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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스앤더시티 - 캐리의 남자들
    티비를보다 2007. 8. 15. 21:12

       요즘 온스타일에서 섹스앤시티 더 무비라고. 각 캐릭터별로 편집해서 방송해주더라. 미란다편만 빼고 다 봤는데, 그녀들을 거쳐간 남자들이 쫘악 정리가 되더라. 어제 캐리편을 봤다. 캐리를 거쳐간 남자들 가운데 캐리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고 아프게 한 네 남자들에 대한 구절구절. 빅, 에이든, 버거, 알렉산더.


       사실 캐리의 남자는 에서 시작해서 빅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리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근사한 남자였지. 외모도 훌륭하고, 부자였고, 매너도 좋았지. 헤어진 후에 26살 나타샤와 결혼을 하면서 캐리의 마음을 찢어놓았었지만, 빅의 마음 속에도 캐리는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 다른 남자와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던 캐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긴 했지만 (그래서 캐리가 에이든과 헤어지게 됐었잖아. 이때는 정말 화났었다구!) 두 사람이 천생연분인 건 틀림없었다. 늘 사랑과 우정사이를 오락가락하던 두 사람. 6시즌 마지막편에 파리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순간, 짠하고 빅이 나타났을 때는 정말 백마탄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니까. 때로 아빠같이, 때로는 애인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빅은 키다리 아저씨같은 사람.

       하지만 빅은 캐리를 많이 힘들게 했다. 늘 자기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사귀고 있는 중에도 캐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잖아. 파리로 오랫동안 출장갈 때도 캐리한테는 상의도 않고, 자기 가족을 소개시켜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결혼을 한다 말하고, 또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이혼하겠다고 너를 잊을 수 없다 말하고. 캐리 집에서 잘 자지 않았던 게 빅이였지? 아마. 아무튼 그럴때마다 빅을 많이 사랑하는 캐리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는데. 늘 그렇게 빅에게 사랑이란 이유로 당하기만 하는 캐리가 불쌍해서 빅의 약혼식 날, 캐리가 빅에게서 뒤돌아 나오면서 했던 나레이션은 정말 멋졌다. 뭐였더라? 찾아봐야지.

    내가 빅을 길들이지 못했던 거 아니라, 빅이 나를 길들이지 못한 것이다.
    길들일 수 없는 여자들도 있다.
    그들은 자유롭게 달릴 것이다.
    자신들과 미친듯이 달려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그 에피소드에 캐리와 친구들이 말했던 허블의 영화, 로버트 레드포드의 <추억>이라는 영화라네. 한번 찾아서 봐야지.


       섹스앤시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빅보다는 에이든이 더 좋았다. 빅은 너무 중후한 중년의 느낌이였고 나는 그가 정말 캐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이든은 달랐다. 정말 캐리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결혼해 달라고 조르는 것도, 동거를 시작한 것도 모두 그가 캐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리가 내가 응원했던 에이든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나는 캐리가 바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몇 번 반복해서 에이든을 보면서 나는 내 생각을 틀렸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에이든은 빅보다 어렸고, 캐리보다 여렸어. 사랑했지만, 결혼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남자. 이제 나는 캐리가 에이든과 헤어진 건 정말 잘 한 일이였다고 생각해. 그리고 에이든보다 빅이 더 낫다고.
       그래도 에이든은 내게 있어 뭐랄까 이십대의 사랑이랄까. 늘 함께 있고 싶고, 그 사람에게 내가 늘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이 필요한 건 뭐든지 해 주고 싶은 사람. 넌 날 배신했잖아,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아직도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표현하는 사람. 누구나 어릴 때 이런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이런 사랑이 되기도 하지. 돌아보면 조금은 무모하고 철없었던 행동들때문에 살짝 민망해지는, 하지만 결코 후회는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에이든이다.
     
       에피소드들을 더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보니까 빠뜨린 것이 있더라. 에이든과의 사랑이야기편이 끝나갈 무렵, 그래도 캐리의 마음을 한동안 커다랗게 차지했던 사람인데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조금 머리카락이 더 자란 에이든이 나왔다. 캐리가 결혼해주지 않자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떠난 에이든은 역시 잠시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였어. 늘 누군가를 사귀는 사람이 주위에 있지 않나? 에이든이 그런 사람들인 거 같다. 우연히 캐리와 마주친 에이든의 배에는 아기가 있었다. 에이든의 아기.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젊은 날의 사랑을 마주칠 수 있겠지? 그때 나는 캐리의 모습일까? 에이든의 모습일까?  
     

    버거.
    콜린 파렐을 닮은 버거.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고한 남자. 캐리가 만난 남자들 가운데 가장 소심하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남자.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작게 만든 남자였어. 처음에는 정말 캐리에게 정말 잘 맞는 남자였잖아. 말도 잘 통하고, 직업도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길거리에 버려진 카드를 줍는 사람. (이 에피소드에서 캐리가 먹던 맥도날드 빅 쉐이크가 너무나 맛나보여 당장 사먹었는데, 맛이 없더라. 캐리가 먹고있어서 맛있어 보였던 걸까?) 아마 개구리 소리를 켜 놔야 잠이 드는 사람이였지?
        캐리가 잘 나가기 시작하고, 자신의 상황은 힘들어지자 그걸 극복하지 못해 못난 모습 많이 보인 남자. 사실 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버거는 너무나 소심했다고. 너무나 이기적이였고. 포스트잇 이별은 너무 하잖아. 'I'm sorry. I can't. Don't hate me' 를 붙여놓고 여자를 떠나는 남자는 정말.

        사랑하는 순간도 중요하지만, 이별하는 순간도 중요한건데. 버거가 포스트 잇을 붙이고 이별을 고한 날, 캐리와 친구들이 모여서 밤새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구해 길거리에서 피워대다가 경찰한테 붙잡혀갈뻔 했을 때 경찰도 봐줬었지. 포스트잇으로 헤어진 여자라니깐.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버거. 잘 살고 있니? 포스트잇 사랑 - 나는 한때 캐리의 남자였다, 라고 책 한권 내지 그러니. 


       나는 알렉산더가 버거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캐리의 남자들을 빅, 에이든 부류가 있다면 버거, 알렉산더 부류가 있다 이 말이지. 빅, 에이든 부류는 헤어진 뒤에도 가끔씩 그립고 생각나서 애뜻한 부류라면 버거, 알렉산더는 그런 순간이 떠올라고 사랑했던 나를 떠올리며 추억하지 그 사람에 대한 애뜻한 추억따위는 없을 것 같은 부류다.
       사실 알렉산더랑 캐리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였다. 처음에 딱 보기에도 그래 보였잖아. 알렉산더는 일단 나이가 너무 많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이였다. 예술가여서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면이 있다고 쳐도,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 캐리 친구들 커플을 초대해서 식사하는 에피소드를 보자. 친구들은 그 때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서 자위기구 이야기를 했다. 그게 캐리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그게 캐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그는 불편해하고 불쾌해했다. 그래, 아침을 직접 차려주고, 좋은 드레스에 근사한 집, 피아노 연주도 직접 해주면서 사랑을 속삭였지. 좋았다. 사만다의 말처럼 너무 클래식하지만 여자들은 가끔 그런 사랑을 꿈꾸잖아.
       알렉산더랑 사귈 때가 캐리가 많이 변했다. 수동적인 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알렉산더가 같이 파리로 가자고 하면서 캐리는 캐리이기를 포기했다. 일도 버리고,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도 멀리하고 알렉산더, 그 남자 하나만을 위해서 파리로 갔다. 철저한 뉴요커 캐리가 알렉산더 뒤꽁무리를 따라 파리에 살러 간다니. 그리고 캐리는 점점 외로워졌다. 이때부터 알렉산더는 변하기 시작했다. 일을 버리고서 따라오라고 했던 캐리와는 달리, 점점 일에 집착하면서 캐리를 보지 못하는 알렉산더. 야망이 큰 남자. 로맨티스트이긴 하지만 이기적인 로맨티스트.
       캐리가 자신의 이니셜목걸이를 잃어버리고, 그걸 찾게 되면서 캐리는 진짜 캐리로 돌아간다. 뉴욕을 사랑하는 캐리, 일을 사랑하는 캐리, 친구들을 사랑하는 캐리. 그런 캐리로 돌아오자 짜잔, 하고 캐리의 남자 빅이 나타나지. 이제 진정한 캐리로 돌아온거지. 마지막 캐리가 브런치 모임에 짜잔하고 나타났을 때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단 말이지. 히.
       마지막 나레이션도 좋았다. 섹스앤시티에서 캐리의 나레이션은 정말 좋아서 다 적어놓고 싶다. 어떤 에피소드에선지 모르겠는데, 캐리가 누군가와 헤어지고 이런 나레이션 한 적이 있는데, '사랑이 끝나고 가면, 그 사랑은 어디로 가 버리는 걸까?' 였나? 확실하지 않은데, 이 나레이션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 나레이션.

    그날 저녁 난 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새롭고 이국적인 것에 눈을 뜨게 하는 관계.
    그리고 낡고 익숙한 관계. 많은 의문을 갖게 하는 관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끄는 관계. 처음 시작한 곳에서 멀리 나아가게 하는 관계.
    그리고 모든 걸 소생시키는 관계.
    하지만 가장 흥분되고 도전적이고 중요한 관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만일 사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면, 정말 근사한 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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