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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 저녁은 포장해온 동네 병천순대에 칭다오 캔맥주
    모퉁이다방 2017. 6. 6. 20:18










       월요일에 만난 남희 언니는 봄에 다녀온 핀란드 여행 이야기를 해줬다. 일년동안 정말정말 일만 했던 언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물었다. 언니, 카모메 식당 거기 다녀왔어요? 응, 금령아, 다녀왔어. 언니는 항상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이름을 꼬박꼬박 불러준다. 언니는 헬싱키에서 카모메 식당의 촬영지도 다녀오고,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도 보고, 그 감독이 운영하는 바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전도연과 공유가 나왔던 영화 <남과 여> 촬영지와 비슷한 숲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도 머물렀다고 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창밖의 설원 풍경을 보면서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주인 아저씨가 길을 만들기 위해 썰매를 끌러 가는 길에 동참하는 일. 언니는 이곳을 일부러 찾아 들어갔고, 진정한 힐링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친구의 지인 결혼식에 다녀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간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아무리 특이한 경험이라 생각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친구랑 간만에 만났고, 간만에 함께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더웠지만, 가끔 걷기에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친구는 탄수화물과 술을 끊고 한달만에 살을 4키로 뺐다고 했다. 나도 살 빼야 하는데 생각했다. 친구는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밀랍초를 두 개 샀다. 하나씩 태워보자며 하나를 선물해줬다. 이자카야에서 꼬치를 먹었는데 맥주를 마시기 전에는 가게의 올드한 7080 음악들이 그렇게 신경이 쓰이더니 맥주를 한두잔 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검색을 해서 근처 엘피바에 가서 음악을 더 듣다 왔다.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김영하의 어떤 말을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보경이를 만났다. 우리는 몇 년 전에 여기서 샤브샤브를 오랜시간에 걸쳐 먹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보경이는 영종도에 사는데, 늘 내가 사는 근처까지 나와준다. 아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힘든 걸 힘들다고 꾸미지 않고 고스란히 말할 수 있는 우리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경이에게 이런 휴가가 생긴다면 어딜 가겠어? 라고 물었는데, 보경이는 고민도 하지 않고 피렌체라고 말했다.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란다. 나는 덕분에 피렌체가 궁금해져 언젠가 피렌체를 꼭 가보자고 결심했다. 보경이는 포스투갈 여행 때 공항에서 배웅과 환대를 해주며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같이 밥을 먹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보경이랑 헤어지고 집까지 걸어오는데 미세먼지 없는 날의 공기가 무척 맑아 걸을 맛이 났다. 

       나는 가끔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이 부럽고, 겁이 나고, 두렵기도 했지만,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떠날 수 있고, 또 혼자 떠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많을 거라고 매일매일 되새기고 있다. 남희언니는 핸드폰 사진 폴더를 열어 산타클로스와 함께 찍은 삼만원이 넘는 사진 한 장과, <남과 여> 촬영지를 닮은 드넓은 설원 위 썰매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계속 생각이 난다. 내가 언니는 숙소 욕심 없어요? 라고 물었을 때, 있어, 금령아, 로 시작하며 해주던 이야기들도. 언니와 보경이가 추천해준 책을 오늘 주문했다.


    D-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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