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에 해당되는 글 2건

  1. 노래할게 4 2008.02.20
  2. 겨울, 루시드 폴을 듣는 이유 14 2007.12.13

노래할게

from 음악을듣다 2008. 2. 20. 10:12

BGM
노래할게 by 루시드 폴

   깊은 새벽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을 둥둥 떠다니다 아주 우연히 그 곳에 도착했다. 그 때는 깊은 겨울이었고, 나는 그 겨울을 맞이하면서부터 루시드 폴에 빠져있었다. 그의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것이 좋았다. 그러니까 그 곳 이야기.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그 곳. 동남아시아 어딘가의 따뜻한 사진들이 많았던 그 곳. 깊은 겨울, 깊은 새벽에 만난 그 곳은 아주 깊은 곳이었다는 이야기.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보고 방명록을 훑어나갔다. 보고싶다는 흔적에 나는 이 사람이 조금 먼 곳에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오늘 무슨 일을 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흔적에 나는 이 사람이 친구가 많은 다정한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라는 흔적에 나는 이 사람이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몰려왔다. 보고싶다는 평범한 문장들은 점점 짧아졌다. 이러저러해서 생각이 났다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고싶다는 긴 글이 아니었다. 단지 보고싶다,는 문장. 얼마나 보고싶길래, 얼마나 생각나길래. 나는 이 짧은 네 글자로 이루어진 깊은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머무르게 됐다. 더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 대한 기록. 그러니까 조금 먼 곳에 있는, 친구가 많은, 선생님인 이 사람이 더 이상 이 땅 위에 없다는. 고향바다가 그를 삼켰다는. 사고였다는. 나는 아, 탄식을 뱉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리고 떠오른 이 노래. 나는 급하게 플레이어를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노래할게.     

   깊은 겨울, 깊은 새벽,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엉엉 울었다. 내 친구도 아닌데, 내 친구의 친구도 아닌데,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아닌데.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나는 마치 그가 내 친구인양 그렇게 목놓아 울었다. 오늘 루시드 폴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날 새벽이 생각나 아침부터 '노래할게'를 찾아 들었다. 왠지 오늘은 쓸쓸한 하루가 될 것만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하나의 목소리로 쓸쓸하게 시작된 노래가 어제는 태양이 너무 싫었다며 두 목소리가 함께 노래하기 시작하는 부분. 마치 그가 함께 부르는 것처럼. 찾아보니 루시드 폴은 이번 겨울 공연에서 '노래할게'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는 표현이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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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 Fall (루시드 폴) 3집 - 국경의 밤


   친구 생일을 핑계로 대학 때 자주 모이던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친구 둘이 서로 결혼을 하니 친구네 집에 가서 마음 편히 놀 수 있어서 좋아요. 미역국과 닭매운탕, 전을 부쳐서 도란도란 식사를 합니다. 이것도 맛나고, 저것도 맛납니다. 상을 물리고 설겆이를 하고 마트에서 사온 와인과 맥주와 과일과 안주들을 꺼냅니다. 짠. 예전처럼. 짠. 오늘도 변함없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에. 짠짠짠.

   뭔가 허전해서 음악을 듣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말해요. 루시드 폴 듣자. 친구가 루시드 폴을 틉니다. 짠짠짠. 한 친구가 말합니다. 노래가 너무 처진다. 또 한 친구가 말합니다. 음악이 좋긴 한데. 우리는 루시드 폴을 끕니다. 그리고 너무 방방 뜨지 않고 너무 처지지 않는 음악을 고릅니다. 결국 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듣습니다. 짠짠짠. 한 친구가 말합니다. 이거야. 그리고 우리는 예전에 즐거웠던 이야기,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그 때의 실수담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신나합니다. 깔깔깔. 그리고 취해갑니다. 술에, 추억에.

   요즘 계속 루시드 폴을 듣습니다. 뭐 어떤 글은 너무 무난해서 예전 음악보다 별로라는 평을 하지만, 저는 이번 앨범이 너무 좋습니다. 중랑천을 걸으면서 이어폰으로 듣고, 잔뜩 쌓여있는 설겆이를 하면서도 이어폰으로 듣습니다. 확실히 스피커를 통해서 듣는 것보다 이어폰으로 듣는 것이 좋아요. 더 정확하게 들리 거든요. 사람이라는 단어, 소녀라는 음절, 햇살이라는 내음새, 친구라는 따스함, 온기라는 온도, 바람이라는 향기, 혼자라는 외로움. 이런 단어들이 또렷하게 들리면서 내 마음이 사르르 떨리는 것. 이것이 이 겨울, 루시드 폴을 반복해서 듣는 이유입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들으면 그 맛이 살아나지가 않아요. 혼자일 때 가장 잘 들려요. 어떤 일을 하다가 사람이라는 가사에서, 바람이라는 가사에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람에 대해, 그 바람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제가 루시드 폴을 들을 이유입니다.

   노래해주세요. 계속 노래해주세요.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01. 사람이었네
02. 마음은 노을이 되어
03. 무지개
04. 국경의 밤
05. 가을 인사
06. 노래할께
07. 빛
08. 날개
09.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10. kid
11. 라오스에서 온 편지
12. 당신 얼굴, 당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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