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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률의 열가지 독백
    음악을듣다 2008. 3.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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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맥주를 잔뜩 샀다. 금요일이면 약속이 없는 날에도 맥주 한 잔쯤은 꼭 해줘야 될 것만 같다. 간만에 밑반찬이 많아져 저녁을 넘치게 먹었고,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맥주를 꾸역꾸역 넘겨넣었다. 아, 금요일인데. 이 밤을 맘껏 즐겨야 하는데. 스르르 잠이 왔다. 먹고 바로 자면 살 찌는데. 기대서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요즘 살이 쪘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동생은 언니도 더욱더 살찌워 같이 운동하러 나가자고 조를 속셈으로 친절하고 아주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단다.

       사온 맥주도 다 마시지도 못하고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그 시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김동률이 나왔단다. 러브레터에 나올 때가 됐는데, 라며 지지난주부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출연자 리스트를 확인했는데. 마침 확인하지 못한 어제, 김동률이 러브레터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겨울이 한창일 때, 김동률의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나는 그걸 엠피쓰리로 듣다가 하루도 못 가 씨디로 주문했다. 가지고 싶어서. 이 앨범을 가지고 있다 아무때고 생각날 때 꺼내 듣고 싶어서. 아주 오랜 뒤에도 문득 생각이 날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그가 누구에게 어떤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남겼을지 쌩스투도 궁금했다. 앨범 속에 담긴 열 곡을 들으면서 중랑천을 열심히 걸어다녔던 그 밤들. 너무 추워서 코가 빨개졌는데 노래가 좋아서, 그것이 담고 있는 가사가 마음에 닿아서 찌릿해지던 밤들이 오늘도 생생하다.

       모놀로그. 올 겨울은, 아니 지난 겨울은 루시드 폴에서 시작해서 김동률로 끝맺었다. 겨울에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루시드 폴과 김동률이다. 김동률이 내는 낮은 독백들을 눈이 오고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열심히 들었다. 산뜻한 출발을 하고, 아직도 널 그리워하고, 예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지루한 일상을 떨쳐 버리려 하고, 웃게 만들어주는 사랑에 감사하고, 무대 위의 나를 느끼고, 그녀가 친구의 여자친구가 되어버린 현실이 원망스럽고, 어떤 뒷모습을 놓쳐버리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늘 힘을 주는 멜로디에 감사하는 그의 열가지 독백을 부지런히도 들었다.

       특히 좋았던 곡은 '오래된 노래'. 처음 들었을 땐 이 노래가 타이틀인 줄 알았는데. 오래 전 내가 그립고, 부럽다는 노래. 오래 전 내가 '부럽다'는. 이 가사에서 찌릿찌릿했다. '점프'도 좋고. 토마스랑 목소리가 잘 어울리더라. 진짜 그의 이야기같은 조금 가벼워진 김동률의 독백을 듣는 일. 이 노래들이 조금 부풀려지고 꾸며진 말들이더라도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듣다보면 이 노래들은 그의 이야기가 되었다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아득해진다.

       오늘. 토요일 밤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온 김동률을 찾아서 보고 있다. 토요일 밤이니깐. 오늘은 맥주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약간 긴장한 듯한 그의 라이브를 듣는다. 뭐랄까. 다행이다. 여전히 그의 노래들같은 그로 남아있어줘서. 깊은 짝사랑을 노래했던 그가 너무나 행복하다며 결혼을 해버렸다면 그가 부르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나 '취중진담'은 예전의 그를 추억하는 노래가 되어버렸을테니까. 당분간 결혼 생각은 없다는 그의 말이 고마운 건 팬으로써의 욕심이겠지. 하긴 그의 노래들엔 김동률만 담겨져 있는 게 아니니깐. 벌써 많은 누군가가 담겨져 있는 곡들이 많으니깐. 어떤 사람은 김동률 노래만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듣는 것조차 무척 힘들다고 한다. 다들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고, 듣고 있다는 거다. 다행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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