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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서재를쌓다 2014. 1. 16. 20:15

     

     

        사실 표지에 반했다.  잘 지은 밥에 명란젓 한 쪽. 진짜 맛있어 보인다. 제목도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재미나게 읽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싶은데, 읽다 보면 실망스러운 책이 많았다. 사진만 너무 많거나, 감성적이기만 한 책. 뭔가 정보와 감성이 섞인 여행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은 재미났다. 일본 규슈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쓴 책인데, 그 음식들의 역사를 함께 살펴본다. 이 음식이 어찌하여 일본 땅에 뿌리내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그 음식의 맛집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추천사에서 요리사 박찬일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일본행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고 다니느라 집 몇 채를 날려 먹었다는 소문도, 그를 앞세우고 가면 오직 손으로 모든 걸 말하는 쇼쿠닌들을 친구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는 관심 없다." 그리고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가서 먹어봤다며 글과 사진의 흔적을 남기기는 쉽다. 그곳에 왜 그 음식이 있는지 의미망을 엮는 것은 어렵다. 박상현은 일본을 들낙거리며 이 어려운 일을 해치웠다."고 말한다.

     

        우리집 밥솥이 고장났다. 어디선가 밥솥을 청소하는 방법을 본 뒤에 한밤 중에 밥솥을 청소한다고 솥을 씻고 고무밴드도 꺼내서 씻었다. 그런데 고무밴드를 다시 끼는게 쉽지 않았다. 낑낑대며 겨우 끼었는데 그 뒤로 밥맛이 달라졌다. 김도 제대로 나지 않고, 밥을 하고 그냥 하루 놔두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영화 <좋지 아니한가> 생각이 났다. 그 영화에서 밥솥이 고장났는데도 새로 사지 않고 밥을 할 때마다 밥솥을 아빠의 오래된 허리벨트로 꽁꽁 싸맨다. 시집 안 간 노처녀 이모 김혜수는 하나 좀 사지 지지리 궁상이라고 궁시렁거린다. 식구들 모두가 불만이다. 엄마만 밥솥을 고수한다. 그 밥솥 생각이 났다. 막내는 우리 밥솥이 정말 오래된 밥솥이라고 했다. 그럴만도 하다는 뜻이다. 나는 뭔가 밴드를 잘못 껴서 그런거 같은데, 다시 제대로 낄 엄두가 안난다.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오래된 기준은 뭘까. 아무튼 요즘 집에서 한 밥은 그리 맛있지가 않다.

     

       이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중에서 제일 흥미있었던 부분은 쌀밥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인들은 밥을 정말 중요시한단다. 돈까스며 다른 외국의 음식들이 일본에서는 모조리 밥과 함께 하는 '반찬' 이 된 것은 이런 이유란다. 좋은 원산지의 쌀을 잘 지어 갓 먹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읽을 때면 우리집 밥솥 생각이 나고, 빨리 밥솥을 새로 사야 하는데 생각이 들고, 잘 지은 밥을 갓 먹는 상상을 했다. 책의 표지처럼 좋은 명란젓 한 쪽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을 것 같은 맛난 밥. 그런 밥 한 공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2개월 동안 먹어 치웠던 수많음 음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래서 지금도 수시로 생각나는 음식은 '밥'이다. 음식 좀 아는 체 폼 잡으려고, 혹은 대단히 형이상적인 기준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말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하얀 쌀밥이다. 아마도 일본 좀 다녀 본 분이라면 대부분 동의하실 거다.

        일본의 밥이 맛있다는 사실이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에 불과한 단기여행이었기에 맛있는 집만 엄선해서 다녔고, 그러니 밥이 맛있는 거야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일상적인 혹은 대중적인 수준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솔직히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저희나 우리나 밥이 밥상의 중심인데, 이 밥에서 밀리다는 것은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다년간의 일본 여행과 두 달간의 체류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일본의 밥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오래전부터 왜 그럴까 고민도 하고 확인도 해 봤다. 쌀이 다른가? 물이 다른가? 밥 짓는 기구나 솜씨가 좋은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봤다."

    -p.318-319

     

        정말 황교익 추천사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먹는 우리 음식에도 여러 의문이 생겼다. 며칠 전에 부대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 놀부 부대찌개 매장에서 포장을 했다.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생각했다. 그래 부대찌개도 미군이 들어와서 의정부에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역사가 있는데. 황교익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한국 음식은...' 하는 물음이 돋았다. 박상현이 의도한 것이다. 책 안에서 그와 나는 일본음식을 먹으며 한국음식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음식의 과거와 미래가 이 안에 있다." 이렇게 정갈하고 맛깔스런 표지에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운 '우리' 음식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책을 읽고나면 뭐를 먹던 간에 예사롭지 않겠지. 그러저나 밥솥!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우리의 흥청망청 생활비로는 엄두가 안난다!

     

       "입속에 들어간 밥은, 무르익은 봄날 벚꽃이 휘날리듯 산산이 흩어졌다. 막무가내로 흩어진 밥알은 형태가 온전하고 자기주장도 강해 꼭꼭 씹을 수밖에 없었다. 꼭꼭 씹으니 밥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향기롭고 달았다. 옅은 소금간이 밥에 생기를 더했다. 밥맛이 절정에 이를 즈음 이번에는 반찬이 가세했다. 밥과 반찬은 섞이면 섞일수록 맛이 깊어졌다. 그럴수록 턱을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음식을 씹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즐겁다는 사실을 대체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건가 싶었다. 오니기리 한 입, 바지락된장국 한 모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허기나 달랠 요량이었으나 배가 부르도록 오니기리를 위장에 채워 넣었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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