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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듀, 마르떼스
    여행을가다 2017. 7. 5. 00:07


       바르셀로나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비행좌석은 중간자리라 불편했다. 양옆으로 앉은 서양인들은 열심히 핸드폰과 노트북을 했다. 나눠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샀더니 캐리어가 꽉 찼다. 무게에 맞추고 나머지는 에코백에 나눠 들었더니 엄청났다. 환승까지 해야 하는 터라 할 수 없이 배낭을 샀다. 커다란 걸로 샀는데, 짐을 다 넣고 나니 정말 내 상체만 했다. 보안 검색을 하는데, 나만 신발을 벗으라고 해서 기분이 상했는데, 내 뒤에 있는 샌들을 신은 사람들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흠. 벗은 발들을 보니 괜찮아졌다. 짐이 너무 무거워 공항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동생이 친구 선물로 부탁한 향수를 하나 사고, 게이트가 확정될 때까지 마지막 맥주를 마셨다. 게이트가 확정되자 근처에 앉아 엽서를 썼다. 우표는 붙였지만 보낼 수는 없는, 열 두 밤을 이곳에서 보낸 나에게로 보낸 엽서였다. '잘 했고, 더욱더 잘 하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암스테르담 비행기에 타 상체만한 배낭을 올리는데, 다정한 한국인이 도와줬다. 고맙습니다. 오른쪽의 서양여자는 이륙하자마자 가디건을 챙겨입고 추운 티를 계속 냈으며, (결국 내 자리 에어컨을 꺼 줄수 있냐고 물었다) 왼쪽의 서양남자는 긴 다리가 펴지지 않아 간신히 구겨넣은 채 노트북 작업을 했다. 유명한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기내식으로 나왔고, 왼쪽 남자는 다이어트 콜라를, 나는 커피를 마셨다. 오른쪽 여자는 콜라를 달라고 하고 먹지 않고 가지고 갔다. 샌드위치도 반쪽만 먹고 싸가지고 갔다.

       스키폴 공항은 성희 말대로 좋더라. 환승시간이 짧고, 전 비행기가 늦게 출발한 바람에 구경할 틈이 없었다. 네덜란드 맥주 생으로 마셔봐야 하는데. 출국도장을 찍어주는 남자가 무척이나 친절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봐주고, 캄사합니다, 라고 인사도 해줬다. 어쩐지 이런 친절 하나로 이 나라가 궁금해진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옆으로 외국인 아저씨가 와서 앉아 책을 펼치고 숫자 놀이에 열중하신다. 옆에 앉은 또다른 외국인 아저씨에게는 술냄새가 났다. 음악을 크게 듣고 계셨다. 출발시간이 임박해서 탑승을 시작했는데, 미리 좌석을 지정한 덕분에 좋은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 뒤쪽 화장실 근처에 있는 두자리 좌석인데, 중간에 있어 나는 왼쪽 복도를 이용하면 되고, 오른쪽 사람은 오른쪽 복도를 이용하면 된다. 역시 상체만한 배낭과 막내를 위한 감자칩 페인트통을 올려놓고 누가 옆에 앉을지 안 그런 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판타지였다) 외국인 남자가 앉았다. 그때 얼굴을 마주쳤을 때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진정으로 중간중간 말을 걸고 싶었는데, 비빔밥을 시켰을 때 참기름을 넣지 않고 먹으려고 하길래 참기름팩을 찾아 디스, 라고 건네주고 땡큐, 라는 말을 들은 게 다였다. 한국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그 남자와 나는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는데, 둘 다 같은 메뉴였다. 남자는 맥주를 한캔 마셨고, (드라이디라는 라벨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나는 한 캔을 더 마셨다. 둘다 맥스였다. 승무원이 입국신고서를 나눠주는데, 남자가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냥 말을 걸지 말자, 싶었다. 남자와 나는 나란히 앉아 10시간 동안 먹고, 자고, 마시고, 영화보고, 먹고, 자고, 마시고 영화보고를 반복했다. 아, 이륙 직전에 방송이 세 번 나왔다. 지금 한 사람의 승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 승객의 짐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륙합니다. 그 사람은 어찌되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상하게도, 뭔가 남일 같지 않았다.

       착륙 즈음, 그냥 이렇게 내려 버리면 아쉬울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생긴 아주 소량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지하게 단단한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말을 하려는 찰나, 옆을 보니 남자가 눈을 감고 있다. 1차 실패. 남자가 모니터 화면을 껐다. 나도 껐다. 그리고 옆을 보고 말을 건넸다. 2차에 성공. 일본으로 가세요? 처음부터 착해 보였던 남자의 표정은 기뻐 보였고, 네, 라고 말했다. 왜 기뻤는지는 그 뒤 짧디 짧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스웨덴 사람이고 스웨덴에서 세 번의 환승을 해서 오사카로 가는데, 고베가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 세상에, 환승 세번이라니. 와이프가 일본사람이란다. 아, 힘들겠어요. 그렇다고 한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더듬더듬, 와따시모 벤쿄우 시마시따. 순간 남자가 당황했다. 아무튼 남자는 한국에 한번도 와본 적이 없고, 언젠가 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러길 바란다고 했다. 4시간을 더 기다려 환승을 해야 하는 남자와 헤어지며, 사요나라, 라고 말했다. 그도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더니, 사요나라, 라고 말해줬다. 나는 다시 상체만한 배낭을 들춰매고 감자칩 페인트통을 들고 (어떤 사람은 포테이토? 라며 신기하게 물어봤다), 에코백 하나를 또 들고, 엄청나게 무거운 캐리어를 찾아서, 와인과 까바 두 병을 샀지만 신고하지 않고 무사 통과했다. 보경이가 마중을 나와 함께 깐풍기와 백짬뽕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헤어졌다. 고마운 보경이는 지난 열 두 밤동안 자신도 나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해줬다.

       여행이 끝났고, 어마어마했던 짐도 정리했고, (정리하니 별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무거웠을까) 빨래도 돌린 뒤 널었다. 소윤이의 편지가 와 있어 폭풍 감동을 했다. 이렇게 사려깊은 소노스케라니. 내일 회사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들을 포장하고, 동생이 싸인까지 받아놓은 스페인 책을 보다 잠들 거다. 내일의 출근이 무지하게 걱정이 되지만, 별일 없겠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혼자서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었던 때를 추억할테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준비해나가겠지. 영어를 꼭 공부하고 싶은데, 이 결심과 노력이 지속적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화를 보고, 불광천을 걷고, 책을 읽어나가는 일상을 즐겁게 잘 해 나갈 것이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여행은 일상을 잘 보내기 위한 작지만 큰 통로라는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 바르셀로나의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게 되는 차도의 풍경들. 이건 사진으로 찍을 수가 없으니까, 내 마음 속에만 있다. 그 풍경은 정말 쨍하고, 반짝반짝 빛난다. 그 순간들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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