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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환, 봄이 오는 동안
    무대를보다 2013. 3. 21. 18:45

     

     

    * Farewell

    1. 작별 (인사)   2. 안녕히 가세요.

     

       일요일에 걸은 길이 좋아서, 이번 주 내내 걷고 있다. 월, 화, 수. 오늘은 무척 추웠지만 걸었다. 손이 얼 것 같았는데, 걷고 나니 좋았다. 일요일에 길을 걷다 들어와 만보기를 주문했다. 요즘 내가 애정을 가지고 보는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 개그맨들이 그렇게 따뜻한 사람인 줄 몰랐다. 2주 전에 우연히 봤다가, 너무 좋아서 1회부터 최근 방송까지 연이어 다시보기로 봤다. 최근의 <인간의 조건> 프로젝트는 대중교통 이용하기. 이 프로를 보고 급 좋아지기 시작한 따뜻한 남자 정태호가 저번주에 만보기 여섯 개를 구입했다. 그걸 보고, 나도 만보기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매일 내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체크하고, 숫자가 적은 날은 좀더 걷다 집에 들어오기로 했다. 오늘은 첫날이라, 욕심내서 많이 걸었더니 높은 숫자가 나왔다. 다이어리의 오늘 날짜에 숫자를 적어뒀다.

     

        길을 걸으면서 내내 박경환 1집을 듣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백암아트홀에서 있었던 공연을 다녀왔다. 오래 전에 예매해둔 공연이었다. Farewell을 듣기 위해 결심한 공연이었는데, 다른 노래들도 덩달아 좋아져서 매일매일 듣고 있다. 예전에도 재주소년을 듣고, 이번 앨범이 나왔을 때도 여러번 들었는데, 공연을 다녀와서야 박경환을 제대로 들은 느낌이다. 노래에 박경환이라는 사람이 들어있다. 왠지 이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 진짜 같은 노래들. 어떤 가사들은 너무 자세하고, 세심해서 이 사람의 일상을 상상해보게 된다. 지하철 4번 출구 앞 빵집, 여자들 뿐인 옷가게, 구십육년의 겨울, 방 안의 난로, 오래전 가을에 처음 만난 친구. 앉아서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던 그가 중반 즈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뒤로 여러 곡을 서서 불렀는데, 생각보다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착한 사람 같다.

     

        다른 노래들도 좋았지만, 역시 제일 좋았던 노래는 Farewell. 밴드와 그리고 재주소년 유상봉과 노래했던 그가 무대 위에 홀로 남았다. 마지막 곡이라는 멘트도 없이, 가만히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 이 전주. 작별.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그가 노래했다. '그날도 바람이 불었던 것 같아.' 옆에 앉은 누군가 눈물을 훔치는 걸 봤다. '널 위해 밤새워 노래를 불렀지. 지금 넌 떠나고 곁에 없지만' 이 노래의 마지막은 휘파람이다. 휘파람은 즐거울 때만 부는 게 아니구나. 쓸쓸할 때도 부는 거구나. 내 앞에 이별한 후에 휘파람을 부는,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생각난 사람 때문에 쓸쓸해져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 노래하고 있다. '항상 나보다 훨씬 나았던 네가 결정을 내린 듯 나를 떠났고.' 꿈을 자주 꾸는 사람 같다. 가사에도, 공연 멘트에도 꿈 이야기가 많다. 어떤 꿈을 꾸고 일어나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드는 사람. '몇 해가 지나 겨울이 다시 온 건 내가 손쓸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그저 쓸쓸할 뿐야.' 작별. 안녕히 가세요.

     

        내가 본 사람이 진짜 박경환이든, 노래 속의 박경환이든,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소년의 친구들도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갈 길이 바빠서 회사에 늦어서 녹은 길만 골라서 밟네.'라고 노래한다. '학교에 늦어서'가 아니라 '회사에 늦어서'. 같은 나이는 아니지만, 같이 나이 들어가는 느낌. 좋다. 이어폰 끼고 길을 걸으며 들으면 노래들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봄이 오는 동안, 길 위에서 들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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