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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에게 린디합을
    서재를쌓다 2014. 1. 27. 22:48

     

       

       언니가 그랬다. 손보미 읽어봤니? 내가 아직이라고 했고, 언니가 말했다. 한번 읽어봐. 이상해. 읽어보면 아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 손보미의 첫 소설집을 읽었다. 그때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희안하게도, 신기하게도 그때 언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하다는 말.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내 경우에는 좋은 쪽으로 저울의 바늘이 좀 더 많이 가 있다. 동생이 얼굴에 자그마한 혹이 나 수술을 했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같이 갔다. 동생이 수술을 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했다. 아침을 못 먹은 터라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혼자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수술하는 동생에 대한 배신, 따위는 아니고 수술하고 나오면 바로 죽 먹으러 가기로 했기 때문. 그래서 로비에 가서 편의점에서 천원 짜리 아메리카노를 뽑아왔다. 일단 계산대에 가서 컵을 사고, 그 컵을 가지고 커피 머신으로 가서 빈 컵을 놓고 진한 아메리카노 버튼을 눌렀다. 천원짜리지만 제법이다. 약간의 크레마도 생겼다. 그 커피를 가지고 다시 수술 대기실로 올라왔다. 여기서 마셔도 되는지 간호사에게 물어보고 소파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평일의 대학병원은 북적이면서도 한산했다. 친구에게 이 소설집이 마음에 든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어떤 옷을 보면 어떤 여행이 생각나듯, 평일의 대학병원에 가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딱 두 군데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먼저 143페이지. '육인용 식탁'이다. 이 소설 재밌었다. 내가 포스트잇을 붙인 부분은 여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나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컵을 하나 깬 것 이외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아내는 깨진 컵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유리조각을 꼼꼼하게 치운 후,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을 함께 봤고, 커피도 한 잔씩 마셨다." 이런 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컵을 하나 깬 것 이외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와 아내는 깨진 컵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사이. 그 사이에 말하지 않은 것. 그걸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말해주지 않아서 좋았다. 다른 포스트잇은 작가의 말에 있다. 이 소설집은 당연하게도, 어떤 이야기에서 시작해 어떤 이야기로 끝나는데, 이 두 이야기가 연관이 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건 우주 너머에 똑같은 내가 한 명 존재하지는 않을까, 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내가 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때 엄마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너가 죽지 않았더라면. 정말 이 우주 너머에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또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애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할까. 그런 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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