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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천구년의 제천, 바람 불어 좋은 밤
    여행을가다 2009. 8. 17. 23:32




       이건 2009년 8월 17일 오전 8시 38분 제천의 하늘. 제천 영화제에 다녀왔다. 어느 날, Y언니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년 전 내가 갔던 제천 이야기가 했다. 지금도 그 해, 그 여름, 제천 밤공기의 느낌이 생생하다. N언니와 나는 청풍호수에서 돌아와 각자 샤워를 하고 심야 영화를 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시내로 걸어갔다. 그 날 하루종일 정말 많이 더웠는데, 그 밤, 바람만은 시원했다. 찬물로 샤워를 갓 하고 나온 우리의 손이며, 발이며, 얼굴을 스쳐주었던 선선한 바람이 좋아서 그 해의 제천을 기억하면 영화보다, 바람이 먼저다. 그게 2006년의 일이다. 오늘 그 해의 연필 기념품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2006이라는 숫자가 씌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N언니 그건 3년 전의 일이예요. 그러니까, 이석원이 4년 전에 서른 몇 살의 나이로 제천에 왔을 때, 나는 그 곳에 없었다.)

       그 2006년의 바람 이야기를 Y언니랑 하다, 2009년 제천의 밤바람을 함께 맞으러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로. 혹시나 싶어 바람불어 좋은 밤 행사에 응모했는데, Y언니가 당첨! 아주 저렴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제천을 다녀왔다. 차비랑 숙소랑 원 썸머 나잇 티켓을 제공해줬다. 2006년에 그랬던 것처럼. 정말, 바람 불어 좋은 밤이다아.

     



       일요일, 월요일 일정이라 둘이서 나란히 휴가를 냈다. 평일에는 일찍, 주말에는 누가 뭐래도 늦게 일어나도록 입력되어있는 내 몸뚱아리 '덕분에' 애써 맞춰놓은 알람을 끄고, 끄고, 끄다가, 9시 5분 전에 일어났다. 10시까지 광화문에 가야하는데. 10분만에 씻고 챙겨 나왔다. 정말 10분. 그 사이에 머리도 감았다. 그렇게 허둥지둥 제천 일정이 시작되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탔다. 제천까지 가는 동안 둘이서 쉴새없이 떠들었는데, 무슨 얘기를 했더라. 아, 자봉언니(이렇게 부르면 안되는데. 나이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건 순전히 Y언니 때문이다)에게 도착하자마자 2시에 영화를 예매해놓았다고 말한 사람은 女女커플 뿐이었다. 우리랑 우리 바로 옆 좌석의 그 분들. 거기다 관광버스 한 대에 80%가 어린 커플들. /아흑/. 커플들 다 족구하라 그래! (친구네 집에서 반신욕하면서 본 김애란의 신작단편 속 한 구절의 패러디랄까. 김애란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를, 나는 김애란의 소설을.)

       둘뿐이면서, 나에게 총무 권한을 주겠다며 마치 오락부장을 발표하는 담임처럼 말한 언니는, 돈 쓸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총무' 이거 사줘, 라고 말했다. 그 처음이 핫바. 지방이 집이 아닌, 그래서 자주 고속버스 휴게소에 들릴 일이 없었을 언니는, 자꾸만 휴게소하면 핫바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쳤다. 말도 안 되지. 휴게소하면 감자, 휴게소하면 호두과자, 휴게소하면 반건조 오징어인데. 언니는 올라올 때 한 번, 내려갈 때 한 번 이상한 이름의(특이한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핫바와 해물핫바를 먹었다. 핫바도 중독되나. 올라올 땐 나도 치즈 핫바를. 흠. 맛있긴 했다.




       영화는 세 편 봤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이동. 제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더웠는데, 뭐랄까. 그 더위랑 이 더위랑 다르더라. 오늘 서울에서 내리고 난 뒤에 생각한 건데, 제천의 더위는 한 여름에 햇볕에 내 놓은 바짝 마른 빨래의 냄새라면, 서울은 그렇게 햇볕이 쨍쨍한데도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방 안에다 널어놓은 빨래의 느낌이랄까. 그 빨래에는 굽굽한 냄새가 남는다. 요즘 우리집이 그렇다. ㅠ 그리하여, 서울에 내리자마자 제천이 그리워졌다. 흑흑-

        어쨌든.
    걸어서 시내 극장으로 이동해서 <볼리우드 아이돌 선발대회>를 봤다. 끝나고 배가 고파 달고 짠 토스트를 먹었다. N언니랑도 만났다. (언니, 정말 축하했어요. 생일요. 모자요, 귀여웠어요. 티셔츠요, 탐났어요! ) 그리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서 <델타 라이징-블루스 스토리>를 봤다. 모건 프리먼 아저씨도 나오는, 블루스에 관한 다큐였다. Y언니가 정리해온 맛집 리스트 중의 한 곳이었던 극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빨간오뎅과 슬러시와 튀김도 먹었다. 그리고 꼬불꼬불 길을 따라 셔틀버스를 타고 청풍호수로 이동. 원 썸머 나잇 영화와 공연을 봤다. 해가 지면서 날이 얼마나 부드럽게 선선해지던지. 호숫가의 바람은 얼마나 시원하던지. 별들이 또 얼마나 많던지. 그 이야기는 내일. 꿈만 같았던 바람의 기운이 내 몸에서 사라지기 전에 모두 기록해두려고 했는데, 체력이 딸리니까.




        사진은 모두 제천의 하늘. 제천의 하늘은 아주 예쁘다. 그야말로,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들. 잊지 말자. 제천의 바람, 제천의 호수, 제천의 나무, 제천의 하늘, 팔월의 별, 그 날의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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