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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 J에게
    극장에가다 2014. 12. 22. 22:13

     

     

     

        금요일, 우리는 간만에 만났다. 맥주잔을 부딪히는 것도 오랜만. 각자의 이유로 그동안 맥주 섭취를 끊고, 줄였었다. 지난 오뎅집에서도 오랜만이었는데, 이번에도 오랜만이네. 친구는 최근에 <자기앞의 생>을 다시 읽었다고 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 덕분에 <자기앞의 생>을 읽었었다. 십년 쯤 된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야기도 했다. 언젠가 이 긴 영화에 대해 친구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인 영화라고 했다. 여자 둘이 사랑을 하지만, 동성애에 국한할 수 없는 영화라고 했다. 그냥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이번에는 친구가, 니가 꼭 봤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정말 열심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정말 이렇게 열심히 써 본 적이 없다. 써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끝장을 내버리자, 수준에 도달했다. 토요일도 쓰고, 일요일도 썼다. 일요일 밤에 가운데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더 이상은 쓸 수 없어, 지경이 되자 카드 쓰기가 끝났다. 카드를 쓰는 중간중간 티비를 봤는데, 토요일 밤에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900원 결제하고 보았다. 명성이 자자했던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무척 길고, 야했다. 그래서 볼륨을 낮추고 봤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왜 그렇게 길어야 했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는 글을 봤는데, 영화가 끝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사랑의 절정 단계였다. 너밖에 없어, 너만 있으면 돼, 너없인 못살아, 단계. 그 마음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단계.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단계. 이 영화는 그 단계를 격렬하게 보여줘야 그 뒤의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영화였다.

     

        주인공 아델의 아버지가 만드는 스파게티는 단순하다. 토마토 스파게티. 딱 보기에도 특별한 다른 재료가 들어가질 않았다. 심플한 토마토 스파게티다. 아델의 가족들도 그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집에 초대받은 엠마도 스파게티를 맛있어 한다. 간단해 보이는데, 정말 맛있네요. 이런 비슷한 대사를 엠마가 했다. 아버지의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한 아델의 스파게티를 먹은 친구들도 정말 맛있는 스파게티라고 칭찬한다. 이 영화가 그 심플한 스파게티 같다. 이 영화는 그냥 사랑 얘기다. 사랑의 시작 - 사랑의 절정 -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 별 거 없지만, 사랑스럽고 아프다.

     

        세 시간 넘게 영화를 보다보니 친구가 내게 영화를 보라고 한 이유가 보였다. 처음에 나는 그게 A 때문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B 때문인 것 같았다. A는 이를테면 나의 과거, B는 나의 현재. A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했어야 했던, 그래서 후회하지만, 하지 않았어도 후회했을 나의 과거. B는 노력해야 될 것. 내가 꿈꾸는 좀더 편안하고, 좀더 자연스럽고, 좀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해야할 것들. 흠. 파란 원피스를 입고 담배를 피며 C로 향해가던 아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월요일, 다시 일주일이 시작되었고, 나는 일을 하다가 아델의 C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하고 예쁜 아델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났을까. 책은 여전히 많이 읽고 있을까. 나를 위한 글이 아니지만,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한 그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친구, 이번 주말에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먹는 수 밖에 없겠다. 엠마 아빠처럼 요리하면서 와인을 홀짝거리기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심플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으며 우리의 C에 대해 생각해보자! 역시 나의 결론은 음식이다!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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