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님, 잘 먹었습니다 -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서재를쌓다 2011. 6. 16. 20:29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정위스님.이나래 지음/중앙M&B


        생일선물에 '건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면, 이 책은 올해 내게 온 가장 건강한 생일선물. 내 취향을 아는 친구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요리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은 정말 안성맞춤. 성북동 말고 관악산에도 길상사가 있단다. 전통 절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의 절이라는데, 거기 정위 스님이 계신단다. 스님의 살림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매화비빔밥을 대접받고 스님의 요리에 첫눈에 반한 기자가 스님을 조르고 졸랐단다. 스님의 요리법과 살림법을 배울 수 없느냐고. 그렇게 스님과 기자가 28개월 동안 (아마도) 한 달에 한 번 함께 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을 엮은 책. 이게 올해 나와 인연을 맺은 가장 건강한 생일 선물이다.

        일요일에 집에 있으면 챙겨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한국인의 밥상'. 5월인가, 6월인가 어느 일요일에 뒹굴다가 9번을 틀었는데 운문사의 풍경이 펼쳐졌다. 스님들이 산에 가서 쑥을 캐고 진달래 꽃을 타 먹음직스러운 쑥 칼국수와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내는 장면에 침이 꿀꺽. 뜨거운 물을 버릴 때도 혹시나 하수구에 있는 생명체를 생각해 찬물을 섞어 버리고, 이것도 수행이라며 손가락 마디를 따라 정갈하게 김치를 써는 모습을 보고 있노나니 허기가 느껴졌다. 건강한 음식이 마구마구 땡겼다. 

        이 책도 그렇다. 정위 스님의 살림 솜씨는 그야말로 센스 만점. 스님의 손을 거치면 뭐든 멋스럽게 변한다. 스님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물건들에 인격을 부여한다고 한다. 스님에게 온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뿐이라고 한다. 쓰다가 해져 구멍난 앞치마에 스님은 꽃모양으로 과일모양으로 수를 놓는다. 그러면 새 것보다 더 근사한 것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남은 천을 가지고 몬드리안 풍의 방석을 만들고, 흰 천에 나팔꽃, 질경이, 구철초, 제비꽃, 봉숭아 꽃의 수를 놓아 컵받침대도 만들고, 콘센트 가리개도 만들고.

        요리는 또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꽃향기 그득한 매화비빔밥, 내가 정말 좋아하는 새송이 버섯으로 만든 장아찌, 10개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주먹밥, 여름에 커다란 대접에 비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머리 맞대고 먹고 싶은 강된장, 곱디 고운 쌈밥, 감기 걸리면 꼭 마시고 싶은(근데 내가 말고 누가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을) 짜이라테, 맛이 궁금한 커피국수, 우리 아빠도 잘 끓이는 땅콩죽, 그리고 절편에 조미김을 감싸는 센스까지. 꽃꽂이도 그저 꽃의 생김새대로 꽂는 것 뿐이라지만 스님의 손길이 닿으면 먼가 다르다. 곱고 멋스럽다.

         더 더워지기 전에 관악산 길상사에 가야겠다. 지하에 있다는 '지대방'에 가서 스님이 직접 팥을 삶아 만드는 팥빙수도 먹어보고, 사발에 내 주시는 맛난 커피도 마셔봐야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조용하고 멋스런 산사를 거니는 느낌. 미소가 고운 스님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 시원한 절방에서 달디 단 낮잠 한 숨 잔 느낌. 아무 말도 필요 없는 느낌. 나는 가만 있는데 스님이 이것저것 계속 내 주시는 느낌. 배부른데도 계속 들어가는 느낌. 잘 먹었습니다, 스님.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