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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으로부터,
    서재를쌓다 2021. 4. 28. 00:54

     

      하와이에서 작은 커피집을 찾아갔더랬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커피집이었다. 돌아가서도 이곳을 추억하며 마실 만한 원두를 사고 싶었는데 관광지에 있는 유명한 커피집 원두는 사고싶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평이 좋은 적당한 곳이 있었다. 가게 안에 앉아서 한 잔 마셔보고 싶었는데 가게가 워낙 작았고 테이블도 꽉 차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 커피 하나씩을 골랐고 한국에 가지고 갈 원두도 하나 골랐다. 가격이 꽤 나가는 원두였다. 취향별로 하나씩 고른 커피는 맛있었다. 덕분에 원두 맛이 더 기대가 됐다. 원두를 사니 작은 칩을 하나 줬는데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이라고 했다. 당일에는 사용불가란다. 어쩌지 우린 내일 떠나는데. 사정을 말할까 하다 내일 공항에 가기 전에 들르기로 했다. 내일의 계획이 하나 더 생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들떴다. 맛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하와이를 떠나자. 

     

      <시선으로부터,>를 여행 가기 전에 읽었더라면 나는 갓 나온 따끈달콤한 도넛, 특별한 커피 한 잔, 두터운 팬케이크 한 접시, 이런 책 속에 나온 소소한 행복을 찾아 동분서주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어머니(누군가에겐 할머니)의 십 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에 모이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제사는 조금 특별하다. 전 부치고 생선을 올리는 제사가 아니라 어머니(할머니)의 제사상에 올릴 자신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각자 하와이를 여행하며 찾아오는 거다. 하와이는 어머니(할머니)의 어떤 사연이 깃든 땅이다. 가족들은 어머니(할머니)를 위한 소소하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와 제사상에 올린다. 그건 어머니와 할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짧은 여행을 하며 가족들은 마음 속 무언가를 찾기도 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위안받기도 한다. 제목의 '시선'은 이들의 어머니이다. 할머니이기도 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건 대단한 풍광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의외로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작은 무엇이었다. 다음날 공항으로 떠나기 전 다시 들른 커피집에서 우리는 무료커피쿠폰 한 장을 썼다.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출근 중인 듯한 손님이 들어오더니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텀블러를 내밀었다.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받은 손님은 카운터에 비치된 우유를 넣기 시작했는데 우유가 넘칠 정도로 아주 듬뿍 넣었다. (저렇게 많이 넣을거면 라떼를 시키지 않고 생각했다) 우유가 넘치자 조금 마시고 우유를 더 넣은 뒤에 넘친 우유를 닦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그래서 어느 출근길에는 그를 따라 스타벅스에서 우유를 잔뜩 넣은 텀블러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다. 맛은 그저그랬지만. 하와이에서 사온 원두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동생도 인정했다. 다시 가서 살 수 없으니 마지막 한 잔까지 정성스레 내려 감사히 마셨다. 여행하는 동안 보았던 소소한 풍경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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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무지개네. 미니미니해."

      지수의 말에 체이스가 역시 너무 작나, 하고 지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지수는 그 무지개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도망가지 않는 무지개가 거기 있었다. 지수의 그다지 최신형이 아닌 휴대폰으로도 잘 찍혔다. 두 사람은 신나서 찍고 찍고 또 찍었다. 백 장도 넘게 찍은 것 같았다. 처음엔 무지개에 집중하다가 나중엔 좀 셀피 파티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웠다. 

      "이제 됐어?"

      "응. 큰 화면으로 봐야 알겠지만 이중에 하나는 제대로 찍혔겠지."

      "숙제 끝냈네?"

      "끝내버렸어. 가뿐하다."

    -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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