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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번째 봄
    모퉁이다방 2016. 6. 1. 22:43


     

       동생이 산낙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매일 결심한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그러자고 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산낙지 한 접시랑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동생의 유럽 얘기, 회사 얘기가 이어지다, 나의 생일날 이야기가 이어졌다. 동생은 그때 파리에 있었고, 그곳에서 미역국 이모티콘을 보내줬다. 내가 말했다. 역시 좋았어, 라고. 동생이 말했다. 지금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던데.

     

        "마흔 여덟살이 되었어요." 이소라가 말했다. 이천십육년 오월 이십칠일에. 나는 서른 일곱살이 되었다. 서른 일곱살의 생일날, 나는 꿈꿨던 대로, 별일없이, 이소라의 공연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공연은 여덟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됐다. 무대에 긴 별빛을 닮은 장식물이 내려왔다. 그 안에서 이소라와 밴드가 노래했고, 연주했다. 두 곡이 끝나자, 그 별빛 위에 희미한 달이 새겨졌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보니 그건 "이렇게 여윈" 눈썹달이었다.

     

        이소라는 딱 두 번 멘트를 했다. 첫 멘트 때에 오늘 이런 곡들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단 한번 쉴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했다. 나는 그녀의 위트있는 멘트를 좋아해서 멘트 시간이 그리웠지만, 노래만 줄곧 이어지니 그녀가 왜 노래를 줄곧 부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소라'다웠다.

     

       내 옆에 앉은 혼자 온 여자아이가 몸을 들썩이며 울기 시작한건 중반 즈음, 이소라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볼에 흐른 눈물만 닦아냈는데, 나중에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휴지가 있었는데, 그 휴지를 건네주고 싶어 혼났다. 그애에게 휴지를 건네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것만 같아 꾹 참았다. 그래도 알아주고 싶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전혀 모르는, 단지 두 시간 즈음 옆자리에 앉아 있을 뿐인 한 사람이 당신이 이 노래를 들으며 흐느낄 수 밖에 없는 걸 이해한다고.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사연을 가사의 흐름에 맞춰 상상하게 됐다.  어떤 사연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 곳에 와 혼자 울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이 라이브 한 곡으로도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되었으리라.

     

       나도 '아멘'을 들으며 울컥했지만, 끝내 울지는 않았다. 서른 일곱의 나는 이소라의 라이브를 듣고도 더이상 울지 않는다. 그녀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좀더 건강해서, 그녀의 새 노래를 오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처럼, 어느 날의 첫 별을 보고 새로운 시작을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어떤 가난이, 나의 어떤 방황이,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맥주를 샀다. 공연장을 나와 이대역에서 캔맥주 하나를 샀다. 빨대 하나도 챙겼다. 그날 들은 곡들을 찾아 재생목록에 넣었다. 이어폰 볼륨은 잔뜩 높였다. 그렇게 이대에서 홍대까지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금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흔 여덟의 이소라가 서른 일곱의 나에게 노래했다.

     

      오늘도 말 한마디 못한 채 니 옆에 떠 있는 날 기억해.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린 수많은 별 그 중에 처음 마음 내려놓을 곳.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이렇게 그리운 밤 울고 싶은 걸.

      나 혼자 일어난 미친 아침은 맑아도 눈물입니다.

      나 너 지금 이 곳 다시 별처럼 저 별처럼.

      날 울게 해.

      나의 방황을 나의 가난을 별에 기도해 다 잊기로 해.

     

       꿈틀거리는 산낙지에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다행이다고. 그녀가 사랑하고 있어서. 좋은 노래를 만날 수 있겠다. 놓치지 않고 함께 한, 그녀의 여섯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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