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의 시간

from 서재를쌓다 2021. 1. 7. 20:27

 

 

    2020년 2월 27일 출간이니, 봄이 오고 있을 즈음 친구에게 선물해줬던 책이다. 책의 앞부분에 작가님의 사인이 '2020. 봄'이라고 적혀있다. 친구의 소설 선생님이고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보지도 않고 선물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무얼 읽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 생각이 났다. 친구는 당시 술술 잘 읽힌다는 후기를 전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적당한 때에 주문하려고 했는데 내 장바구니를 본 친구가 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래도 주려고 했다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새해를 앞둔 어느 날 친구의 깜짝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를 풀어보니 하얀색 스벅 다이어리와 책, 다정한 엽서가 있었다. 친구는 이렇게 썼다. "임신 기간이 너에게 어떤 시간이 될런지 궁금하다. 나는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 너에게도 소중한 시간이길, 평온하고 잔잔하고 행복한 시간이길 바랄게."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고 남편에게 이 책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책갈피 삼을 생각으로 꽂아두었던 터라 친구의 다정한 엽서도 함께 병실에 왔다.

 

    책은 예정에 없었던, 확실한 딩크족이었던 작가가 아기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짧은 일기와 같은 글이라 친구 말대로 술술 읽혔다. 임신을 확인하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먹덧을 하고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엄마가 되어가는 일상이 담겨 있다.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는지 옆사람과 이야기하고, 앞으로 더욱더 깊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다짐을 하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아가는 태어나자마자 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잘 회복해서 작가의 품으로 돌아왔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처음 아가를 안았을 때 벅차고 뭉클했을 엄마의 마음을 책을 읽으며 상상해봤다. 제일 좋았던 부분은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기로 한 작가의 출산 전날 풍경이었다.

 

    남은 하루는 특별한 계획 없이 좋아하던 식당에 가서 옆사람과 브런치를 먹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했다. 평일 낮이라 잔디밭이 한산했다.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늘막을 펴놓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우리 곁을 지나 과거로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내일이면 드디어 만나겠네" 라는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금세 들이닥칠 것처럼 가깝기도 하고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멀기도 했다.

   해가 기울 무렵 엄마가 전화했다. 병원 가기 전에 밥을 해먹이고 싶다는 얘기였다. 동생들도 일찍 퇴근할 거라고 했다.

   "북적북적하게 있다가 밥 먹고 가서 푹 자. 그럼 금방 내일이 될 거야."

   엄마는 내가 긴장하거나 무서워할까 봐 걱정했다.

   동생들과 나란히 앉아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며 큰소리고 웃었다. 내가 웃을 때마다 축복이는 힘차게 움직였다. 엄마가 해준 뜨끈한 밥과 국과 반찬을 푹푹 떠먹었다. 평소에도 마음껏 먹었지만 더욱 마음껏 먹었다. 동생들이 차례대로 배에 손을 얹으며 "축복아, 내일 만나자"하고 인사했다.

    집에 돌아와 며칠 전까지 퇴고하던 장편소설의 원고 파일을 열었다. 한 번만 더 보자, 하며 붙들고 있던 건데 출판사에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담당 편집자에게 메일을 썼다. 내일 아이를 낳으러 간다는 소식과 당분간 교정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자 부드러운 졸음이 몰려왔다.

- 164-166쪽

 

    아, 몽글몽글 부드러운 라떼를 단단하고 따뜻한 머그컵 온기를 그대로 느끼며 마시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