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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튼, 떡볶이
    서재를쌓다 2021. 1. 23. 13:00

     

     

        목요일 밤이었다. 열시 반부터 <윤희에게>가 방영된다고 했다. 가습기 물을 가득 채우고 안방 전등을 끄고 침대 스탠드를 켰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을 하는 둥 영화를 보는 둥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십 년도 더 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찔했다. 만약 그때 잘못되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당시에는 달달한 기억이었고 그후로도 얼마동안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른 상황으로 갔으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소름이 끼쳤다. 다행이었어,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젊은 시절 비슷한 일들이 꽤 있었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뭐가 그리 안달이 났을까, 뭐가 그리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을까 싶었다. 이십 년이 지난 후 지금을 생각하면 그때도 그러려나. 요조의 새 책 제목을 보고 목요일 밤 생각이 났다. 바로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제목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아무튼, 떡볶이>는 작년에 읽은 책인데 떡볶이를 좋아하며, 떡볶이를 먹으며 겪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적혀 있다. 담백하고 재미났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학교 앞에서 친구들이랑 먹었던 즉석떡볶이집 생각이 많이 났다. 셋 또는 넷이서 만원 남짓의 돈으로 엄청나게 맛있게 먹었었는데. 라면 사리와 떡, 오뎅을 열심히 건져 먹고 마지막에 먹는 볶음밥이 압권이었다. 밥과 조미김, 그리고 참기름. 적당히 만들어지는 누룽지. 학교 앞에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지만 엄청나게 맛난 맛을 자랑하는 칼국수집도 있었다. 한달에 하루 어려운 분들에게 음식을 공짜로 대접하는 착한 집이었는데, 거기 돈까스도 맛났다. 갑자기, 그 맛들 그립네.

     

        금요일에는 남편이 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 임신하고 비빔밥이 자주 땡긴다. 냉동실에 오래 묵혀둔 떡갈비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잘게 자르고, 심심하게 무쳐놓은 콩나물도 넣고, 참기름 살짝 두르고 볶은 느타리 버섯도 넣고, 냉장고에서 시들어가고 있던 한잎의 상추와 한잎의 깻잎, 바삭 구운 계란후라이에 고추장 한스푼, 깨 조금, 참기름 조금 넣고 비볐다. 톡이나 할까 김영하 편을 보면서 맛나게 먹었다. 신촌의 낮은 옥상 커피집에서 진행한 것 같았는데 주위 불빛들과 점점 짙어지는 저녁 어스름이 멋졌다.  인상적인 말들이 있어 캡쳐해두었다. 김영하의 말이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요. 그게 저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자기의 기분, 감정,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꾸준히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이것도 김영하의 말.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는 여행을 못하셔서 어떻게 하냐는 김이나의 말에, "산책과 여행이 뇌에 큰 자극을 준대요. 혹시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2020년이 벌써 아홉 달이 지나갔는데 돌아보면 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잖아요? 그냥 텅 비어 있는 느낌. 그게 뇌의 활동이 장소 이동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래요. 우리 뇌는 장소가 바뀔 때, 또는 새로운 장소에 갈 때 크게 활성화가 된대요. 그래서 영화도 극장에서 본 게 오래 기억에 남고, 음식도 식당에서 먹은 게 장소와 같이 갔던 사람들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데, 코로나19 시대에는 늘 같은 데만 왔다갔다하니까 뇌가 게을러져서..."

     

        사진의 떡볶이는 고래바 떡볶이. 동생이 추천해줘서 주문해 먹었다. 집에 있는 재료를 듬뿍 넣었다. 비엔나 소세지, 양배추, 당근, 양파, 느타리 버섯, 대파, 라면 사리 반개, 삶은 달걀 하나. 쌀떡인데 포장지에 적혀 있는 대로 쫄깃하고 매콤하다. 대만족. 이제 십만원치가 된 서점 장바구니에는 요조의 새 책이 있고, 친구의 레시피를 따라 한 접시의 바다를 만드는 내용의 동화책도 있다. SNS에서 작년에 출간된 좋은 책으로 여러 사람들이 꼽은 '사람'에 관한 책도 있고,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을 담은 평이 아주 좋았던 책도 있다. 주말이다. 재택을 하든 출근을 하든 주말은 소중하고 소중하다. 탕이는 이번주부터 태동을 시작했다. 뱃속이 무언가가 꼬물거린다. 신기하게. 자기 여기 있는 거 잊지 말라는 듯. 오늘로 함께 한지 20주차가 되었다. 천천히 반환점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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