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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월의 삿포로, 둘째날 오후
    여행을가다 2016. 12. 14. 22:45















       홋카이도 대학에 갔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로 유명한 윌리엄 클라크 박사를 초빙한 대학. 역에서 좀 걸어야 한다기에, 이미 너무 많이 걸었기에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가길 잘했다. 걸어보니 그리 멀지 않았고, 학교 건물과 나무들 뿐이었는데, 그게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캔맥주를 샀다. 교내에서 마셔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무들 사이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한 캔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훅하고 시야에 들어왔다. 화장실이 급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건물 안이 고요했다. 유명한 플라타너스 길을 보기 위해 걸어가다, 학교 식당 건물이 있길래 들어가서 메뉴 구경을 하고 나왔다. 배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먹어보는 건데.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왔던 전갱이 튀김이 반찬으로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학교의 일부만 봤는데도, 정말 넓더라. 자전거 타고 다니는 활기찬 아이들을 보자, 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말했더니, 친구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지금이 더 좋다,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이 대학에 다니는 나를 상상해봤다. 농업으로 유명한 대학이니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겠지. 무슨 공부가 좋을까?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하교를 하고. 자전거 위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상상해봤다. 엄청나게 청량하고, 시원할 거야. 교내식당에서 전갱이 튀김을 먹고, 계단에서 친구들과 무리지어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장난치고, 시원한 나무 아래서 커피도 마시고. 볕이 좋은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해가 지는 광경을 누군가와 함께 보는. 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데, 하는 후회로 상상은 마무리-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잎이 무성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서울에서부터 가지고 온 오래된 돗자리를 깔았다. 풀밭 위의 초록색 돗자리. 핸드폰으로 음악을 낮게 틀고, 맥주 캔을 조심스럽게 땄다. 친구가 신청곡을 말하면 찾아서 틀었다. 최백호의 노래와 김윤아의 노래를 번갈아가며 들었다. 이 고요한 시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둘다 여기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커다란 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빙빙 맴돌아서 잔뜩 겁을 먹었더랬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더니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친구가 맥주 한 캔 더 사올걸 아쉽다고 했다. 이제 오도리 공원에 가서 마시면 되지. 해가 지기 전에 맥주축제에 참여해야 한다. 으하하하- 설레임을 가득 안고 돗자리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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