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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 - 죽이고 싶을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줄게
    서재를쌓다 2007. 11. 17. 12:54

    조경란 지음/문학동네


        지난 낭독회에 갔을 때 <혀> 표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낭독회에 참석했던 어떤 분이 표지가 참 마음에 듣다고 하셨어요. 연주빛이며 보라빛들도 마음에 들고 그림도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제목과 달리 익살스런 그림이라면서요. 그러자 조경란 작가님께서 아, 그렇게 느끼셨나요, 저는 이 눈을 보고 너무 슬퍼보였는데, 라고 나즈막하게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이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요즘 읽을 때 불편한 띠지가 많은데 이 책은 띠지인 것 같은데 하나의 표지가 접힌 거예요. 그래서 접혀있는 표지종이를 쫙 펼치면 예상외의 그림이 펼쳐져요. 꼭 껴안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뜨거운 스튜 냄비 안에서 펄펄 뜨겁게 달구워지고 있고 슬픈 눈을 한 요리사는 마지막 향신료를 넣는 거예요. 코는 이 요리의 냄새를 잔뜩 들이 마시고 있는 듯 살아있구요. 이 책은 마지막 결말에 반전이라면 반전이랄 수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 이 접혀져 있는 표지 속의 그림이 힌트가 될 수도 있어요.

        작가님의 말씀대로 <혀>는 벼랑 끝까지 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혀>는 사랑이 끝난 남자와 여전히 그 사랑이 진행 중인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원은 그것을 요리로써 극복하려고 해요.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열었던 쿠킹 클래스를 접고 예전에 일했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요리를 만들어요. 이 이야기는 이별을 한 차가운 겨울 1월에서 시작해서 그를 위해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는 더운 여름 7월에 끝나요.

        1월에 그녀는 남자에게 버려지고, 2월에 그녀는 더이상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는 순간들을 견뎌요. 3월에 그녀는 남자와 남자의 새 여자를 위해서 요리를 하고, 4월에 그녀는 그래도 좋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다독여요. 5월에 그녀는 아끼던 개의 죽음과 마주하고, 6월에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 찬 남자의 새 여자의 부엌을 마주해요. 7월에 그녀는 남자에게 마지막 요리를 해 줘요. 영원히 잊지 못할.

        책 구석구석에는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는 요리들이 많아요. 먹어보지 못했지만 왠지 맛이 그려지는 그런 고급스런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들이요. 푸아그라, 캐비어, 우설 요리 등등. 그것들은 조경란의 손 끝에서 그저 씹어서 식도로 넘겨지는 음식이 아니라, 혀 끝에서 시간을 두고 음미해가면서 먹어 넘어야 할, 재료들 저마다 한 가지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사과가 사각거리면서 말을 건네고 거위의 간은 고통스럽게 노려보고 바질은 뚝뚝 눈물을 떨어뜨려요. 그리고 그것들이 작가의 손 끝에서 어우려져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아프고 슬프고 아린 요리 한 접시를 만들어내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혀 끝으로 음미해가며 맛있게 먹어 치우구요.

       이 책에서 사랑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달은 정원과 삼촌이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행위를 마주한 여자와 사랑하는 사람이 대롱대롱 줄에 의지해 세상을 등진 모습을 마주한 남자요. 어쩐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사랑이란 거요. 한 때는 보잘 것 없지만, 한 때는 우리에게 전부인 그거요. 왠지 혀 요리만큼 징글징글해져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극한의 행복과 극한의 슬픔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고 깨달은 어느 순간처럼요. 극한의 행복도 극한의 슬픔도 시간을 따라가다보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이 지나고 보면 분명한데 왠지 그 순간만큼은 그걸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찔해져요.

       빠르게 읽히고, 마지막에 무척이나 놀랬고, 입과 머리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소설이였어요. 읽으면서 내내 작가님이 차려주신 요리들로 배불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냉장고를 열어서 지금 있는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시작했어요. 냉동실에서 다진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꺼내고 마늘을 다지고 청량고추도 하나 잘게 썰었어요. 양파 하나도 가늘게 다진 후에 가스 불을 크게 올리고 냄비 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그것들을 달달 볶아요. 물에 카레가루를 풀고 그 물을 잘 볶은 재료위에 부어요. 찌찌찍. 맛있는 소리가 나요. 그리고 가끔씩 저어주면서 완성된 카레를 공기에 꾹꾹 눌러담은 밥을 접시 위에 공기모양 그대로 놓고 그 위에 잔뜩 뿌려요. 그리고 쓱쓱 비벼서 잘게 썬 깻잎과 함께 우걱우걱 씹어서 넘겼어요. 이번 요리는 소설 <혀>를 위한 요리니까 먹는 내내 소설의 이야기를 생각해요. 결국 벼랑 끝에 떨어진 정원과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가 겨우 올라와 한 발 내딛는 삼촌을요. 나는 정원이 잘 살아나가주기를 바랬는데. 최고의 요리들을 만들어내면서 행복하게 그 시간들을 극복해주길 바랬는데. 왠지 그렇게 되어버린 정원이가 가엽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가득했던 접시가 깨끗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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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13 - [서재를쌓다] - 조경란 작가님의 <혀> 낭독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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