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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겨울의 시작, 화이트 아웃
    무대를보다 2009. 12. 14. 22:43

        그 날, 첫눈이 왔다고 했다. 늦잠을 잤는데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모두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는 내용. 잠깐 흩날리는 눈이었다고 했다. 어쨌든 내가 보지 못한 첫눈이 온 날, 아주 추웠고, 짙은 공연을 보러 갔다. 어찌나 춥던지 어쩜 공연 제목을 이렇게 잘 지었지 싶었다. 그야말로 이 겨울의 시작. 공연장 안도 몹시 추웠는데, 용욱씨(아, 어떻게 불러야 하지. 그와 나는 동갑인데)만 덥다고 했다. 옆에서 형로군(한 살 어리니까. 그래도 이상하네.)은 긴장한 사람은 원래 더운 법이라고 했다. 사실 용욱씨는 덥다고, 긴장했다고 했지만 전혀 긴장한 사람답지 않게 기타를 치고, 멘트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날, 충무로의 그 겨울에는 용욱씨랑 기타 한 대 뿐이었는데, 이 날, 이 겨울에는 형로군도 있었고, 기타, 드럼, 건반, 베이스는 물론 첼로랑 바이올린 등(!)이 있었다. 풍성한 짙은.

        두 시간 내내 여러 곡을 불러주었지만, 그 뒤로 내가 반복해서 듣게 된 노래 몇 곡이 있었다. 다 좋았지만 이 곡들이 특히 더 좋았다. 일단 디셈버. 이 곡에 코러스가 들어가는 부분이 참 좋다. '차가운 웃음 속에 / 이별이 느껴질 때 / 무너진 가슴 속에 / (바로 여기) 또 하나의 불빛이 꺼지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참 이상하다. 이건 분명 이별 노랜데, 그래서 불빛이 꺼진다고, 침묵소리가 마음을 때린다고, 계절이 어김없이 너를 데리러 온다는데, 이별의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는 거. 코러스의 '또 하나의 불빛이 꺼지네'가 지나가면 다시 불빛이 켜질 것만 같은 느낌의 노래다. 계절은 어김없이 너를 데리고 오지만, 이 다음 계절의 나는 괜찮아져 있을 거라는 그런 느낌. 이 노래. 용욱씨는 이 곡을 일 년 전에 만들었는데, 이렇게 겨울이 다시 오고,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그래서 다행이지. 일 년 전에도 겨울이 왔었고, 지금 또 겨울이고, 일 년 뒤에 또 다시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붕어빵도 군고구마도, 그 사람 생각도. 어김없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또 다른 노래, 필 올라잇. 이 날 지하철이 끊겨서 조금 걸어서 버스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그건 순전히 용욱씨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앵콜곡 부르기 전에 말했다. 공덕역 족발이 맛있다고. 그 말 때문에 바로 집에 들어가려고 했던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마치는 시간이 딱 맞았던 H씨랑 만나서 공덕역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순대국 집에 가서 순대국에 동동주(이건 거의 나만) 마셨는데, 토요일이니까 1시간 일찍 전철 끊기는 사실도 망각한채 그 많은 양의 동동주를 벌컥벌컥 마셨다는 사실. 군자역에서 지하철은 끊기고 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가는데 동동주 먹은 취기가 막 올라왔다. 바람도 차고, 기분도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지. 필 올라잇. 쓸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이건 시작 부분의 가사. '난 거리를 걷다 지친 마음이 / 어둠 속에 눈물을 감추고 / 어디선가 다친 상처들이 / 벌거벗은 채 세상을 만날 때 / 유 메잇 미 필 올라잇 / 유 메잇 미 필 올라잇-'. 그 밤, 그 길에 그 노래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나밖에 모를 거다. 정말. 

        그런 말을 했다. 이 말도 용욱씨. 공연 하기 전까지, 이불 속에 계속 숨어 있었다고. 그 날은 떨린다는 말만 하고, 노래를 저리 잘 부르는 사람이 무슨 말이야, 생각했었는데. 어젯밤에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계속 이불 속에 숨어 있었다. 용욱씨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맞나요?) 일단은 이불 속에 숨어 있고 싶은 마음. 이불 속은 어쩜 그리도 좁고 따스한지. 세상이 꼭 이랬으면 좋겠다고, 다가올 그 날이 딱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저께는 잠에서 깨서 엉엉 울었다. 꿈에서 누가 나한테 서러운 말을 건넸는데 정말 그 말을 듣자마자 꿈 속의 내가 엉엉 울었다.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저 아이가 너무 심하게 운다고 생각하고 눈을 떴다. 근데 진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다. 그게 서러워 좀 더 울었다. 새벽이었고, 울다 다시 잠들었다. 어젯밤 꿈에는 엄마가 나를 두고 버스에 휙 올라타고 가버렸다. 내가 같이 택시 타고 가자고 했는데, 돈 아깝다고 건너편에서 혼자 버스를 타버렸다. 엄마가 탄 버스가 사라지니 그 큰 도로가 텅 비었다. 꿈 속에서도 새벽이었다. 난 또 쓸쓸하고, 외롭고, 엄마가 날 두고 그냥 가버린 게 서러워 좀 울었다. 이번에는 진짜 울지는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꿈을 꿀 것인가. 정말 긴장되서 이러는 걸까. 그래도 짙은이 공연 잘 치뤄냈듯이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자아자. 그리고 타로카드 보러 가야지. 친구야, 이번엔 만원짜리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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