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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to 7
    극장에가다 2020. 2. 13. 22:33

     

       어느 주말에 <5 to 7>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소개 프로그램 중 SBS를 제일 좋아하는데, 영화 제목을 제일 마지막에 공개하는 '이 영화 제목이 뭐지?', 흥행하지 못한 명작을 소개하는 '미안하다 몰라봐서' 코너가 있기 때문에. '미안하다 몰라봐서' 코너에 소개된 영화였을 거다.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불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이 근사해서 혹시 있을까 하고 왓챠를 찾아봤다. 있었다. 한낮에 소파에 누워 혼자 봤다. 얼마 전 친구는 뉴욕을 짧은 기간 여행했는데, 그곳의 공원들이 기억에 남았단다. 도심 곳곳에 있었던 공원들. 여름 즈음에 갔다면 분명 초록초록했을 거라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영화에 친구가 보았다던 뉴욕의 공원이 나왔다. 특히 벤치. 벤치의 등받이 부분에 문장들을 새긴 팻말이 있었는데, 그 문장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혹은 한 가족의 희망과 사랑, 일생이 담겨 있었다. 영화는 그 팻말을 중간중간 보여준다. 아직 어떤 문장도 담기지 못한 빈 팻말도 있었다. 거기에 남여 주인공의 인생이 새겨진다면 어떤 문장일지 생각해봤다. 함께 새겨지지는 못할 거다. 잡시동안 만난 서로의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평생을 함께 한 가족에 대한 인사를 남기게 될까. 영화에는 친구가 보고 오지 못한 푸르른 뉴욕의 녹음도 보였다. 뉴욕의 풍경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남자주인공은 작가지망생인데, 외톨이다. 작가지망생이니까, 외톨이니까 집에서 글을 쓴다. 그리고 출판사와 잡지사에 그 글들을 보낸다. 그들은 꾸준히 거절의 편지를 보내온다.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에... 같은 형식적인 글들. 남자주인공은 그 편지들을 작업실이자 집인 자신의 공간 한 벽면에 붙여둔다. 멀리서 보면 근사한 인테리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거절과 실망과 좌절의 시간들이다. 그러다 오른쪽 끝에 거절이 아닌 긍정의 편지가 붙여진다. 작가가 된 것이다. 5시부터 7시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정이 있는 여자와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글을 통 쓰지 못하다가 실연을 겪게 되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책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겪은 시간들을 글로 옮겼을 거다. 여자주인공은 길을 걷다 그의 새 책이 서점의 메인 매대에 놓인 걸 본다. 남자주인공 벽면의 제일 오른쪽에 붙여진 편지처럼 그녀는 웃어보인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글을 써서, 성공하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런 성공의 위치에 오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장면을 떠올리다가 다른 영화의 어떤 장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타인의 삶>의 마지막 장면. 도청을 하면서 타인의 삶에 빠져들었던 비밀경찰이 결국 그를 도와주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서점의 매대에서 그 타인의 책을 발견하는 장면. 그 첫장에 자신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 한때의 비밀경찰. 그도 영화 <5 to 7> 벽면 오른쪽 편지와 같은 미소를 짓는다. 작가가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그런 미소를 선물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비밀경찰과 타인은 뉴욕 벤치에 각각 어떤 문장들을 새길 수 있을까. 또 내가 새기게 될 문장은 어떤 것일까. 흠. 왼쪽의 수많은 편지들 말고 오른쪽 편지와 같은 문장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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