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틱틱붐 - 서른 살 케익의 촛불을 끄는 순간
    무대를보다 2007. 12. 10. 02:43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이야기인 셈이죠. 서른이 아직 먼 당신이, 서른을 코 앞에 둔 당신이, 그리고 서른을 훌쩍 지나온 당신이 겪게 되거나,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이야기예요. 제 이름은 조나단이예요. 그냥 존이라고 불러줘요. 제가 지금 제일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 틱틱, 붐. 째각째각, 쿵. 왜 이렇게 제 가슴이 초조하고 째각거리기만 하는지 아세요? 전 일주일 후면 서른이 됩니다. 그래요. 어쩌면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지 숫자 삼십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요. 어릴 때는 꿈꿨죠. 내 나이 서른이 되면, 근사한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그렇게 동경하는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내 작품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는 그런 서른의 모습이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나를 꼭 닮은 아이 하나쯤이 있는 그런 서른살이요. 그런데 지금 저는 형편없어요. 누추한 아파트에, 초조함 때문에 피아노 건반도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고 있고, 여자친구도 이제 이런 저의 모습에 점점 지쳐가는 듯 해요. 나도 이런 내가 질리거든요. 제대로 된 곡도 작곡하지 못하고, 생활을 위해서 끔찍한 식당 웨이터 일을 해 나가고, 테라스에 나가 대마초를 피워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나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내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건 꿈, 바로 이 녀석 하나예요. 언젠가는 저 화려한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내 노래를 울려 퍼지는 꿈, 내가 그렇듯 누군가 내 노래를 들고 위안이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꿈, 그리고 언젠가는 이 대마초 없이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이요.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힘이예요.

       이건 내 서른 살의 생일을 앞 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예요. 꿈을 포기하려고 한 순간도 있었지만 끝끝내 포기할 수도, 좌절할 수도 없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일곱 살의 꿈이 서른 살, 지금의 꿈으로 성장했듯 그때부터 함께 서로를 의지해왔던 친구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가 가진 세 종류의 구찌 벨트가 부럽긴 하지만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이 좋아요. 그 녀석이 꿈꾸는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구요. 그렇지만 세 가지 다른 구찌 벨트가 있고 엉덩이 온도에 맞게 시트가 따끈따끈하게 데워지는 BMW를 가지고 있는 내 친구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못난 남자친구지만, 그래서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지만 내 꿈을 믿어주고, 함께 꿈꿔주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믿어주는 여자친구를 사랑한답니다. 나도 정말이지 그녀가 최고의 무용수라고 생각해요. 누군든 그 곳이 어디든 믿음이 뚜렷하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걸 그녀는 내게 깨우쳐 주었죠. 내가 서른 개의 초 위로 큰 숨을 내쉬며 촛불들을 끄게 되는 서른 살 생일의 그 시간까지, 어떤 꿈들이 꺼지고, 어떤 꿈들은 꺼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뮤지컬 <틱틱붐>은 주인공 존의 나래이션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은 친절하게 무대가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꿈과 자신의 생각들과 자신의 감정들을 무대 앞에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자신의 꿈은 브로드웨이에 올릴 기막힌 곡들을 작곡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하고,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데 하나도 해낸 것이 없다고 불안함을 토로하기도 해요. 째각째각거리다가 어느순간에는 쿵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고. 이건 자신이 무척이나 초조하다는 증거라구요. 서른 살의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구요. 그리고 우리는 존의 대마초를 함께 들이마십니다.
      
       존이 친구들을 소개시켜줍니다. 일단 자신의 불알친구 마이클이요. 말끔한 양복에 깔끔한 쑥대머리를 한 마이클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예요. 얼마 전까지 함께 누추한 생활을 하며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그 꿈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잘 나가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존은 그를 자랑스러워해요. 그리고 여자친구 수잔이 있어요. 수잔은 무용수예요. 무용을 가르치고 있죠. 그녀는 존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언제나 무대를 꿈꾸며 초조해하는 불안한 그이를 걱정하다가 결국 함께 작은 바다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자로 제안을 해요. 그렇지만 존은 뉴욕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이예요. 존이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도, 존이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대도 모두 이 뉴욕 안에 있거든요. 뮤지컬 <틱틱붐>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예요.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렌트>를 만든 작곡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갔어요. 그런데 무대가 막이 오르고 얼마되지 않아 존이 무대 위에 서서 이야기하는 단어들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서른, 꿈.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두 단어요. 아, 또 서른에 앞둔, 꿈을 이루지 못한, 하지만 그것을 놓치지 않은 이야기구나. 세상에는 서른을 절망해하는 사람도, 이루지 못했지만 붙들고 살면서 언젠가는,이라며 불안해하는 사람도 정말 많구나.  그리고 100분동안 진행될 이 무대에서 나는 또 잔뜩 위안을 받고 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정말 저는 이 무대에서 잔뜩, 아주 듬뿍 위안을 받았어요. 이 무대의 주인공 세 사람은 정말 달라요. 존은 꿈을 붙들고 절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구요. 마이클은 꿈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부유한 삶을 택해요. 그리고 배우의 꿈을 포기한 자신에게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아요. 지금 이 삶이 내 삶이고, 이 삶을 즐기는 친구예요. 아, 나는 그의 당당함에 반했어요. 후회하지 않는 삶에 반했구요. 수잔은 사이가 소홀해진 존과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해요. 자신이 제안한 작은 바닷가에서 가정을 이루며 살자는 제안을 존이 거절했지만, 그리고 일 때문에 존과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지도 불안해하지도 않고, 그를 믿고 자신을 믿고 그들이 함께 꾸는 꿈을 믿으며 떠나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서른이 되면 이런 믿음이 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수잔이 그랬어요. 이 세 사람은 자신의 지금 삶이 누추하더라도 꿈을 버리고, 꿈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예요.

       뮤지컬 넘버들도 좋아요. 흥겹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구요. 배우들의 연기가 이 뮤지컬에서 정말 중요했는데 세 배우 모두 어찌나 잘 하던지요. 존은 100분동안 무대를 단 한번도 떠나지 않구요. 수잔과 마이클은 1인 다역을 연기하는데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최고였어요. 그리고 서른과 꿈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힘이 나고 위안이 되었어요. 지금은 세상을 뜬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니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그 스....티.....비 말이예요. 아, 정말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쏟아지는 거예요. 요즘 내가 정말 눈물이 많아졌구나 느끼면서요. 다행이예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거라서요.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지는 꿈들을 볼 수 있어서요. 후반부에 존이 마이클과 함께 해 온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아주 긴 나래이션과 노래를 부르는데요. 그 긴 나래이션을 듣고 있는데, 지금 달리고 있는 존의 모습이, 그 순간 존이 스쳐 지나가는 세상의 풍경이 머릿속 안에 새파랗게 펼쳐지는 거예요. 마치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상상을 하는 것처럼요. <틱틱붐>은 어쩌면 책을 읽는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이 1인칭 시점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이 책의 주제는 학창시절 제가 사전 귀퉁이에 늘 써두었던 글귀처럼 '꿈을 잃지 않으면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구요. 이 책은 특이하게 감미롭고 흥겨운 노래가 흐르기도 하구요. 짧은 율동이 곁들어지기도 하구요.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아요.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존처럼 꿈을 이루게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힘이 생겨나구요. 그리고 서른 개의 촛불을 온 힘을 모아 끈 존처럼 그 꿈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거예요. 인생은 길고 꿈은 영원하니까요. 아, 힘이 불끈불끈 납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틱틱붐. 더 이상 존은 초조해하지 않겠죠?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