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독

from 티비를보다 2020. 1. 3. 10:36

 

     
   금요일 밤이니 한 잔 해야했다. 간만에 의왕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후기가 좋아 찜해두었던 시장 안 통닭집에 갔다. 오래 장사를 했다는 평에 비해 인테리어가 세련되어서 주문하고서 맛을 의심했었다. 일단 생맥 맛은 합격. 혼자서 일을 하는 직원도 친절하진 않지만,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서비스 과자 맛도 좋았다. 통닭은 반반을 시켰는데 후라이드에서 카레맛이 은근하게 났다. 좋아하는 광화문의 통닭집도 반죽에 카레가루를 쓰는데. 의왕역의 이곳도 맛이 괜찮았다. 오백 두 잔을 신나게 마시고 통닭이 조금 남아 포장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도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뜨끈뜨끈한 오뎅탕을 먹을 참으로 근처 이자카야에 갔다. 옆 테이블이 무척 시끄러워서 괜히 왔다 싶었는데, 기본 안주가 줄줄이 나왔다. 괜찮은 거 같다 싶었을 때 나온 오뎅탕도 푸짐했다. 결국 배가 불러 맥주 한잔만 마시고 포장해서 나왔지만 1차로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기본 안주로 나온 방울 토마토도 휴지에 고이 싸 집에 가지고 왔다. 집에 와 3차를 하자며 동네 편의점에서 산 만원짜리 까바를 땄지만 오백을 세 잔이나 마시고 월화수목금요일을 보낸 마흔의 나는 곧 골아떨어졌다.

 

   점점 기상시간이 늦어지고는 있지만 아침 여섯시가 마지노선인 평일의 나 덕분에 주말의 나도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주말이면 늦잠을 늘어지게 자는 옆사람을 두고 거실로 나왔다. 어젯밤 시도했던 3차의 흔적을 치우고 티비를 켰다. 서현진이 나오는 드라마 재방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에서 꽤 괜찮다는 말을 들은 참이어서 한번 봐볼까 하는 마음으로 소파에 누웠다. 그러다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 결국 정자세로 드라마 정주행을 했다. 그러는 동안 옆사람이 일어났고, 광고시간에 둘이서 후다닥 밥을 차려 먹었다. 그러고 옆사람은 요새 한창 빠져있는 <스토브리그> 재방을 보러 방에 들어갔다. 그 토요일 오전에 나는 이 드라마를 4회까지 보았는데 (아직까지 1회 초반을 못 보고 있다 ㅠ) 매회 울었다. 매회 감동 포인트가 있었다. 이 놈의 세상,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현진이 힘을 낼 때! 마음 깊은 속에서 우러난 응원을 했더랬다. 라미란은 매회 얼마나 멋진 여성이던지. 그야말로 츤데레. 라미란의 이 대사가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난다. 자기는 낙하산이라도 실력이 뛰어나다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본의 게임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마리오 게임을 개발해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한 사람이 있다고. 외삼촌 빽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실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지도 않지만) '소문난 낙하산' 서현진이 포기하지 않고 방학기간 동안 매일 출근을 하며 개학 준비를 하고, 두려운 마음을 움켜잡고 아무도 없는 교단 앞에 서 있었을 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 결국 누군가가 알아봐 줄 사람. 고하늘 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