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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를 만나고 온 밤에는,
    서재를쌓다 2009. 6. 24. 23:58


        오늘 밤은
    어떤 문장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사버리는 바람에. 어제는 공선옥 작가님과 정한아 작가를 만났다. 역시 작가와의 만남 자리였다. 아주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는 합정역 근처의 카페였다. 거의 2시간 동안 함께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앉아 그저 무덤덤하게 들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받아적어두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아무 종이나 꺼내서 이런 저런 말들을 적어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종이가 마트 영수증이었다. 6월 10일 날짜의 영수증. 나는 그 날 역시 마트에서 카스캔을 하나 사고, 물도 사고, 껌도 샀다. 그 영수증 뒤에다 이런 말을 받아적었다. '친구가 없고, 외로웠어요.', '내 안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지층이 꽤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10일에는 카스캔을 마셨고, 어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어젯 밤에 나는 왕십리의 광장에도 앉아 있었다. B씨와 나는 왕십리역에서 내려서 10일날에도 마셨던 카스캔을 하나씩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길다란 나무 벤치에 앉아, 캔을 땄고, 술도 못 하는 B씨는 한 모금 들이키더니 아, 시원하다,는 말부터 했다. 금새 얼굴은 빨개져 가지고.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6월의 바람이었다. 나는 술도 한 모금 마셨겠다, 바람도 불었겠다. 그제제야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을 비로소 만나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덤덤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대화가 몇몇 부분 얼마나 내 마음 속을 후볐는지 몸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이다. B씨와 나는 나란히 앉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그리고 내 옆의 사람이, 우리가 오늘 만나고 온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무척, 아주, 많이 아끼는 일본 드라마, 그러니깐 '스이까'나 '슬로우 댄스'가 절로 생각나는 밤이었다. 여름이니까. 아, 보고싶어라. 

        B씨는 오늘 이런 시를 내게 보내줬다. 최영미 시인의 시다. 시는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 나는 잊었다'로 시작해서,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로 끝난다. 그 시를 카스 병맥주를 컵에 콸콸 따라 마시면서 읽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제 그 나무향이 솔솔 나던 카페에서 세 사람이 낭독을 했다. 그 낭독은 모조리 좋았다. 서울의 밤을, 시골의 밤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들이었다. 그리고 '그냥 내 책'이 '작가에게 직접 사인받은 책'이 되었다. 오늘, 옆 사람에게 건네받은 시도 있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마저 잔을 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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