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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식당
    서재를쌓다 2014. 12. 17. 23:30

     

       상호도 없이 그저 '실비집'이라고 불렸던 그때, 최대 여섯 팀이 이 드럼통을 놓고 화덕에 고기를 구웠다. 여섯 명이 아니라 여섯 팀! 그러니까 화덕 하나에 여섯 무리의 고기가 다 올라간 것이다. 고기가 섞이기도 하고, 먼저 익으면 다른 손님들에게 고기를 밀어주기도 했다. 상상만 해도 훈훈한 장면이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한다는 커뮤니티 테이블의 진정한 원형인 셈이다.
    "그랬지. 멋있고 정겨웠어. 어이 형씨. 이거 한 점 드슈, 그러면서."
    - 79~81쪽, 서울 연남서서갈비

     

       "브랜드가 백화수복과 금관 청주가 있는데, 수복이 더 비싸거든요. 문제는 콜라병이 다 똑같잖아요. 그래서 둘을 구별하기 위해 백화수복을 담은 콜라병에는 빨간색 철사를 걸어두었어요. 그게 넥타이를 닮았다고 사람들이 '넥타이 한 병!' 이케 외치기 시작했지요."
    은퇴한 시어머니 김 씨의 뒤를 이은 맏며느리이자 2대 안주인 조 씨의 설명이다. 그때의 넥타이는 사라졌어도 청주는 여전히 잔술로 팔고 있다. 오뎅에 청주, 일제 때 시작된 식민음식사의 면면한 현재다. 당시에는 청주를 잔술로 마시면 바둑돌을 놓아서 그 수를 표시했다. 일어설 때 바둑돌 수가 곧 마신 술의 양이었다. 운치 있는 표기법이었다. 요즘에 다들 '포스'라고 부르는 컴퓨터 시스템에 기입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 114쪽, 부산 마라톤집

     

       족맛도 족맛이지만, 필자에게 이 집이 각별한 건 이 씨의 말대로 화목한 동업의 역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집은 조카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일한다. 영원히 그 역사를 이어갈지 지켜보게 될 것 같다. 필자에게 족발을 내주며 이 씨가 한 말에 평안도족발집의 어떤 기운이 스며 있다.

       "나는 스스로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해.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

    - 219쪽, 서울 평안도족발집

     

       32공탄 연탄에서 프로판가스, 도시가스로 열원이 바뀌었지만 굽는 법은 늘 같다. 10여 년 전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나온 아들 상건 씨에게 가르쳐주는 기술도 늘 한결같다.

        "미리 부치지 마라, 맛없다. 아무리 바빠도 한 장 한 장 주문이 들어오면 부친다. 뭐 이러거쥬."

       우 씨는 이제 화.목.토 주 3일만 나온다. 그에게는 열 살짜리 손주가 있는데, 열차집을 이을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아, 한 시절을 잘 보냈다 싶어유."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 씨가 혼잣말하듯 필자의 눈을 보며 말했다. 400원짜리 빈대떡이 이제 1만 1000원을 한다.

    - 271쪽, 서울 열차집

     

      우선 순댓국밥 한 그릇을 청한다. 건더기 고명 양이 수북하고, 밑에 밥이 깔려 있는데 토렴이 예술이다. 건더기 고명 양이 많아서 같이 데우려면 열 번에 이르는 국자질을 해야 토렴이 완성된다. 적당히 뜨끈한 국밥이 식욕을 자극한다. 국물이 무척 진하다. 이곳 표현으로는 바특한 국물을 '딸린다'고 한다. 아마도 달였다는 뜻인 듯 싶다.

        곁들이는 찬은 소박하다. 내장을 따로 삶아내는 안주를 하나 청한다. 새끼보와 머리고기가 그득하게 들었고, 아주 맛있다. 찍어 먹는 장도 시어머니 시절부터 만들어 쓰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도 아침마다 국밥 먹고 일하우다."

        노포의 한결같은 공통점! 자신이 파는 음식을 늘 먹는다.

    - 321쪽, 제주 광명식당

     

        박찬일의 새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사이 새 책이 또 나왔다. 읽을 책들은 쌓여가고 있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백년식당 열 여덟 곳이 소개된 책. 백년식당이지만 백년동안 이어진 식당들은 아니다. 백년식당이 되길 바라는 곳들이다. 한 곳 한 곳 읽으며 내가 그 식당에 앉아 맛난 음식들을 먹는 상상을 했다. 상상 만으로도 행복했다. 좋은 파를 정성껏 손질해 넣은 담박하고 깔끔한 육개장,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돼지국밥, 연탄 센불에 구운 갈비, 심심하고 길게 끄는 맛이 일품인 추어탕, 진하면서도 구릿한 설렁탕, 굴젓과 함께 먹는 빈대떡, 개운한 물냉면, 포항의 자연바람에 건조시킨 국수 등. 한국 현대사와 맛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책이다.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은 제주의 광명식당 순대국. 수첩에 식당 목록을 적어놓고 표시하면서 모두 다녀볼 생각이다. 흐흐-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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