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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달콤한 인생, 안녕
    티비를보다 2008. 7. 22. 02:17


       나는 이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봤다. 주말 밤, 집에 있을 경우 꼬박꼬박 챙겨 봤다. 거의 대부분의 주말 밤에 집에 있었기때문에 거의 다 본 셈이다. 그건 전적으로 드라마의 초반, 오타루에서의 화면들 때문이었다. 언젠가 혼자, 혹은 누군가와 단둘이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싶은 소망이 내게 있다. 그건 영화 <러브레터> 탓도 있겠지만 내 마음을 더 움직이게 만든 건 윤대녕의 <눈의 여행자>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읽어서 이 소설의 배경이 정확하게 어디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눈이 아주 많이 왔고, 이미 눈이 아주 많이 쌓였던 곳. 소설 속 소설가는 어느날 그 곳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거품 많은 일본 맥주를 마셨다. 아니,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내 기억이 완전히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 그 하얗고 깊은 눈밭을 헤매기도 했었다. <눈의 여행자>를 겨울에 읽은 게 확실한데, 그건 이 책 앞에 보라색 하이테크 펜으로 적어놓은 나의 메모때문이다. "04년2월14일토요일밤, 유키로 가득한 책 한 권을 끝내고 잠바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집 앞 수퍼에 들린다. 카스 맥주 2캔, 김, 소세지, 초콜릿, 아폴로, 꿀맛 쫀드기. 마셔야지."

       그러니까 나는 이 드라마를 아주 열심히 봤다. 2004년 겨울밤에 읽었던 윤대녕의 소설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해 줄 풍경들이 1,2화 내내 펼쳐졌으니까. 이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에 나는 내가 무더운 여름밤 한가운데에서 눈을 기다리고, 뜨거운 온천을 꿈꾸고, 거품많은 맥주 한 잔이 간절하기를 바랬다. 뭐.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뜨리는 이유는 결국 그게 아니였으니까. 어쨌든 잔뜩 기대하고 보았고, 결말은 1화 제일 첫부분에 나온 상태였고,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미스터리 멜로'였으니깐) 신비로운 오타루의 겨울에서 시작되었던 드라마는 점점 정신병자들의 향연(동생님의 표현)으로 물들어갔다.

       동생과 나는 이 드라마를 둘이서 나란히 앉아서 챙겨봤는데, 처음에 우리의 감탄사는 이를테면 너무 좋다, 아, 좋아라, 식이었다. 그러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동생이 먼저 말했다. 이거 정신병자들 드라마야. 나는 콕 째려보며 나무랬다. 너는 인간이 원래 저렇게 갈등하고 끊임없이 변하게 생겨먹을 걸 아직도 모르겠냐, 쯧쯧, 역시 어리다. 그러다 어느 날, 드라마가 아주 심각해져 있는 순간이었는데 (하긴 이 드라마에 심각하지 않은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둘 다 동시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는 심지어 이런 대화까지 나눴다. 역시 정신병자들이야. 일단 제일 심각한 이동욱부터 병원에 집어넣어야 되겠다. 또 저런다. 코미디 시청하듯 그렇게 까르르 웃으면서 마지막회를 시청했다. (그래도 마지막씬은 좋더라)

       내가 이 드라마에 가장 빠져있었던 건 그 씬이었다. 오연수와 이동욱이 미술관에서 만나는 장면. 우아하고 기품있는 오연수 아줌마가 서투르고 무모한 이동욱을 지나쳐 걸어가던 장면. 어리고 상처투성이인 이동욱이 오연수를 발견하고 해맑게 웃다가 그녀가 자신을 모른척 스쳐지나가자 온 몸에 새겨져 있던 상처들이 일제히 따끔거리던 순간. 컷트머리 S라인 오연수는 이동욱의 해맑은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아줌마의 심정으로 그를 지나쳐가며 멈춰설까, 그냥 지나칠까를 1분동안 백만번 고민했던 순간. 결국 오연수가 뒤돌아보고, 이동욱이 없어졌던 순간. 그렇게 엇갈리던 심장이 두 번은 따끔거리던 순간. 

       내가 이 드라마에 가장 실망했던건 오연수가 가정을 버리면서부터였다. 정보석을 버린 건 이해하더라도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이들까지도 버리겠다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이유는 사랑.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정보석이 마지막에 그런 말도 했다. 어떨 땐 오연수가 부럽다고. 그렇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 아, 믿었던 정보석까지 이런 말을 한 거다. 이 드라마는 마지막에 네 주인공이 동시에 발음했던 것과 같이 오직 '사랑'이야기였다. 사랑해. 아이러뷰, 미투. 사랑이라. 사랑? 이 끊임없는 동어반복. 이동욱의 과거에 대한 회상씬은 또 얼마나 반복되었던가. 타 방송국에서 훈남으로 나오던 이동욱의 부잣집 친구분은 미친듯이 웃어제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꼬.    

       뭐 아무튼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 궁금해서 매주 닥본사했고, 처음에는 열광했으나 나중에는 참으로 실망했다. 오연수가 무릎을 꺽고 사랑,을 외치던 순간부터. 이동욱이 박시연을 절벽 끝으로 몰고가 자신의 예전 과오를 똑같이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손을 놓지 않고 그녀를 살려줌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상황을 만들어내었던 순간에 더더욱. 이동욱과 부잣집 친구분의 절벽씬과 자동차 사고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간에. 먹고 살기 넉넉해 (심지어 이혼해 돈 많이 벌어야만 했던 오연수까지) 먹고 사는 생존을 위한 생활따위는 상관없이 나를 봐달라고, 나를 사랑해달라고, 내게 돌아와달라고 울부짖었던 주인공들때문에. 사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데,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으면 누가 드라마를 보겠노라고 생각하는 주의지만, 결국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을 발견하면 나는 이 드라마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오목조목 그런 구석들을 찾아내고 있다.

       아무튼. 안녕, 달콤한 인생. 그래도 오연수 아줌마의 우아한 몸짓은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갑자기 급 예뻐진 박시연의 외모도 내 눈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몰매맞다가 결국 가장 이해되는 캐릭터로 급 부상한 정보석 아저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고. 이동욱은 어제보니깐 드라마 초반에 비해 살이 많이 빠졌더만. 그래서 다크서클은 더욱더 진해져주시고. 아무튼. 안녕이다. 달콤한 인생. 징글징글한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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