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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주
    극장에가다 2016. 3. 7. 23:34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밤이 되어 있었다. 극 중의 여자아이가 동주와 함께 걷다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보고나니 조금 쓸쓸해졌다. 여자아이는 동주에게 시들이 좋다고, 읽고나니 쓸쓸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좋았다고 했다. 영화가 개봉할 때는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씩 해 줬다. S는 엄청나게 울었는데, 울음소리가 새어나올까봐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고 했다. 몽규가 강렬해서 몽규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영화제목이 왜 동주인지 알겠더라고 했다.  B는 눈물 세 방울이 동시에 흘러내렸다고 했다. OST도 좋았다고 했다. 곡예사 언니는 크레딧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주와 몽규 두 사람의 일생이 나란히 올라가는데, 두 사람은 태어나서, 함께 자랐고, 항상 함께였다고. 세상을 떠날 때도 그러했다고. 그들의 스물아홉 짧은 삶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보지 않으면 안 될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나는 S와 B와 곡예사 언니가 말한 느낌을 그대로 느꼈다. 그리고 조금 쓸쓸해졌다. 그 기분이 참 좋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동주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시를 쓰고 문학을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대가 너무 흉흉했다. 자기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을 쉽게 이루어내는 사촌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는, 순하고 여린 사람. 몽규는 원하는 게 많았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리고 항상 사촌 동주를 챙겼다. 이 길을 같이 가자고 설득하기도 하고, 이 길은 너무 위험하니 가지 말고 너는 시를 쓰라고, 그게 너의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뭐든 쉽게 이루어 내는 듯 보였지만, 결국 하나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그때의 그를 알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이루어 내지 못한 채 힘없이 죽어갔으므로. 그도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 시대의. 우리에게 알려진 투사들 말고, 간절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시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나는 이 영화를 그 시대를 살아간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의 마지막. 동주와 몽규의 아버지는 전보를 받는다. 형무소에서 온 전보였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아들들이 형무소에 있다고 했다. 두 아버지는 배를 타고 일본까지 가서 철장을 두고 아들을 만난다. 몽규만 나왔다. 몽규가 그런다. 자신은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자기가 죽으면 이 땅에 묻히게 하지 말아 달라고. 놀라서 숨이 넘어가는 동주 아버지가 묻는다. 우리 동주는? 몽규가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한다. 동주는 죽었어요. 동주는 죽었다. 영화는 그들의 삶에 집중했고, 그들의 죽음을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하지 않았다. 몽규가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 모두 동주가 죽어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 담담한 장면이 좋았다. 담담해서 서러웠다. 몽규도 몇 개월 뒤에 죽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조국을 되찾고 싶었던 이들은 그렇게 죽었다.

     

       강하늘은 정말 괜찮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연기를 잘했지만, 이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괜찮은 배우가 되었고, 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고.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강하늘의 노래도 좋았다. 자화상. 영화를 보고 한동안 계속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윤동주의 시를 강하늘이 읊는데, 아니 동주가 읊는데, 목소리가 참 따뜻하면서도 쓸쓸했다. 박정민도 잘했지만, 강하늘도 참 잘 한 것 같다.


       시는 어디서부터 생겨나 시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오는 걸까. 잠시 생각해봤다.



    솔직히 실패한 적도 없고 부족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읽을 필요가 없다. 아니 읽어도 아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이 그랬듯,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믿는 상처 입은 영혼에게는 시가 무엇보다 좋은 벗이 된다. 시는 결핍이고 상처이고 눈물이기에.

    - <시의 문장들> 보도자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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