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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은과 손지연
    무대를보다 2009. 7. 26. 00:50


       <와니와 준하>가 생각나는 밤이다. 내게도 아끼는 영화'들'이 있는데, <와니와 준하>가 그 중 하나다. 그 영화'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이 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화해주는 사람도 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들도 있다. 봄에는 다가올 초여름의 밤바람이 기대되어서, 여름에는 여름이니까, 겨울에는 와니가 정원에 호수로 물을 뿌리면서 자갈밭 위의 자기 발을 씻어내는 장면이 생각나서. 정말 여러 번 보았구나. 

       월요일에도 <와니와 준하>가 생각났다. 그날 나는 오지은을 만나고 있었다. 이름하야 팬미팅 자리. 오지은은 그 말이 쑥스럽다며, '히든 트랙'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고 했다.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서 쉴새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에너자이저' 지은씨의 수다가 끝나고,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 곡이었다. 1집과 2집에 실리지 않은, 언젠가 어느 앨범에 실릴 것 같은, 친구의 영어시에 곡을 붙인 노래 한 곡. 2집의 '두려워'. 1집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와니와 준하>가 생각난 건 지은씨가 '오하별'을 부를 때. 글쎄, 뭐랄까. (이 두 단어를 상당히 많이 애용하셨음!) <와니와 준하>의 앞, 뒤 애니메이션 부분이 생각났다. 내가 애니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사로 <와니와 준하> 풍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는 한 여자아이가 어둑어둑한 저녁,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725번 버스를 탄다. 뒤의 창가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앉자마자 창문을 있는대로 열어젖힌다. 여름의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 거지. 그 때 기타 반주의 '오하별'이 흘러나오는 거다. 창 밖으로는 별도 있고, 달도 있고, 밤 산책을 하는 아가씨도 있고. 그러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구나'에서 계절이 순식간에 바뀌고 따뜻하게 차려입은 여자아이가 여전히 725번 그 창가자리에 앉아 있다. 여자아이는 추우니깐, 한껏 열어젖힌 창문을 닫고 가방에서 따끈한 캔커피를 꺼내서 한 모금 마신다.  창밖에 비치는 멍한 얼굴의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사가정역에서 내린다.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걷는다. 일 거리도 걱정하고, 저녁 거리도 걱정하고, 내 사랑, 내 인생도 걱정하며 걸어가는데 뭔가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눈. 겨울의 첫 눈. 아, 눈이잖아. 하는 표정으로,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입에서는 입김이 호호 나온다. 옆으로 725 버스가 지나가고,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버스 꽁무니를 잠시 바라보고 썼다가 계속 걸어단다.

        별별 생각을 다 하는 나. 아무튼 그 세 곡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도 풍성한 소리를 내는 지은씨. 그 날 클럽 타에서 에어콘 바로 앞에 앉아 덜덜 떨면서 지은씨의 이야기며, 노래를 들었는데, 오하별을 들으니깐 순간 따뜻해졌다. 아, 그리고 그 날. 지은씨가 나를 기억해주었다지. 그래서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지난 번 공연때 내 이름을 말하고 사인받은 것밖에 없는데, 그 날 내 이름이 자기 친구랑 비슷하다고 웃으면서 말했줬었다. 이번에 타에서 이름을 말하니깐 저번에도 오셨죠? 라면서 나를 기억해주고, 반가워해줬다. 그래서 '나의' 오지은 1집에는 '또 뵈었네요' 라는 글귀가 파랗게 적혀져 있다는 자랑질. 헤헤- :) 그 날, 파리빠게뜨에서 산 조그만 치즈케잌을 선물했다. 선물까지 준비해가니 뭔가 아이돌 팬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뭐 아이돌 팬이 어떤 선물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금요일에는 손지연 공연을 '드디어' 보았다. 연극 중에 흘러나왔던 '기다림'이라는 곡에 반해서 같이 연극을 보았던 J씨랑 같이 손지연이 매주 공연을 하는 클럽에 언젠가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맥주를 같이 마시면서 '기다림'을 듣자고 말했는데. 우리가 그 말을 했던 때가 겨울. 지금은 여름. 벌써 두 계절이 지났다. 세종문화회관 앞 중앙무대에서 무료공연이 있었다. 덕분에 '드디어' 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림'을 들었다. 내 엠피에 저장되어 있는 세 곡, '기다림', '조각배', '그리워져라'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비내음이 섞인 바람이 세게 불었고, 바로 옆에서는 공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젊은아이들이 떼거지로 와서 맥주를 마시면서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이 가사는 또렷하게 들렸다. 아린 가사.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가사. '꿈 속에서도 떠나는 널, 꿈 속에서도 종일 기다리는데.' 

        이렇게 일주일도 마무리되었다. 또 비가 온다지. 장마도 온다지. 오늘은 얼마 전에 종로에 있는 중고가게에서 삼천원 주고 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줘> 디비디를 꼭 끝까지 보고 자야지. 나는 언젠가 보았던, 마음이 통했던 로맨틱코미디를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날 보다 잠드는 걸 좋아한다. 그럼 모두들, 긋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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