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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이월 어느 토요일의 일기
    모퉁이다방 2013. 12. 21. 20:47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다. 그칠줄 모르는 식욕으로 매일매일 살이 찌는 것들을 먹고 있다.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튀긴 것이 땡기고, 단 것이 땡기고, 짠 것이 땡긴다. 몸이 힘드니 술은 그닥 땡기지 않았는데, 오늘 마트에 들러 각종 캔맥주를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어제, 생각했다. 이번 주 내내 힘들었으니 뭔가 내게 주는 근사한 선물을 생각하자. 여러 공연들이 생각났다.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인가 Y언니와 기대에 기대에 기대를 하고 간만에 다시 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너무 실망스러웠지. 이번에 우리가 처음 본 조광화 연출에 <베르테르>라는 심플한 제목으로 다시 공연된다기에, 그것도 우리가 두 번이나 본 엄베르. 볼까 생각했는데, 공연장이 너무 멀고. 조승우의 <맨 오브 라만차>는 어젯밤에 좌석까지 봤다. 정말 좋은 VIP 좌석이 있었다. 어제 예매를 했어야 했는데, 꾸물거리다 오늘 보니 엄한 좌석 한 자리씩 남아 있었다. 이 가격에 이 좌석에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색 끝에 찾은 한 편의 연극. 가격도 적당했다. 시간도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밀리고, 밀렸다. 버스도 밀리고, 급해서 탄 택시도 밀렸다. 결국 공연 시작 시간 지나서 도착. 예매를 한 게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냥 버스를 탔다. 친구가 모임이 취소되면 저녁에 맥주를 같이 할 수 있을 거라 해서 신촌의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친구 퇴근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전도연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남은 좌석이 무척 적었고, 주말 한 낮의 극장은 커플들과 삼삼오오의 일행들로 붐볐다. 이들 틈에 끼여 혼자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다.

     

       그냥 극장을 걸어나와 신촌을 걷는데, 신촌 번화가가 문학의 거리로 바뀌는 모양이다.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 여러 이벤트 부스가 설치 중이었다. 역시 커플들과 삼삼오오의 사람들이 많았다. 홍익문고에 들러 신간들을 들춰 보다 <트래블러> 12월호를 구입했다. 일본식 우동을 파는 곳이 있어 들어갈까 망설이며 내부를 들여다 봤는데 역시 용기가 나지 않았다. E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모임 있대? 그러자 E에게 푸념의 메세지가 왔다. 있단다. 맥주하고 싶은데. 그럼 나 집에 들어간다. 연극도 못 보고, 영화도 못 보겠더라. 계속 배가 고파. 하루종일 먹게 된다, 고 메세지를 보냈다. Y언니가 좋아하는 타코몽의 타코야끼를 포장해 가려고 했는데 아직 오픈 전이었다. 버스에서 E의 메세지를 받았다. 그거 외로워서 그런 거래. 밥이라는 게 모성을 뜻하는 건데, 로 시작하는 메세지였다. E는 말했다. 그러니까 연말에는 아무 남자나 만나게 되는 것 같애. 외로우니까.

     

        마트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를 샀다. 오비맥주도 사고, 드라이D도 사고, 퀸스 에일 맥주도 종류별로 하나씩 사고, 마침 읽고 있는 책의 주제인 기네스 맥주가 행사 중이었다. 당연히, 샀다. 집에 와서 막내가 경주에 다녀오면서 사온 교리김밥에 달걀물을 묻혀 후라이팬에 구워 내고, 마트에서 사온 소고기와 동네 야채가게에서 산 부추를 넣은 반찬을 만들어 맥주와 함께 먹었다. 둘째에게 전화가 와 하소연을 한창 들어주고 있는데, 막내가 들어왔다. 막내는 남은 교리김밥 한 줄을 달걀물에 묻혀 부쳤다. 평일에는 기숙사에 있어 잘 못 보는 막내에게 주저리 주저리 여러 이야기를 털어놨다. 막내는 가만히 가만히 들어줬다. 그게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막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 막내는 내가 먹고 있던 소고기 반찬을 먹고, 내가 마시고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약속이 있어 다시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시간을 보니 <무한도전>을 할 시간이었다. 요즘 <무한도전>에 소홀했다. 생각해보니 간만에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 것 같다. 쓸친소 특집이었다. 쓸쓸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나는 드라이디도 먹고, 기네스도 한 병 먹고, 퀸스 에일 캔도 하나 먹고, 막 한 캔을 더 딴 참이었다. 그러다 눈물이 났다. 쓸친소에 소개된 연예인들이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리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보다 외롭지 않다고, 그리고 이렇게 함께 있으니 외로운 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인터뷰 영상이 이어지던 참이었다. 웃프다, 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웃긴데, 눈물이 막 고였다. 쓸친소에 소개된 사람에는 신성우도 있고, 지상렬도 있고, 나르샤도 있고, 써니도 있었다. 대성이도 있고, 김나영도 있었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끝날 때까지 한 번을 더 울었다. 맥주를 마셔서 그런 걸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신촌의 번화한 거리에 홀로 있을 때부터 조금은 울고 싶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면서 집이 있어 다행이라고, 집에 와서는 맥주를 마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무한도전을 보면서는 무한도전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지금은 이렇게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 왠지 요즘 쓸쓸한 것 같다. 외로운 것 같다. E에게 메세지를 보내면 이런 대답이 올 거다. ㅇㅇ.

     

     

         덧. <어바웃 타임>을 봤는데 기대보다 좋았다. 정말 따뜻하고 긍정적인 영화였다. 제목이 <어바웃 러브>인 줄 알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제목이 뭔가 잘못됐는데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어바웃 타임>이었다. 사랑, 영화기 보다는 가족, 영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을 두 번 살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고 스스로 일깨워보자. 몇 번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 그리고 현실은 현실.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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