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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다리
    모퉁이다방 2017. 7. 26. 23:51


     

      오후에 졸리기도 해 이동진 라디오를 팟캐스트로 들었다. 김소영 아나운서가 나오는 코너였는데, 3부를 시작하면서 김소영 아나운서가 어떤 글을 읽기 시작했다. 더이상 만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사람은 그 말들을 그 사람의 유언이라고 표현했다.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인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유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나니, 그 평범했던 말들이 특별해졌다. 이제는 더이상 만나지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나도 떠올려봤지만, 쉽게 떠올려지지 않았다. 아마 더 오래 골몰해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쓰나 하고 끝까지 귀를 기울였는데, 박준 시인 산문집 속 글이었다. 얼마 전 고민하다 장바구니에 넣어뒀는데, 곧 바구니를 비워야 할 것 같다. 바구니에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8권도 있다.

       삼 주전에 우리는 함께 공항에 있었는데, 오늘은 합정에 있었다. 느끼한 피자와 맥앤치즈를 먹고, 이보다 더 느끼할 수 없다며 매콤한 국물을 찾아 인근을 헤맸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투다리에 들어갔다. 보경이는 자신을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중간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많이 좋아하고 힘을 많이 쏟기 때문에, 서운한 것이 많다고 했다. 나는 나이가 조금 더 들면 그 대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좋아함의 폭도 깊이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해봤는데, 그건 꼰대 같은 말이었다. 지금의 나도 그랬다. 많이 좋아하고, 힘을 많이 쏟고, 서운해하고, 질투도 하고. 단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일 뿐. 애써 상처받지 않은 척 할 뿐. 그러니 보경아, 많이 좋아하고 많이 서운해하자. 어쩔 수 없네. 나이가 좀더 들어도. 수박을 딱 반으로 기분좋게 갈라 놓은 것 같은 수요일 밤, 우리는 박준 산문집을 읽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나저나 나는 투다리가 왜 이리 좋을까. 그리고 투다리는 왜 이리 사라지고 있을까. 투다리여, 부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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