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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주정뱅이, 안녕, 권여선
    모퉁이다방 2016. 7. 4. 00:04

     

     

       지난 수요일에는 궁금했던 서점에 갔다. 권여선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는 일찌감치 도착해 서점 구경을 했다. 소설만 파는 서점이었다. 좋아하는 책들이 그득했다. 이미 한 권 있지만, 권여선의 새 책을 한 권 더 샀다. 책을 한 권 사니, 생맥주 한 잔을 공짜로 줬다. 권여선 작가는 아주아주 말랐다. 깡말랐다, 는 표현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뻤다. 그녀는 소설만 가득한 책장 앞에 앉아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 조금 메모를 해 놓은 종이가 어디 있었는데, 어디 갔지? 종이가 없으므로, 저 세 단어는 정확하지가 않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어들이다. ㅠ) 그리고 자신의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는 너무 고독하지 않다는 것. 고독해야 뭔가가 창조될 수도 있는 것. 어딘가로 가는 과정의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버리는 시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고독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우리에겐 그 시간이 꼭 필요하고, 그 시간들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 전의 시간이 자신에게 참 중요한데, 자기 전에 핸드폰도 보지 말고, 티비도 보지 말라고 했다. 그저 불을 끄고 누워서 잠을 기다리는 것이다. 핸드폰을 보고, 티비를 보면 꿈도 내가 아닌 그것들것의 꿈을 꾸게 되지만, 불을 끄고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진정한 나의 꿈을 꿀 수 있다고 했다. 주정뱅이 답게, 술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행복해 보였는데, 그건 술과 '함께'하는 것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음식일 수도 있고, 사람들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고, 끝내 명랑함 때문일 수도 있고.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행사 시작 전에 계속 말을 거셨다. 많이 좋아하세요? 나는 좋아하는 소설들이 꽤 있다고 했다. 나도 되물었는데, 권여선을 이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것들이 좋아서 왔다고. 혹시 백석역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안다고 했다. 걸어왔다고. 그러면 끝나고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했다. 핸드폰 밧데리가 꺼져서 그렇다고, 이 동네가 처음이라 길을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의 친구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셋이 만나 술을 마시자고 했다. 친구의 친구는 이 책의 편집자였는데, 끝나고 작가와 함께 술 한잔을 한다고 했다. 나는 옆자리 분과 백석역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이 동네에 근사한 곳이 많았다. 엘피를 가득 쌓아놓고 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작은 술집도 있었다. 바람이 선선했다. 옆자리 분이 말했다. 애가 둘이에요. 이렇게 혼자서 밤에 돌아다니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정말정말 좋아요. 나는, 애가 둘이에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말했고 몇살이냐고 물어봤다.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어쩌다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을 말했고, 옆자리 분은 부럽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맞아요. 지금도 좋은데, 그래도 부러워요. 그 자유로움이요. 좋아하는 것 보러 이렇게 밤까지 돌아다닐 수 있고. 남편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석역까지 십 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낯선 사람과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밤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 그렇지만 이 여름밤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속마음을 아주 잠깐 털어놓으며 걸었던 사이.

     

       요즘은 내 곁에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 말고, 적당한 거리가 있는 진짜 어른. 얼마 전 회사 건강검진에서 만난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은 내 이름을 한자로 적어달라고 하고 그 글자를 오래 들여다 보며 이야기하셨다. 좋은 이름이라고. 그리고 내게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해조류도 많이 먹고, 햇볕도 많이 쬐고, 자주 걸으라고 하셨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며 안심이 됐다. 그런 어른을 좀더 자주, 좀더 오래 만나고 싶다. 일단은, 소설을 읽어야지. 끝내 명랑하기 위해! 안녕, 주정뱅이, 안녕, 권여선- 귀여운 주정뱅이 작가는 내게 '반갑습니다'라고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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