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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어 - 2008 新별주부전 즐기기
    극장에가다 2008. 7. 30. 18:46

       '두웅- 이게 뭔 징소리여. 촌스럽게 영화 시작하면서 징소리는 뭐다냐' 식의 추임새부터 시작해서 '입소문 좀 많이 내 주소. 요즘 그런 말 하면, 아이쿠 인터넷에 악플이 얼마나 무서운줄 모르는겨, 얼른 와. 그기 뭐가 어때서' 식의 추임새로 막을 내리는 영화. 두둥- 영화 <스페어>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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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강추. 시사회에 당첨됐는데 몸 상태도 안 좋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신촌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갈까말까 일백번 망설이다가 결국 갔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도착해서 봤는데,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오길 잘 했단 생각을 영화보면서 한 열 번쯤 한 것 같다.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액션영화인데 내가 싫어하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욕설이 난무하지 않는다. 신명난다고 해야할까. 아, 이 영화의 배경음악은 거의 우리 악기로 만들어졌다. 징, 꽹과리, 가야금(이건 나중에 크레딧에서 발견했다), 아쟁(왠지 있지 않았을까. 좋지 않은 귀라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등등. 거기다 영화 중간중간 강원도 사투리 쓰는 두 남자가 가려운 곳을 빡빡 긁어준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들 생각들을 먼저 선수쳐서 이야기해주는 형식이랄까. 그러니까 관객 입장의 나래이션. 이 영화가 판소리라면 두 사람은 추임새. 웃길려고 한 말임이 분명한데 안 웃긴 대목들도 있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얼씨구,라고 그 추임새에 추임새를 넣고 싶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마지막 크레딧 올라갈 때 얼씨구, 그런데 이 영화에 여자가 한 명도 안 나온 게 좀 그렇네, 라는 식의 추임새에 내가 절씨구, 그러게. 그런데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구먼, 이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판소리 모양새를 갖추고 신명나게 한번 웃어보세, 놀아보세, 즐겨보세, 라고 한다. 그러니 관객들은 웃고, 놀고, 즐기면 된다. 편하게.


     
    이 분이 토끼길도


       영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이건 별주부전,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을 알리 없는 토끼전의 신명나는 한 판 놀이다. 작자 미상의 조선 후기의 판소리인 별주부전은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자 자라가 육지에 사는 토끼 간을 찾으러 가는 긴 여정을 그렸지만, 2008년의 新별주부전, <스페어>의 이야기는 이렇다. 일본의 야쿠자 보스의 간을 찾으러 중간 보스 사토오는 서울에 사는 특별활동 에이치알이 아닌 알에이치 마이너스의 피, 희귀한 보스의 간을 찾아 한국에 사는 광식이 동생 광태가 아니라 길도 불알친구 광태를 찾아온다. 광태는 별주부전 잔머리의 귀재, 토끼가 아니다. 그는 귀여운 마스크에 액션을 열라 잘하는 착하고 다만 노동을 싫어하는 청년일 뿐. 토끼는 여기 있다. 잔머리의 귀재, 길도. 길도는 광태에게 너의 간을 내 주면 용궁의 벼슬이 준다는 말 대신 너의 간을 내 주면 너의 빚 8천만원을 아주 깨끗하게 갚아주리라, 너는 이제 새 삶을 살게 되리라, 고 꼬신다. 능글맞게. 일본에서 온 별주부전 따위는 전혀 모르는 사토오는 당연히 자라다. 충직하고 우직하고 조금은 아둔한 신하. 아, 나같으면 일단 8천만원 해결해주고 데리고 갈텐데, 넌 야쿠자잖아, 돈 더 있을 거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토오는 나는 다 지불했다, 만 반복한다. 그러니까 자라는 서울에서 용왕의 간 이식 대상자인 광태를 데려가야 하는데, 요 능글맞은 토끼때문에 채무관계가 해결되지 않아서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질 못한다. 광태를 토끼를 잡으러, 자라는 광태를 잡으러 쫓고 쫓기는 고군분투 중에 피어나는 웃음이랄까. 아무튼 이게 2008년 新별주부전의 대강의 스토리. 그 사이에 멍텅구리 사채업자 명수도 있고, 무늬만 쌍둥이도 있고, 인간적인 마스크의 종일이도 있고, 잘 생긴(!) 카고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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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은 자라사토 


       이 영화를 '광태의 간', '야쿠가', '야쿠록', '광태, 길도 야쿠입전', '길도생전'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겠다. 별주부전의 오랫동안 전해온 명성과 사회풍자적인 면모를 비교해봤을 때 <스페어>는 보잘 것 없지만, 확실한 건 98분의 토끼전의 형식을 한 이 이야기가 꽤 재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 식의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바람소리에서 시작해서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는 아주 크게 깔깔거리면서 웃고 즐길 수 있다는 것. 나도 모르게 일반 시사회장에서 박수를 치려고까지 했다는 것. 액션이 시원시원하고 극악스러운 면이 없어 좋다는 것.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이나 훌륭하다는 것. 캐스팅이 아주 잘 됐다는 것. <스페어>가 첫 영화인 이상한 감독의 다른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는 것. 배우를 비롯해 감독, 프듀서가 참으로 착하다는 것. 무대인사에서 프로듀서는 큰절을 했고, 영화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감독과 프로듀서가 나란히 서서 계속 인사를 했더라. 토끼와 광태, 두 배우는 관객들에게 환한 미소를 띄우며 열심히 함께 사진을 찍어줬다. 사실 처음에 무대 위에 올라와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큰 절까지 했을 때는 얼마나 영화에 자신 없었으면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보니 그건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영화에 대한 끝없는 애정의 표시였다. 힘들고 어렵게, 그러나 꽤 잘 만들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만든이의 마음. 그게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쾌 발랄광태


       흠 감상포인트는 그저 편하게, 웃고 즐기기. 그거면 된다. 두둥- 끝. 너무 칭찬 일색인 거 아닌가. 그러다 알바라고 오해받지. 몰라. 그냥 재밌게 봤으니깐 재밌다고 하는것이여. 끝. 얼른 가. 그기 좀 마음에 걸리는데. (퍽) 진짜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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