을 시작하는 시점에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이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많은 매체들을 보기에 앞서 우리들이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며, 특히 이 책을 볼 때 꼭 지켜달라는 부탁같은 것인거 같은 구절이예요. 

       (p.77)

        책은 두껍지만 술술 넘어가요. 그리고 반전이 있어요. 그러니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도, 질문을 해서도, 마지막 장을 훔쳐보아서도 안돼요. 얼마나 남았는지 분량을 체크할 수 있는 끝이 보이는 이야기니까 한자 한자 천천히 읽어나가면 되요. 이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이야기를 위한 진실인지, 진실을 위한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어쩌면 굉장히 시시하고 뻔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건 이것인 거 같애요. 이야기를 즐겨라. 이야기를 읽는 순간을 즐겨라. 진실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뭐가 진실인지 거짓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지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보다 그 겉에 묻어 있는 희망을 주는, 달달한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요. 중요한 건 그녀의 열세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열세번째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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