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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서재를쌓다 2016. 4. 27. 22:36

     

     

     

      생은 베트남을 두 번 다녀왔다. 두 번 다 좋았다고 했다. 물가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모두 착했다고 했다. 함께 포르투갈어 수업을 들은 루씨 언니도 베트남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베트남어를 배워볼까 진심으로 생각해보았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베트남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 책은 베트남을 사랑하는 작가가 쓴,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 속의 사람들을 아끼듯, 베트남 국수도 아낀다. 그래서 250페이지에 가까운 책에 베트남 국수에 대한 이야기만 썼다. 아, 침 나오게. 작가의 국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먹었던 국수 한 그릇을 추억하거나, 언젠가 먹을 또 한 그릇의 국수를 그려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온통 베트남 국수 이야기지만, 실은 어떤 그릇에 담긴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몇 년 전, 엄마와 지리산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밤부터 아침까지 엄마가 계속해서 했던 말이 "근처에 맛있는 국수집이 있다"는 거였다. 민물고기를 갈아서 걸쭉하게 만든 어탕국수. 엄마는 그 국수를 오래 전에 친구들이랑 먹었는데, 다음날 몸보신한 것처럼 피부가 맨들맨들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 국수집을 찾아갔다. 국수는 맛있었다.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둘이서 땀을 흘리며 국물까지 후루룩 마셨다. 함께 나온 민물고기튀김도 간장에 찍어 바삭하게 먹었다. 그런데 뭐, 엄마가 밤새 말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제법 괜찮은 한 끼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그 국수 생각이 나더라. 떠나오자마자 그리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랑 여행가서 어탕국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 다시 먹으러 가고 싶다고. 다음날 몸보신 한 것처럼 피부가 맨들맨들했다고. 동네 이름도 특이했다. 꼭 외국 어딘가의 지명 같았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국수 한 그릇의 추억. 앞으로 먹게 될 국수들은 어떨까. 누구랑, 어디서, 얼마나 맛있게 먹게 될까. 그리워지는 국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후띠에우남방 타임머신이 나를 데려다준다. 후띠에우남방을 처음 먹는 나를 위해 학생들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마늘과 고추와 라임을 적당히 넣어주고는, 첫술을 뜬 내 표정을 지켜보던 그때로, 맛있다고 미소 짓는 나를 보고 나서야 마음 놓고 자기들의 국수를 비비기 시작하던 그날로, 정겹고 따뜻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있던 그 아침들이 좋아서 7시 첫 수업도 신나게 가던 철없던 선생 시절, 어쩌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로.

    - 46쪽

     

       따뜻하고 부드러운 면이 입술에 닿는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던 메마른 생각들이

       가슴에 맺혀 있다가 어느새 스르르 풀어진다.

    - 78쪽

     

       세상에는 꽃 같은 국수도, 바람 같은 국수도, 햇빛 같은 국수도 있다. 그리고 대지 같은 국수도 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엇이든 포용하고 자라게 하는 대지처럼 깊고도 깊은 맛의 국수를 먹으러 나는 호이안에 간다.

    - 174쪽

     

       벌써 몇 년 전이다. 베트남이 좋아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베트남 쪽에 영화를 배급하면서 극장을 운영하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베트남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서른이 훌쩍 넘었음에도 과감히 인턴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극장은 하노이, 호찌민, 그리고 중부에 위치한 다낭에 있었는데 인턴 과정 중 한 달은 다낭의 극장에서 일해야 했다. 다낭은 대도시인 데다가 몇 번 들렀었던 곳이라 생활하기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서의 다낭은 낯설었다. 아름다운 바닷가도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었지만 일이 끝나면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기 바빴다. 작은 극장의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저녁이 되면 밀려드는 어둠은 마음을 자꾸 가라앉혔다. 아는 이 없는 다낭은 쓸쓸했다.

       그런 나의 하루에 노란 불이 반짝 들어왔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내게 노란 국수 미꽝이 찾아온 것이다. (...) 고소한 미꽝에 나는 반해버렸다. 사랑스러운 노랑이 나를 명랑하게 만들어주었다. 미꽝을 발견한 다음부터 다낭이라는 도시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의 일상도 여행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  178~179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동네에 모여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들이 나를 위해 모여 살아주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겠지만 상상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 허무맹랑한 그 바람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내가 사랑하는 나라들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이 모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으니 여행자로서 나는 대단한 행운아이다. 다정하게 옆에 붙어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나라들로 언제라도 훌쩍 넘나들 수 있으니.

    -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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